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권재현의 트랜스크리틱]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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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2일 14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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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멜키어 역으로 발탁된 윤현민 씨가 열창하는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초대 멜키어 김무열과 초대 모리츠 조정석을 섞어놓은 듯한 외모가 눈길을 끈다.
2대 멜키어 역으로 발탁된 윤현민 씨가 열창하는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초대 멜키어 김무열과 초대 모리츠 조정석을 섞어놓은 듯한 외모가 눈길을 끈다.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돌아왔습니다. 2009년 국내 초연무대 이후 두 번째입니다. 초연과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소위 스타 캐스팅 없이 주연배우 대부분을 신인급으로 채운 것입니다.

초연 때는 똑똑한 반항아 멜키어와 소심한 범생이 모리츠 역을 '포스트 조승우' 후보로 꼽히던 김무열, 조정석 콤비가 맡았습니다. 이번엔 맬키어 역이 프로야구선수 출신의 윤현민 씨에게 돌아갔습니다.

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김종욱 찾기'의 주연에 발탁된 것이 뮤지컬 이력의 전부인 신인입니다. 모리츠 역을 맡은 정동화 씨는 '형제는 용감했다'와 '헤어스프레이' 등에서 주연을 맡은 베테랑이긴 해도 팬들을 구름처럼 몰고 다니는 스타급은 아닙니다.

여주인공 벤들라 역에 발탁된 송상은 씨 역시 초연 때 벤들라 김유영 씨처럼 이번 작품이 데뷔작입니다. 초연에 이어 이번 공연에서도 성인남자 역을 맡 송영창 씨의 친딸입니다.

짝눈과 큰 코가 아버지를 빼닮은 송 씨는 가창력이 빼어난데 초연을 보고 이 작품에 빠져 이번 오디션에 응모했다고 합니다. 공연 도중 멜키어와 벤들라가 첫사랑을 나누는 장면에서 가슴을 잠깐 노출하는 장면이 있는데 아버지 앞이라고 부끄럼 타는 법이 없네요.

아마도 이번 공연에서 성인 남녀 역을 제외하고 제일 베테랑은 게오르그 역의 이진규 씨 정도일 것입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노트르담 드 파리', '형제는 용감했다', '자나돈트' 등에서 주연급으로 활약한 이 씨는 가장 높은 고음을 소화해야하는 역을 맡아 후배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습니다.

왼쪽부터 모리츠 역의 정동화, 멜키어 역의 윤현민, 벤들라 역의 송상은 씨.
왼쪽부터 모리츠 역의 정동화, 멜키어 역의 윤현민, 벤들라 역의 송상은 씨.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출연진의 무게가 가벼워지면서 원작의 신선함도 함께 살아났다는 점입니다. 김무열과 조정석을 섞어놓은 듯한 외모를 지닌 윤현민 씨와 송영창을 빼닮은 송상은 씨는 뭔가 낯익으면서도 또한 낯선 느낌을 자아내며 무대를 천천히 장악해갑니다.

1막에선 '야 누구 참 많이 닮았다'라는 느낌으로 어색함을 돌파하더니 2막에서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색깔로 원작의 반항적 질풍노도를 그려냅니다.

초연 때 이 작품을 본 어느 제작자가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스타 캐스팅이 아니라 철저히 신인으로 가야하는데"라는 말을 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2007년 미국 토니상 11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 등 8개 부문을 휩쓸었던 이 작품은 정작 남녀주연상은 하나도 받지 못했습니다. 반면 2009년 국내 초연 공연에선 남우주연과 조연상을 받았지만 흥행성적은 기대이하였던 것과 대조적인 결과였습니다.

120년 전 발표된 독일 작가 프랑크 베데긴트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이 뮤지컬은 2006년 초연 때부터 브로드웨이를 충격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습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이 뮤지컬의 등장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브로드웨이는 더 이상 그 전과 같을 수 없다."

십대의 자위, 성교, 동성애에 대한 거침없는 묘사와 기성세대의 부조리한 억압에 저항하는 십대들의 분출하는 감정을 직설적으로 담은 가사, '포기와 베스' 풍의 나른한 블루스와 커트 코베인의 '스멜스 라이크 틴스 스피릿(Smells Like Teens Spirit)'을 연상시키는 폭발적 얼터너티브 록이 뒤섞인 음악…. 이 작품보다 10년 전에 발표됐던 '렌트'(1996년 초연) 이후 아마도 가장 논쟁적인 작품임에 틀림없습니다.

