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이문원의 쇼비즈워치]트랜스포머3의 스크린 독과점이 왜 불만인가?

  • Array
  • 입력 2011년 7월 19일 11시 23분


코멘트

매년 여름만 되면 단골손님처럼 돌아오는 영화계 이슈가 있다. 바로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다. 올해는 '트랜스포머 3'가 그 대상이 됐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7월 4일자 기사 '"트랜스포머3만 보라고?"…5개관 중 4개 장악 독점 논란'은 "2011년 현재까지 영화진흥위원회 입장권통합전산망의 스크린 가입률(99%)에 따르면, 국내 전체 상영관은 2229개다. 이중 '트랜스포머3'은 지난 주말(1~3일) 1420개 상영관에서 관객을 맞이했다"면서 "스크린 독과점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바타' 등 할리우드 영화 뿐 아니라 2006년 '괴물'과 같이 화제가 되는 국내 영화들도 스크린 독점으로 문제가 되기도 했다. '괴물'의 독과점은 당시 한 토론 프로그램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이 논란이 다시 한 번 점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편 칼럼니스트 듀나 역시 엔터미디어 7월 4일자 칼럼 '트랜스포머 흥행의 단순한 이유'에서 "전체 2229개 스크린에서 1300개 점유가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숫자인가. 심지어 미국에서도 이 영화의 극장 점유율은 11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점점 우리는 글로벌 호구가 되어가는 건가"라고 마찬가지 현상을 비판했다.

● 한국과 미국 영화시장 배급체계의 단순 비교는 무의미

그런데 '트랜스포머 3' 개봉으로부터 불과 보름 남짓 지난 현 시점, 이 같은 독과점 논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다. 더 이상 시장은 '트랜스포머 3' 독과점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봉 첫 주 1420개 스크린을 장악했던 '트랜스포머 3'는 개봉 2주차에 벌써 113개 스크린이 빠져나가 1307개로 줄었다. 이어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2'가 개봉된 3주차에 이르러서는 877개 스크린으로 뚝 떨어졌다. 개봉 보름 만에 543개 스크린이 빠져나간 것이다.

그 빈자리는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2'가 차지했고, '고지전' '퀵' 등 한국 블록버스터들이 시장에 입성하는 이번 주말에는 아예 스크린 점유 판도 자체가 뒤바뀔 전망이다.

이에 반해 '트랜스포머 3' 개봉 첫 주 스크린 점유율이 11%에 불과했다는 북미시장은 같은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2'가 개봉된 현 상황에도 여전히 3917개 스크린에서 '트랜스포머 3'가 돌아가고 있다. 개봉 첫 주 4088개 스크린에 비해 불과 4.2%밖에 떨어져나가질 않았다. 반면 한국은 같은 기간 38.3%가 떨어져나갔다.

이 같은 상황은 한 가지 결론을 도출해준다. 한국 영화시장, 그중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형 블록버스터들이 넘실대는 한국 여름영화시장 구도는 북미시장 구도와 액면 그대로 같이 놓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한국은 '될성부른' 영화의 스크린 독과점이 쉽게 일어나는 시장이긴 하지만, 동시에 스크린 회전율이 빨라 아무리 대박 콘텐츠더라도 2주 만 지나면 극장에서 우수수 떨어지곤 한다. 반면 북미는 스크린 독과점까진 일어나지 않지만, '트랜스포머 3' 같은 콘텐츠가 한 달 넘게 꾸준히 스크린 수를 유지하는 시장이다. 개봉 첫 주 시점 상황으로만 모든 걸 판단한다는 건 무리라는 얘기다.

물론 한국식 연쇄 독과점 구도, 즉 '될성부른' 영화 한 편의 스크린 독과점에서 다른 한 편의 독과점으로 넘어가는 구도는 관객의 영화선택 다양성 확보 측면에서 크게 떨어지는 구도가 맞다. 누구라도 동의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그러나 단적인 얘기로, 한국 여름영화시장이 이 같은 배급구도를 보이게 된 건 시장성향 자체가 그런 식으로 구성돼있기 때문이라 볼 수밖에 없다. 시장이 다른 성향을 보이는데 무작정 자기들 멋대로 배급구도를 짜는 배급사란 세상에 없다.

