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잘 나가는 ‘나꼼수’, 벌써 한계 보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17일 11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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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꼼수\' 진행자 김어준 씨.
\'나꼼수\' 진행자 김어준 씨.
어딜 가나 딴지일보의 인터넷 팟캐스트 시사토크 방송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가 화제다. 사실 그 인기와 영향력에 대해선 더 설명하는 게 불필요할 정도다.

딴지일보 측 주장에 따르면 '나꼼수'는 한 회당 600만 건, 한 달 4차례 방송 기준으로는 2000여만 건까지 청취회수가 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 효과에 대해서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맞물려 폭발력이 가늠된 바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10월18일 전국 19세 이상 남녀 750명을 대상으로 전화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그 회당 600만 건의 청취자들 중 연령대별로 30대의 청취경험(19.5%)이 가장 많았고 이어 20대(17.2%), 40대(15.8%), 50대 이상(11.2%) 등의 순이었다. 박원순 시장 당선 핵심이 된 2040세대와 정확히 일치하는 주 청취층이다.

●예능과 시사의 결합'을 주류미디어가 꺼린 까닭

물론 '나꼼수'가 지닌 문제점은 많다. 그 인기와 영향력에 대해 설명하는 게 불필요하다면, 그 문제점에 대해 얘기하는 것도 불필요할 정도다. 그런데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얘긴 그런 게 아니다.

'나꼼수'의 대중적 성공이 알려준 힌트, 즉 방송 프로그램으로서 '예능과 시사의 결합'은 팔린다는 측면의 얘기다. 정부권력 비판이란 '나꼼수'의 방향성이나 조롱 따위 태도의 문제는 사실 그 이후의 차원이다. '나꼼수' 성공은 애초 '예능과 시사의 결합'이란 구성상 콘셉트 자체의 높은 상품성이 입증된 사례로 볼 필요가 있다.

의문이 생긴다. 이처럼 잘 팔리는 '예능과 시사의 결합'을 왜 주류미디어인 지상파 TV 등에선 미처 하지 못했을까. 수위만 잘 조절하면 얼마든지 가능했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이는 애초 질문부터가 잘못됐다고 봐야한다.

주류미디어는 '예능과 시사의 결합' 콘셉트가 너무 선구적인 것이어서 손대지 못한 게 아니다. 오히려 너무 구시대적이라 여겼기에 다시 손대길 꺼려했다고 봐야한다. 이미 한 번 '해본 것'이었단 얘기다.

방송미디어에서 예능이 처음으로 시사를 흡수한 사례는 개그맨 김형곤이 맹활약한 1986년 KBS2 '유머1번지' 코너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으로 볼 수 있다.

동아일보 1988년 2월23일자 기사 '정치 코미디 본격등장 채비'는 "새 공화국의 출범에 맞춰 KBS와 MBC 양TV는 그동안 금기시되어온 정치관련 소재를 코미디에 수용하는 '정치 코미디'를 본격적으로 선보일 채비를 서두르고 있으며 시중의 야간무대에서도 정치풍자 코미디를 이미 시도하는 등 코미디 활성화 조짐이 보이고 있다"면서 "이제까지 선보인 코미디 가운데 풍자성이 엿보인 프로그램은 KBSTV '유머일번지'의 '회장님 우리 회장님' 코너와 '쇼비디오자키'의 '네로25시' 코너, MBCTV의 '일요일 밤의 대행진' 등"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이들 프로그램이 다룬 내용은 본격 정치풍자 코미디라기보다는 '자학적인 내용'이 많았고 구체적인 권력층 인물을 희화의 대상으로 삼거나 이들의 아픈 곳을 찌르는 풍자의 후련함을 보여주기에는 미흡했다"며 '더 세게' 나갈 것을 주문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런 주문에도 불구, 당시 '정치 코미디'는 지금 기준으로 봐도 꽤나 과격한 수준까지 가 있었다.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의 경우 당시 금강산댐에 맞선 평화의 댐 건설을 비꼬는 내용까지 등장시킨 바 있다.

그런데 이 같은 붐은 오래 지속되질 않았다. 1990년대 중반에 이르자 사실상 사멸상태에 이르렀다. 동아일보 1996년 6월3일자 '코미디에도 '성역' 있나'는 "현재 각 방송사는 '코미디 일번지'(KBS2) '코미디 펀치펀치'(SBS) '오늘은 좋은 날'(MBC) 등 방송사별로 2~4개의 코미디 프로를 방영한다"면서 "그러나 어느 프로에도 왕이나 권력의 실세는 등장하지 않는다. '코미디 펀치펀치'가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캐릭터를 등장시킨 '배워서 남주나'를 방영하고 있지만 이미 '실권(失權)' 처지라 본질적 의미의 풍자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라고 짚었다.