초연 때 쌍두마차 맬키어 역의 김무열과 모리츠 역의 조정석 씨가 교사 역할을 맡은 송영창 씨에게 훈계를 듣고 있다.
초연 때 쌍두마차 맬키어 역의 김무열과 모리츠 역의 조정석 씨가 교사 역할을 맡은 송영창 씨에게 훈계를 듣고 있다.


원작은 19세기말 독일의 청교도 학교를 무대로 부조리한 기성세대에 맞서는 10대의 저항과 파멸을 다뤘습니다. 열다섯밖에 안된 주인공들은 아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궁금해 하는 것 자체를 죄악으로 여기고 교사의 가르침을 벗어난 지식탐구를 불온한 것으로 간주하는 기성세대에 짓눌려 하나둘 희생됩니다.

명문대 진학이라는 목표 로 인해 기성세대에 희생당하는 10대의 슬픈 초상을 그린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닮았습니다. 다만 영화 속에서 그들의 울분을 달래주고 새로운 희망을 키워주는 키팅 선생의 역할까지 같은 10대 동급생인 멜키어가 해낸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이 뮤지컬의 진정한 매력은 그 10대들 내면의 소용돌이를 21세기적 대중문화의 문법으로 표현해낸 데 있습니다. 19세기 식 수업을 받던 학생들에게 조명이 쏟아지면 윗도리 속주머니 속에 감춰뒀던 마이크를 꺼내들거나 무대 밖 스탠드 마이크를 들고 들어와서 거침없는 내면의 감정과 욕설이 섞인 노래를 토해냅니다.

그 음악 역시 19세기 독일 풍의 음악이 아니라 미국적인 얼터너티브 락과 블루스입니다. 표현주의 화가 뭉크의 '절규'를 떠올리게 하는 이런 극적 장치가 작품 곳곳에 스며있습니다.

이런 주관적 감정표출의 극대화를 위해서 이 작품은 심지어 '청교도의 나라' 전통이 살아있는 미국적 공연문법마저 파괴하는 파격을 감행합니다. 여성배우의 가슴과 남자배우의 엉덩이를 노출하는 성애묘사나 파격적인 욕설가사는 일부에 불과합니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을 무너뜨림으로써 배우와 관객이 혼연일체가 되는 한국의 마당놀이를 연상시키는 무대전략도 펼쳐집니다.




무대 중앙에 위치한 직사각형(2.0m×1.5m) 목재바닥의 공간은 그들의 고립된 현실을 상징합니다. 그 공간을 박차고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현실에서 억압된 본연의 자아를 되찾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직사각형 공간에 머물고 있는 어른들을 야유하고 공격할 수 있게 됩니다.

그들은 무대 위 양쪽에 위치한 특별객석에 앉거나 심지어 무대를 둘러싼 삼면의 벽을 타고 오르며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무너뜨립니다. 그런 점에서 무대 위 특별객석에 앉는 관객은 이 공연의 또 다른 배우입니다.

이번 공연에서 이런 무대효과가 진가를 발휘합니다. 스타급 연기자에게 눈을 빼앗기지 않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초연 때 강렬한 드럼비트를 뚫고나오지 못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던 배우들의 고음의 노랫말이 이번 공연에선 귓가에 확실히 전달되기 시작한 점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배우들의 가창력이 좋아진 것보다 연출진의 음향조율 능력이 배가됐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그 덕분에 모리츠가 교사들의 편견과 냉대에 시달리다 부르는 '이 엿 같은 세상(The Bitch of Living)'의 관객 호응도가 훨씬 뜨거워졌습니다. 멜키어가 친구 모리츠 자살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퇴학당할 때 부르는 '완전 새 됐어(Totally Fucked)' 역시 더욱 강렬한 반응을 끌어냅니다.

초연에서는 강렬한 사운드에 치중해 조금 밋밋하게 들렸던 블루스 풍의 '너 떠나네, 너 떠나네(Left Behind)'와 '보랏빛 여름의 노래(Song of Purple Summer)'의 서정적 가사도 가슴에 더 와 닿습니다.

초연 때 이 공연을 놓친 분이라면 이번 공연은 놓치지 마세요. 풋풋한 신인배우와 노련해진 연출진(연출: 김민정)의 조합으로 초연보다 더 원작의 묘미를 잘 살려냈으니까요.

티켓 값도 더 싸답니다. 초연 때 4만~8만 원이던 티켓 가격이 3만~6만 원으로 내려갔으니까요. 9월 4일까지 서울 종로구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02-744-4334.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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