한 마디로, 그런 식의 연쇄 스크린 독과점 구도를 한국대중 본인들이 불렀다는 얘기다. 그러니 '트랜스포머 3'를 배급한 CJ E&M 영화부문 관계자도 앞선 스타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배급사 입장에서는 최적화된 배급을 한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한국영화시장은 본래 '동네축구' 현상이 잦은 구조

그렇다면 한국 대중은 대체 어떤 성향을 지녔기에 이 같은 연쇄 스크린 독과점 구도가 버젓이 유지되고 있는 걸까. 사실상 여기부터가 진정한 논의거리다.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한국영화시장이 기본적으로 '될성부른' 영화 한두 편에 관객이 몰리는 구조라는 점부터 인지할 필요가 있다. 한국시장이 북미시장과 다른 점은 스크린 독과점 상황만 있는 게 아니다.

한국에선 인구의 4분의 1 또는 그 이상이 영화 한 편을 관람하는 '1000만 영화'도 빈번히 등장한다. 한국의 '1000만 영화'를 북미 인구에 맞춰 환산해보면 대략 7500~8500만 관객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북미에서 이 정도 수치를 만족시킨 영화는 지난 10년 간 2009년작 '아바타' 단 한 편뿐이었다. 약 9725만5300여장의 입장권을 팔아치웠다. 그러나 같은 기간 한국에서는 '1000만 영화'가 모두 6편이나 나왔다.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 '괴물' '해운대' 등 한국영화 5편과 '아바타'다.

그 자체로도 놀라운 대비지만, 거기다 한국은 연 단위로 봤을 때 1인당 영화관람 횟수가 북미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지난해 북미의 연간 1인당 영화관람 횟수는 약 3.9회였다. 반면 한국은 약 2.65회에 그쳤다. 북미에 비해 3분의 2 정도 관람 횟수에도 '1000만 영화'는 6배나 더 나왔다는 것이다.

그만큼 '될성부른' 영화 한 편의 독주체제가 훨씬 단단히 잡혀있는 시장, 공 한 번 차면 그리로 모두가 달려가는 '동네축구' 현상이 더 질펀하게 일어나는 시장이 바로 한국영화시장이란 얘기다.

물론 이 같은 '1000만 영화' 폭주도 배급이 '밀어줬기에' 가능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예컨대 전체의 63.7%가 '트랜스포머 3'를 돌렸으니 당연히 그리로만 관객이 몰릴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그러나 꼭 그렇게만 볼 것도 못 된다. 지금 같은 초토화 스크린 점유 이전에도, 단관개봉 시절이건 멀티플렉스 시절이건, '될성부른' 영화 한두 편에 관객이 몰리는 현상은 똑같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시초인 '쉬리'부터가 그랬다. '쉬리'는 1999년 개봉 당시 불과 전국 23개 극장에 걸리는데 그쳤다. 당시 전국극장연합회 소속 극장수가 총 507개관이었으니 점유율은 4.5%에 불과했다. 이후 상영관이 늘긴 했어도 여전히 70여개 관 수준이었다. 전체의 14% 남짓했다. 그럼에도 '쉬리'는 최종 582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당시는 전국관객 수치가 제대로 나오지 않던 시절이라 정확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서울관객 기준으로 봤을 때 '쉬리'는 1년 간 총 영화 관람객 수의 약 10.6%를 차지했다. 현 시점 시장규모로 봤을 때 이 정도 수치를 만들어내려면 약 1400만 관객이 나와야한다. 한국 최고관객 동원 기록을 세운 '아바타'조차 이르지 못한 수치다.

