[툭 터놓고 톡]<3>고소득자-대기업 증세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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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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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확대위해 세금 늘려야” vs “스웨덴도 법인세 안올려”

《 4·11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등 일부 야당이 대기업 법인세와 고소득층 소득세를 늘려 세수(稅收)를 늘리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민주당은 소득세 최고세율(38%) 적용구간을 확대하고 법인세 최고세율(22%)도 25%로 인상하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보다 더 좌파 성향인 진보당은 각각 40%, 30%의 소득세와 법인세 최고세율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증세(增稅)에 대한 당 차원의 공약을 제시하지 않았다. 대기업 및 고소득층 증세에 찬성하는 좌파 정치인 및 전문가들은 급증하는 복지재원을 마련하고 사회적 형평성을 높이려면 증세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우파 성향 경제전문가들은 특정 계층을 겨냥한 증세를 밀어붙이면 한국 기업들의 국가경쟁력 약화와 고소득자의 해외탈출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며 반대한다. 대기업 및 고소득층 증세론에 대한 양측 전문가들의 견해를 소개한다. 》
■ “이래서 찬성한다”

소득세와 법인세 증세에 찬성하는 전문가들은 전 국민의 복지 확대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증세가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았다. 저출산, 고령화 추세와 양극화 심화로 복지에 대한 사회적인 갈증이 심한 만큼 증세를 통해 나라 곳간을 채워둬야 재정 건전성의 악화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 복지 위해선 증세해야

증세 찬성 전문가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복지수준을 끌어 올리면서 재정 건전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세금 부담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국가의 경제력 대비 복지수준을 비교하는 대표적인 지표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의 복지지출 비중’인데, 2009년 현재 7.5%인 한국의 복지지출 비중은 OECD 회원국 평균(20.6%)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황성현 인천대 교수(경제학)는 “복지지출 비중을 높이려면 나랏빚을 늘리거나 세금을 늘려 이를 복지에 사용할 수밖에 없다”며 “증세를 통해 조세부담률을 높여야 건전재정을 유지하면서 복지와 교육에 투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증세가 경제 성장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지적은 틀렸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근로의욕이 위축되고 투자가 감소하는 부작용보다 복지 확대에 따른 긍정적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한국의 낮은 복지수준은 저출산이나 양극화 심화를 불러와 오히려 성장을 방해한다”며 “복지 확대로 출산율이나 여성고용률이 높아지면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소득세 재분배 효과 높여야

증세론자들도 현재 40%에 이르는 소득세 면세자(免稅者) 비율을 줄여 소득이 있는 국민들이 조금씩이라도 복지 재원을 부담해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했다. 하지만 소득세의 소득 재분배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세원(稅源) 확대와 함께 고소득자의 세 부담을 늘리는 정책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소득세 최고세율(38%)은 OECD 30개국 평균(35.8%)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지만 각종 비과세, 감면 혜택으로 소득 상위 20%의 실효세율(총소득 대비 실제 부담 소득세액 비율)은 5.9%에 불과하다. 이는 미국(14.1%)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경제학)는 “고소득층일수록 비과세 혜택을 많이 받고 있어 실효세율은 명목세율보다 훨씬 낮다”며 “소득세율을 높이면 고소득층의 소비가 줄고 재산을 해외로 빼돌릴 것이라는 얘기는 현실과 거리가 먼 추상적인 경제논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금융소득세와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안창남 강남대 교수(세무학)는 “한국은 OECD에서 세금에 의한 소득 재분배 효과가 가장 낮다”며 “특히 고액 자산가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돼 있는 주식양도차익 세금 감면이 소득 재분배 효과를 낮추고 있다”고 말했다.

○ 법인세 인하, 선진국과 한국은 달라

법인세 증세론자들은 “법인세를 많이 거두면 투자가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은 경제발전 초기에나 통용되는 논리”라고 반박했다. 장상환 경상대 교수(경제학)는 “대기업이 투자를 안 하는 것은 세율이 높아서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했다. 법인세를 높이면 세금을 피하기 위해 대기업이 해외로 이전할 것이라는 주장 역시 과장됐다는 것이 증세론자들의 일관된 지적이다.

