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권 신공항’ 폭풍전야]백지화 기류에 영남권 반발… 정국 ‘태풍의 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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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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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돌리는 ‘우리가 남이가’… 총선-대선 앞두고 與텃밭 핵분열

성난 표정의 대구지역 의원들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28일 대구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이 국회 의원회관 회의실에 모여 정부를 성토하며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 왼쪽부터 한나라당 배영식 박종근 이한구 조원진 서상기 유승민 의원.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성난 표정의 대구지역 의원들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28일 대구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이 국회 의원회관 회의실에 모여 정부를 성토하며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 왼쪽부터 한나라당 배영식 박종근 이한구 조원진 서상기 유승민 의원.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동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이 백지화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여권의 최대 지지 기반인 영남권이 들끓고 있다. 여권은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영남권이 대거 이탈하거나 핵분열할 가능성에 바싹 긴장하고 있다.

한나라당 핵심 관계자는 28일 “그동안 ‘영남권의 분열을 막고, 4·27 재·보궐선거에 미칠 악재를 제거하기 위해 입지 선정을 백지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정작 백지화는 문제 해결이 아니라 새로운 갈등의 시작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 대구·경북·경남·울산, “심각한 사태 일어날 것”

영남권 5개 광역지방자치단체는 “예정된 발표를 차분하게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백지화만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범일 대구시장은 “백지화가 사실이라면 정부 평가단의 후보지 평가는 형식적인 각본에 따른 것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김관용 경북도지사도 “백지화는 경제성을 가장한 수도권 중심 논리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이날 대구지역 의원들의 모임이 끝난 뒤 대구시당 위원장인 유승민 의원은 “이런 식으로 흐지부지되는 것은 곤란하다”며 입지 선정을 예정대로 추진할 것을 요구했다.

김두관 경남도지사도 “만약 백지화된다면 다른 지자체와 함께 모든 방법을 동원해 강력히 저항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동호 울산시 행정부시장은 “백지화는 영남 주민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처사”라며 “심각한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밀양이 지역구인 조해진 의원은 “신공항 건설은 주민들의 10년 숙원사업이었다는 점에서 내년 총선까지 반대 집회·시위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신공항 밀양유치 4개 시도 결사추진위 강주열 본부장을 비롯한 대표들은 29일부터 국회의사당 앞에서 무기한 단식투쟁에 들어갈 예정이다.

○ 부산권도 “백지화 수용 못해”

부산지역 의원들도 탐탁지 않은 분위기다. 한 부산지역 의원은 “현재 상황에서는 김해공항 확장이 그나마 대안”이라고 했지만 역시 부산에 지역구를 둔 박민식 의원은 “백지화는 잘못된 절차”라고 목청을 높였다.

부산시는 “일단 정부의 평가 결과를 지켜보겠지만 신공항 백지화도, 김해공항 확장도, 결정 연기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독자적으로라도 계속 (가덕도로의) 김해공항 이전을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50여 개 시민사회단체로 꾸려진 ‘가덕도 신공항 유치 범시민 비상대책위원회’는 “신공항 유치를 위해 벌인 20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면 부산 시민들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치논리를 앞세워 백지화한다면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표로 심판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 몸 사리는 여권 지도부

한나라당 지도부는 신공항 문제에 함구하면서 극도로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도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가능성에 대해 “정해진 게 없다”며 말조심을 하는 모습이다. 이날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특별한 논의는 없었다고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은 전했다.

한 고위 관계자는 “두 지역이 그렇게 싸울 바에야 백지화하는 게 낫겠다는 정도의 얘기가 정치권 일각에서 나왔을 뿐이지 실제로 백지화될지 유보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니냐”며 “청와대는 평가단의 평가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특정한 결론을 유도하기 위해 막후 조율을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백지화를 주장해 온 수도권 등 비영남 의원들은 “이번 기회에 신공항 논란을 잠재워야 한다”는 분위기다. 정두언 최고위원은 이날 라디오에서 “정말 꼭 필요한 일이라면 한쪽이 다치더라도 우리가 감행을 해야 되겠지만 아니라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뭐가 있느냐. 이미 1년 반 전에 경제성이 없다고 나왔다”고 말했다.

○ 틈새 비집는 야당, “MB가 태도 밝혀라”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진짜 국민이 믿을 수 있도록 동남권 공항에 대한 확실한 입장을 밝혀줄 것을 요구한다”고 압박했다. 그는 “대통령이 2007년 대선 공약을 너무 자주 헌신짝처럼 버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신공항을 둘러싸고 여권이 내홍에 휘말린 상황을 은근히 즐기는 분위기다. 사업 백지화에 비판적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이러한 ‘호재’가 이어지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대구=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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