그 원인에 대해 해당기사는 한 KBS PD의 "'외압'의 구체적 물증을 밝히기는 어렵지만 PD들이 아예 말썽의 소지가 있는 소재선택을 꺼리는 분위기"라는 멘트를 전하며, 사실상 정치적 외압 또는 그에 준하는 암묵적 코드가 기동하고 있음을 암시했다.

●'예능과 시사의 결합' 전통 무너진 건 젊은 층 정치 관심도 저하 탓

그러나 이 같은 해석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당시 김영삼 정부가 전두환·노태우 정부 이상의 권위주의 정부였다고 보기도 어려울뿐더러, 김영삼 정부 내내 영화 장르에 있어선 이른바 '해금' 열풍이 거세게 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해당기사 중 "전체적인 반응이 부족했다"는 또 다른 KBS PD 설명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1980년대 내내 이어지던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희석되고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그리고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가 열린 이후, 당시 20대 젊은 층 내에선 이른바 탈(脫)정치무드가 급속 확산됐다.

이는 선거 투표율로는 쉽게 증명된다. 총선 기준으로 봤을 때 1992년 14대 총선에서 20대 투표율은 56.8%, 30대 투표율은 72.1%였던데 반해, 1996년 15대 총선에선 20대 44.0%, 30대 62.8%로 급락, 2000년 16대 총선에선 급기야 20대 36.8%, 30대 50.6%까지 떨어졌다. 불과 8년여 사이 20대는 20.0%, 30대는 21.5% 하락한 것이다.

대선이라고 별 다를 것도 없다. 1992년 14대 대선에서 20대 투표율은 71.5%였으나, 1997년 15대 대선에선 68.2%로 떨어졌고, 이 같은 분위기는 21세기 초반까지 이어져 2002년 대선에선 56.5%로 급강하했다. 10년 사이 15%가 떨어진 것이다.

투표율 저하는 당연히 젊은 층의 정치적 무관심을 방증한다. 각종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의 주 소비층인 20대 젊은 층에서 정치적 무관심이 어마어마할 정도로 확산되고 있는데, 그 주무대 중 하나인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정치사회적 이슈를 다뤄봤자 주목받을 이유가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구시대적, 구세대적이란 이미지까지 풍겼다. 그러니 벌써 사반세기 전 시작돼 역사가 깊은 지상파방송사의 '예능과 시사의 결합'도 10여 년 전부턴 다분히 상업적인 원인이 의해 맥이 끊길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꼼수 현상'은? 당연히 젊은 층으로부터 정치에 대한 관심이 되돌아온 까닭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대선과 총선 기준으로 보면 그렇게 여겨지질 않는다. 총선으로 볼 때 20대 투표율은 노무현 탄핵열풍이 일던 2004년 17대 총선에서나 44.7%로 잠깐 반짝했을 뿐 2008년 18대 총선에선 다시 16대(36.8%)보다도 낮아진 28.1%를 기록했다. 대선도 16대(56.5%)에서 17대(46.6%)로 넘어오며 최저기록을 다시 한 번 경신했다.

그러나 이른바 '생활정치' 측면이 부각되는 지방선거의 경우는 달랐다. 20대 투표율은 2002년 지방선거에서 31.2%로 바닥을 친 뒤, 2006년엔 33.8%, 2010년엔 무려 41.1%까지 뛰었다. 8년 사이 10%p가 올랐다.

20대뿐 아니라 1990년대 탈(脫)정치현상을 보이던 현 30대까지도 투표율이 덩달아 뛰었다. 2006년 30대 전반은 37.0%, 30대 후반은 45.6%였던 것이 2010년엔 30대 전반 41.9%, 30대 후반 50.0%로 4~5%p씩 올랐다. 그런 흐름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의 '빅뱅'에까지 이르렀다.

이렇듯 젊은 층의 정치 관심도 상승은 지방선거에서만 유독 상승세를 보이다보니 주류미디어의 '레이더'에 들어오긴 어려웠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적어도 상업적 기반으로 삼아보기엔 너무 오락가락하는 데이터였다.

갖은 논란에 휘말리면서도 상업적 효과까지 미미하게 나온다면, 그야말로 방송 프로그램으로선 최악의 국면이다. 그런 모험을 다들 꺼렸단 얘기다.

