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칼럼] 표정을 잃어버린 ‘공주의 남자’ 승유와 세령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7일 15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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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을 표방한 드라마 \'공주의 남자\'의 주인공 문채원(왼쪽)과 박시후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을 표방한 드라마 \'공주의 남자\'의 주인공 문채원(왼쪽)과 박시후
심리상담의 첫 면접에서 가장 중요하게 묻는 질문은 '어떻게 변화하길 원하느냐'이다. 그 후 면담이 진행될 때에도 상담자는 시종일관 내담자가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니까 어떤 객관적인 사실, 상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순간 무엇을 원하며 그것을 얼마만큼 실현시켰느냐가 삶의 만족도와 관련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더욱 강렬해지고 그들의 비극적인 최후가 사람들을 울리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그토록 원하는 것이 좌절되는 순간 본능적으로 그것을 되찾기 위해 용기를 내게 되며 그 결과 서로에 대한 마음이 더욱더 간절해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또 그래서 눈물나는 사랑의 이야기로 탄생하는 것일 거다.

▶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 승유와 세령의 이야기

왕이 되려 역사를 피로 물들인 수양대군이 그에 맞선 충신 김종서를 죽인 계유정난을 배경으로 그 2세들의 사랑과 복수를 그린 드라마 '공주의 남자'는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적 사랑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드라마 초반에는 김승유(박시후)와 이세령(문채원)의 우연한 만남과 천방지축 두 남녀의 아슬아슬한 데이트, 경혜공주(홍수현)와의 삼각관계가 가벼운 흥미를 유발시켰다면 후반으로 갈수록 역사 속에서 희생되는 그들의 사랑이 부각된다.

한편 예쁘고 멋있게만 보이던 두 남녀주인공의 이미지도 변화한다. 김종서(이순재) 집안이 몰살당하면서 유배지로 끌려가다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긴 승유는 저승사자처럼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등장하고, 호기심 많고 대담한 여인이었던 세령은 우울증 환자처럼 무기력해 보인다. 이들의 선택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승유는 수양대군에 의해 집안이 몰살당하고, 죽을 고비를 넘기며 저승사자처럼 표정없이 변해간다.
승유는 수양대군에 의해 집안이 몰살당하고, 죽을 고비를 넘기며 저승사자처럼 표정없이 변해간다.


▶ 복수에 눈이 먼 남자, 승유

결국, 복수에 눈이 먼 승유는 세령을 납치해 수양대군(김영철)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민다. 지난 회 혼인을 앞둔 세령을 찾아가 그녀를 보자기에 싸고 납치하는 그의 모습은 음모를 꾸민다기 보다는 어떻게든 그녀의 혼인을 막고 싶은 애인의 절망적인 몸부림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쨌거나 승유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안도하는 세령 앞에서도 싸늘한 시선을 보내며 그녀를 꽁꽁 묶어 괴롭히는 그의 표정에서 더 이상 이전의 혈기 왕성하고 자신감에 차 있으며 부들부들하기도 한 남성의 매력은 찾아볼 수 없다. 이미 죽은 사람처럼 표정을 잃은 그는, 사랑만이 아니라 삶 전체를 복수와 맞바꾼 것 같다.

어쩌면 누구에게나 사랑은 삶 전체이자 그 이상인지도 모른다. 반드시 낭만적인 사랑이 아닐지라도. 그렇다면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사랑하는 여인마저 만날 수 없는 그의 삶은 죽음과 다를 바 없다. 죽음 속에 있는 그를 누가 구해낼 수 있을 것인가.

세령은 혼인 날 승유에게 납치당하고서도 승유가 살아있음에 감사해 눈물짓는다.
세령은 혼인 날 승유에게 납치당하고서도 승유가 살아있음에 감사해 눈물짓는다.


▶ 간절함에 몸을 던진 여인, 세령

그건 아마도 세령일 거다. 승유가 수양대군에게 쏜 화살은 갑옷에 박히고 수양대군이 대동한 사윗감 신면의 화살이 승유를 겨냥한다. 그러나 결국 그 화살은 세령의 가슴에 가 박힌다. 어쩌면 세령은 그 순간 비로소 자신의 삶을 찾고 진정 자유로워졌는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그녀는 망설임 없이 승유를 겨냥한 화살에 몸을 던질 수 있었을까. 결혼해서도 그가 어딘가 살아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살았을 그녀가, 언젠가는 그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살았을 그녀에게 승유의 죽음은 자신의 죽음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세령과 승유는 서로를 좋아하고 그 마음을 잘 간직하고 더 키워나가고 싶었을 뿐인데, 그들의 소박한 바람을 막는 외부 상황들이 그들을 더 독하게, 간절하게, 또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적 사랑이 더 아름답게, 더 안타깝게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오는 이유는 우리 모두 각자의 욕구가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좌절되는 수많은 상황들을 겪기 때문은 아닐지. 그저 사랑했을 뿐인데... 내가 원하는 삶을 살겠다는 것뿐인데 말이다.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가수 인순이가 한 말이 떠오른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과 친해져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을 할 때 내가 행복해지고 그런 내 주위의 사람들도 함께 행복해진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았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해 절대 포기하지 마라."

나 자신을 위해 절대 포기하지 마라…. 세령의 선택은 그 시대, 그 상황에서 그녀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지키는 최선의 행동이 아니었을까. 몸을 던진 그녀의 간절함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그로 인해 삶을 되찾고 슬픔에 잠길 승유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이계정 상담심리 전문가 lisay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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