법인세 증세는 최근 선진국의 흐름과 역행하는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문제가 많다고 했다. 한국보다 훨씬 높은 법인세율을 유지했던 선진국들이 세율을 낮추는 것과 한국의 상황을 동일하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법인세 인하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미국의 법인세율은 35%, 독일은 30% 수준으로 한국(22%)보다 훨씬 높다. 황성현 교수는 “선진국이 법인세를 낮춘다고 한국도 감세해야 한다는 것은 산꼭대기에 있는 나라가 내려온다고 산 밑에 있던 우리도 내려가야 한다는 얘기”라며 “법인세를 올리지 않으면 좋겠지만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 “이래서 반대한다”


증세에 반대하는 경제전문가들은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 공약에 가장 큰 우려를 표명했다. 법인세를 올리는 것은 기업에 대한 세금을 낮추려는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하기 때문이다. 고소득층 소득세율 인상에 대해선 ‘조세 망명’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도 했다. 이들은 증세 대신 ‘국민 개세(皆稅)’ 원칙에 따라 소득이 적은 사람들이라도 조금씩 세금을 내거나 비과세·감면 등을 줄이는 방법으로 복지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 법인세 인상은 세계적 흐름 역행

현진권 아주대 교수(경제학)는 “세계 각국이 투자 유치와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법인세를 경쟁적으로 낮추고 있는 상황에서 법인세 증세를 주장하는 것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사회 형평성을 개선하기 위해 법인세를 올리려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현 교수는 “개방화 시대에 법인세는 그 나라 기업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며 스웨덴의 예를 들었다. 2009년 기준으로 복지선진국인 스웨덴의 조세부담률은 27.3%로 한국(19.7%)보다 훨씬 높은데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법인세 세수 비율은 한국과 같은 3.5%다. 스웨덴이 다른 부분에서 세금을 더 거둬도 기업 경쟁력을 위해 법인세는 낮게 유지한다는 뜻이다.

증세 반대론자들은 부유층에 ‘버핏세’를 물리려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도 법인세 최고세율은 35%에서 28%로 낮추려 한다고 말했다. 이만우 고려대 교수(경영학)는 “미국의 법인세 감세 움직임은 높은 법인세 때문에 생산시설이 해외로 빠져나가 제조업 침체가 초래됐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라며 “지금 민주통합당에서 법인세 인상을 주장하는 경제관료 출신 의원들도 공무원 시절에는 법인세 인하를 주장했던 사람들”이라고 꼬집었다.

○ 소득세 인상으로 ‘조세 망명’ 생길 수도

소득 상위 1%의 고소득자가 전체 소득세의 45%, 소득 상위 10%가 80%를 부담하고, 하위 40%는 세금을 전혀 내지 않는데도 부유층에 더 높은 소득세를 물리는 방안은 문제가 많다고 했다.

최운열 서강대 교수(경제학)는 “글로벌 시대에 높은 소득세는 고소득층에게 해외로 빠져나갈 유인을 제공한다”며 “4월 프랑스의 대통령 선거에서 사회당의 집권이 예상됨에 따라 소득세 인상을 우려한 부유층이 주변 국가로 국적을 옮기는 ‘조세 망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증세 대상인 고소득층) 1%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은 박수를 치겠지만 경제적으로는 문제가 많은 선거용 공약”이라고 비판했다.

소득세 증세가 복지재원을 안정적으로 마련하는 방안으로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소수에게 세금을 거둬 다수에게 나눠주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고 효과도 미미하다”며 “다수에게 거둬서 도움이 필요한 소수에게 집중적으로 복지재원을 집행하는 것이 소득 재분배나 복지 증대 측면에서 훨씬 효율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선 세금을 내는 계층을 상위 70∼80%로 늘려야 한다고 했다.

○ 비과세·감면 등 축소로 복지재원 마련

증세 반대 전문가들도 현행 세제를 개편하고 복지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에는 대체로 동의했다. 하지만 추진 방법은 달랐다.

김 교수는 신용카드 소득공제 등 비과세 및 감면 혜택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세수를 늘리는 ‘빅뱅 식 접근법’을 제안했다. 그는 “각종 비과세, 감면 항목들은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과 맞물려 있어, 폐지하려고 할 때마다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며 “비과세, 감면 혜택을 한꺼번에 없앤 뒤 필요한 것만 재도입하는 조세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0년 기준 GDP(약 1172조 원)의 22∼30%로 추정되는 ‘지하경제’에서 새로운 세원을 발굴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 교수는 “선진국의 2배가 넘는 지하경제에 제대로 세금을 부과한다면 증세 없이 수십조 원의 복지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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