●'나꼼수'가 일으킨 혁명 아니라 혁명적 흐름에 '나꼼수'가 편승한 것

물론 상업적 기반이 분명해지더라도 현 지상파방송사들에서 '예능과 시사의 결합'을 시도하기란 어려울 수도 있다. 일단 KBS와 MBC는 공영방송 역할 문제로 정치와 관련된 예능 시도를 부담스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그런 분위기는 크지 않았지만, 1990년대 중반 케이블TV의 보급으로 민영상업방송 태도와 비교되면서 상대적으로 공영방송 역할이 크게 강조된 바 있다. 민영상업방송이긴 하지만 공공재인 전파를 사용하는 SBS 역시 공기(公器) 측면에서 압박이 심할 수 있다.

그러나 곧 등장할 케이블 종합편성채널의 경우는 다르다. 일단 민영상업방송인데다 공공재 전파를 사용하지도 않는다. 얼마든지 '나꼼수'와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여건이 된다. 이미 20~30대 젊은 층에서 상업적 기반이 확인-회당 600만 청취자라는 구체적 수치는 분명 탐낼 만한 것이다-된 상황이니 오히려 유사 프로그램을 만들어내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물론 방송윤리규정에 종속되는 관계로 별다른 제재가 없는 인터넷방송에 비해 그 '강도'가 약해질 수는 있겠지만, 현 시점 '나꼼수'가 그렇게도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된 건 사실 그 '강도' 자체라기보다 '예능과 시사의 결합'이란 동일 컨셉트 프로그램이 시장에 존재하질 않아서일 수도 있다. 경쟁자가 없었단 얘기다.

어차피 '강도' 강한 얘긴 인터넷 포스트에서나 떠돌면 되는 일이다. 직접 방송을 들어야할 필요충분조건은 못 된다. '강도' 높은 표현이나 주장은 약화시키고, 대신 예능적인 감각을 더욱 프로페셔널하게 집어넣은 '메인스트림 판 나꼼수'가 등장한다면, 얼마든지 시장은 대체될 수 있다. 이 시장은 '나꼼수'가 일으켜 세운 시장이라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기에 더더욱 그렇다.

앞선 지방선거 투표율에서도 알 수 있듯, '나꼼수' 등장 이전에도 이미 20~30대 젊은 층의 정치적 관심도는 급속도로 상승하는 추세였다. '나꼼수'는 그런 관심도를 끌어올린 게 아니라, 사실상 전반적 흐름에 편승한 경향이 짙다. '나꼼수'가 빠지고 다른 프로그램으로 대체돼도 같은 편승효과를 얻어낼 공산이 크다.

여러 측면에서 '나꼼수'의 '원조'라 볼 수 있는 2000년 인터넷방송 프랑켄쉬타인 프로그램 '김기득의 2시의 데이트' 운명을 보면 향후 상황이 어느 정도 가늠이 되기도 한다. 나중에 '나꼼수'의 딴지일보로 자리를 옮겨 '황봉알·김구라의 시사대담'이란 제목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프로그램이다.

당시만 해도 가히 사회현상 격 인기를 누리던 '황봉알·김구라의 시사대담'이었건만, 결국 이 프로그램은 '제도권에 흡수'되는 형태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김구라는 그 인기를 바탕으로 조선일보에서 '김구라의 쿨아이'란 고정칼럼까지 연재하고는 지상파 방송으로 자리를 옮겨버렸고, 프로그램의 셀링 포인트였던 막말과 욕설은 '호통캐릭터'와 '독설캐릭터'란 식으로 순화·변형돼 지상파 예능에서 흡수해버렸다.

너무 어이없는 결과 탓에 '나꼼수' 등장 직전까지 아예 '시사예능토크'란 컨셉트 자체가 사멸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다.

그런데 '나꼼수' 셀링 포인트인 비아냥과 조롱은 오히려 막말과 욕설보다 메인스트림 시장에서 받아들이기 더 수월한 코드다. 물론 전반적 정치 관심도 상승으로 다루기 까다로운 정치라는 소재가 핵심이 돼야하는 건 맞지만, '황봉알·김구라의 시사대담' 당시에 비하면 메인스트림화 되기에 더 적합하다.

정권교체를 목표로 2013년 3월까지 한시적 활동을 예고하고 있는 '나꼼수'라지만, 어쩌면 정권교체 이전 '나꼼수'가 먼저 교체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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