결국 한두 편의 영화에 시장 전체가 쏠리는 분위기는 스크린 독과점 상황이건 아니건 유사했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 같은 분위기는 이듬해 600만 관객을 동원한 '공동경비구역 JSA', 그 다음해 800만 관객을 동원한 '친구'까지도 꾸준히 재연됐다.


● 한국대중 본인들이 '다양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여기서 한두 편의 영화에 시장 전체가 쏠리는 시장 환경이란 뭘 의미할까. 쉽게, 소비자들 스스로 딱히 '다양성'을 요구하진 않는 환경이란 얘기가 된다. '될성부른' 콘텐츠에 일순간 너도나도 몰려들며, 다시 다음 번 '될성부른' 콘텐츠로 순식간에 몰려간다.

왜 그럴까. 한국은 대중의 문화적 취향이 다양하지 않은 환경이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 주 소비층인 20대 계층에서 이 같은 경향이 뚜렷이 발견된다. 주 소비층 각자 취향이 다양하지 않은 문화 환경에서 문화상품 소비는 자연스레 트렌드성 소비로 넘어가게 된다. 일종의 유행상품 격 소비다. 그리고 트렌드성 소비형태의 백미는 바로 회전율이다. 유행의 스피드다.

그러니 배급 측에서도 그에 따른 전략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 '트랜스포머 3'의 개봉 첫 주 전국 스크린 63.7% 독과점이다.

어차피 '될성부른' 콘텐츠로 집중되는 환경, 거기다 트렌드성 소비가 일반화된 환경이라면, 극장 수를 적게 잡고 상영기간을 늘리는 배급형태보다 짧고 굵게, 초장에 박살을 내는 편이 유리하다. 그런 뒤에 시장을 초토화시킨 뒤 빠져나가는 전략이 더 유리하다는 판단이 섰던 것이다.

물론 스크린 독과점 관련 기사나 의견이 인터넷에 등장하면 모두들 입을 모아 독과점의 폐해를 논하며 다양성의 필요성을 주장하곤 한다. 그러나 그런 건 대중이 지지하는 '가치'일 뿐 실제 대중의 '요구'와는 거리가 있다. 그리고 '가치'라는 건 본래 자신의 '요구' 이상의 것, 자신이 지닌 속성과 한계를 뛰어넘는 것으로 설정되기 십상이다.

한국은 액면 그대로만 봤을 때 배급되는 영화의 편수가 결코 적은 시장이 아니다. 지난 2010년 한 해 동안 한국영화시장에선 영화제 상영작을 제외하고 한국영화 140편, 해외영화 286편 등 총 426편의 영화가 개봉됐다.

물론 허수성 개봉작들도 일부 존재하겠지만, 그를 제외하고도 많은 숫자다. 북미에서 2010년 한 해 동안 극장 개봉된 영화 수가 총 534편이었다. 시장규모는 우리의 몇 배 이상인데 콘텐츠 수적으론 큰 차이가 나질 않는다. 심지어 문화다양성의 천국이라는 일본도 지난 한 해 동안 극장 개봉된 영화 수는 716편이었다.

그런데 한국시장은 그 많은 개봉작들 중 상당수가 제대로 빛도 보지 못하고 사라져버린다는 데 그 특성이 있다. 2010년의 개봉작 426편 중 전국 관객 10만 이상을 끌어들인 영화는 겨우 47편이었다. 대중 스스로가 '다양성'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단관개봉에 홍보도 제대로 안 돼 못 봤다고 한다면, 역시 단관개봉에 홍보도 제대로 안 되지만 관객이 끊이지 않는 뉴욕의 아트하우스, 도쿄의 소규모개봉관들이 웃는다. 개봉작 수만 많지 볼 영화가 없었다고 주장하더라도, 그 볼 만하지 못해 관객 5만도 못 모은 영화들 중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엉클분미'도, 국내 밀리언셀러 소설의 영화화인 '상실의 시대'도 있었다. '요구'와 '가치' 간 거리는 한국영화시장에서 이토록 크게 벌어져있다.

● 주 소비층 취향은 다양하지 않은데 배급만 다양하게 하라?

끝으로, 영화 주 소비층인 20대 계층에서 유난히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요구가 적다는 점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에 근거를 제시한 사례는 많다. 2년 전 동아일보의 G세대 관련 조사결과도 그 한 예다.

해당조사에서 G세대, 즉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전후해 태어난 현 20대에 대해 JYP엔터테인먼트의 실질적 수장인 박진영은 "G세대는 겉보기엔 개성이 강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모든 학생이 학원·학교·과외와 같은 획일적이고 꽉 짜인 틀 안에서 자랐다"며 "무기력한 로봇 같은 측면이 있고 심지가 약하다"고 평가했고, 소설가 김영하는 "부모 세대와 달라서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똑같아서 문제"라고 지적했다.

결국 문화 다양성이란 대중 본인 자아의 주체성과 독립성, 개별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청년의식의 획일화가 이뤄지고 있으니, 빼도 박도 못하고 그저 '트랜스포머 3'가 전체 스크린의 63.7%를 차지하는 세상에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럼 이에 대해 해결책은 있을까? 사실상 없다고 보는 게 맞는 답이다. 정책적 대안을 거론하는 이들도 존재하긴 하지만, 자유 시장경제 체제 하에서 시장의 판단에 우선하는 정책이란 있을 수가 없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국민들이 '봐야할' 영화들을 골라 스크린에 집어넣는다는 건 상식을 초월한 반시장적 발상이다.

물론 시장논리에만 의존하다보면 프랑스 누벨바그 세대나 미국 아메리칸 뉴시네마 세대가 쏟아냈던 예술영화들을 한국에선 절대 만들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 시대에는 그런 영화들이 바로 인기 있는 흥행영화들이었다.

'이지 라이더'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지금 환율로 무려 2억 달러, 3억 달러 씩을 벌어들인 블록버스터였고, 페데리코 펠리니는 지금으로 따지면 우디 앨런이 아니라 저드 애퍼토우에 가까웠다. 루이 말의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는 관객행렬이 이어져 경찰이 극장 앞에 출동해 교통 정리해야 할 정도였다. 결국 돈이 되기 때문에 만들고, 또 배급했다는 것이다. 그 역시 시장논리에 준하는 선택이었던 셈이다.

이제 상황을 달리 바라볼 필요가 있다. 스크린 독과점을 막을 수 있는 건 정책이 아니라 대중 본인들이다. 소비자가 다른 식으로 행동하기 시작하면 시장구조도 그에 따라 움직이는 게 상례다.

지금 당장 1~2주에 한 번씩 초토화되는 스크린에 불만이 있다면, 인터넷으로 검색해 '인 어 베러 월드' '음모자'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가 상영되는 극장을 찾으면 된다. 자기 집 앞 멀티플렉스까지 배달해줘야 그나마 볼 마음이 생긴다는 이들이라면, 그저 집 앞 중국집에서 자장면 배달시켜 먹으면 되지 메뉴의 다양성을 거론할 입장은 아니다.

대중의 '다른 선택'이 배급의 변화를 일으킨 예는 이미 존재한다. 2년 전 '워낭소리'다. 6개 상영관에서 개봉한 뒤 관객 반응이 거세자 무려 308개까지 상영관이 늘어났다. 최종적으로 3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워낭소리'만큼의 반향은 일으키지 못했지만, 지난해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역시 10여개 상영관에서 시작해 최대 100여개까지 확대된 바 있다. 이런 식의 '다른 선택'이 점차 늘어난다면 당연히 전체 배급체계에도 변화가 올 수 있다.

이처럼 원칙적 결론은 늘 하나인데, 왜 다들 불만만 많은 건지 이해하기 힘들 때가 많다. 어찌됐건 모두의 건투를 빈다.

※ 오·감·만·족 O₂플러스는 동아일보가 만드는 대중문화 전문 웹진입니다. 동아닷컴에서 만나는 오·감·만·족 O₂플러스!(news.donga.com/O2)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