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집중분석]꼴찌팀 이끌고 1등 드라마 만들어낸 ‘제빵왕 김탁구’ 이정섭 PD

  • Array
  • 입력 2010년 12월 30일 15시 00분


코멘트
2009년 평균시청률 6%의 \'천하무적 이평강\'을 연출했던 이정섭 PD는 올해 \'제빵왕 김탁구\'로 50%를 넘으며 재기에 성공했다. 사진제공 KBS
2009년 평균시청률 6%의 \'천하무적 이평강\'을 연출했던 이정섭 PD는 올해 \'제빵왕 김탁구\'로 50%를 넘으며 재기에 성공했다. 사진제공 KBS
삼성경제연구소가 뽑은 올해의 최고 히트 상품은 케이블 채널 엠넷(Mnet) 프로그램 '슈퍼스타K 2'다. 그런데 환풍기 수리공 청년 허각의 우승만큼 이 시대 루저(loser)에게 희망을 안겨준 드라마가 있었으니, 바로 KBS2 '제빵왕 김탁구'(이하 김탁구)다.

삼성경제연구소의 히트 상품 5위에 오른 '김탁구'는 2009년 '천하무적 이평강'을 연출했던 이정섭 PD(40) 팀의 작품이다. '천하무적 이평강(이하 이평강)'은 경쟁작인 '선덕여왕'(MBC)의 기세에 눌려 평균시청률 6%로 처참하게 무너졌지만, '김탁구'는 소지섭 김하늘의 '로드 넘버원'(MBC), '선덕여왕' 비담 김남길의 '나쁜남자'(SBS)를 상대로 평균 38.7%, 마지막회 시청률 50.8%(TNms 집계)을 기록했다.

덕분에 이 PD는 올 연말 시상식에서 가장 많이 호명되고 있다. 여의도클럽 방송제작부문 방송인상, 코리아드라마페스티벌 연출상, 대한민국 문화연예대상 드라마PD상 등 지금까지 받은 상만 5개. KBS '연기대상' 등 굵직한 시상이 남아있으니 트로피는 추가될 것이다.

"기억에서 잊혀져 가는데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 모르겠다"던 이정섭 PD를 KBS 별관에서 만났다.

▶ 머리에 총 맞은 캐스팅, 죽으러 들어가는 대진운… 그래도 연출 맡은 이유

-잊혀질 수 없는 작품일텐데요.
"(웃음) 물론 그렇죠."

-사진보다 동안이세요.
"아들이 11살인걸요. 아들이 다니는 학교 선생님들께 '김탁구' OST에 싸인을 해서 드렸더니 담임선생님께서 '아빠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하셨대요. 그런데 우리 아들은 아빠처럼 되기 싫대요. 매일 출장 다니고 집에 일찍 못 들어가니까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을 안 해요."

-'김탁구' 촬영 기간에는 집에 몇 번이나 들어갔나요?
"제 원칙은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는 쉬는 겁니다. 대개 방송을 시작하면 하루도 못 쉬고 촬영팀을 돌리지만 그렇게 해선 연기자나 스태프들이 대본을 제대로 볼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김탁구'도 하루를 꼭 쉬게 했는데 연기자 소속사에서 그날을 이용해 홍보나, CF, 행사 스케줄을 잡는 겁니다. 그걸 알고 나선 대본 연습을 핑계로 연기자를 불렀지요. 연기자들로선 어디 끌려다니지 않으니 편해서 좋았다고 합니다. 소속사에도 '하루 쉬라고 하는 것은 쉬고 준비하고 대본보라는 뜻이지 연기자들로 장사하라고 한 말이 아니다. CF나 예능프로 출연시킬 경우 가만있지 않겠다'고 협박했어요."

-그날 촬영해 그날 방송하는 한국 드라마 시스템상 하루 쉬는 게 가능한지요?

"보통 안 쉬고 잠 안자고 찍는데,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해봐야 그림도 제대로 안나오고 연기도 안 되거든요. 하루에 4시간은 자고 일주일에 하루는 쉬어야죠. '김탁구' 촬영 기간을 통틀어서 4시간을 못 잔 경우는 하루이틀 정도 일 듯해요."

이 PD는 "방송 전 날까지 무조건 촬영을 끝내고 방송 당일은 쉬는 것이 원칙"이라며 "'김탁구'의 경우 수목 드라마였으니 화요일까지 촬영을 끝냈고 매주 수요일은 연기자 스태프들이 쉴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단편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한 적도 있는 이정섭 PD는 신인인 윤시윤과 주원의 연기 지도를 직접했다. 그는 "키스 신을 지도하다 윤시윤과 입술이 부딪히기도 했다"며 웃었다. 탁구(윤시윤)과 유경(유진)의 키스 신.
단편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한 적도 있는 이정섭 PD는 신인인 윤시윤과 주원의 연기 지도를 직접했다. 그는 "키스 신을 지도하다 윤시윤과 입술이 부딪히기도 했다"며 웃었다. 탁구(윤시윤)과 유경(유진)의 키스 신.


-방송 후반부에는 쪽 대본으로 진행되지 않나요?
"그건 제가 용납 못해요. 불안해서 작가와 같이 대본작업을 하더라도 빨리 완성하려고 하죠. 만약 쪽대본이 나오면 촬영을 아예 안 나가요. 몰리더라도 대본이 어느 정도 촬영할 분량이 됐을 때 나가죠.

-방송 5일 전 메인 연출을 맡았어요. 그런 상황에서도 촬영 원칙을 지킬 수 있나요?
"미치는 줄 알았죠. 정말 하기 싫었죠. 2009년에 '천하무적 이평강' 평균 시청률 6% 내놓고, 이번엔 '김탁구'를 하라는데 캐스팅은 윤시윤 주원이고, MBC '로드넘버원'은 소지섭 김하늘 SBS '나쁜남자'는 김남길 한가인…. (한숨)"

'김탁구' 공동연출이자 프로듀서를 맡고 있던 이 PD는 메인 연출자가 하차하며 첫 방송 5일 전에 메인 연출을 맡았다. 이 PD는 당시를 회상하면 지금도 당혹스러운지 한숨과 웃음을 반복하며 대답을 이었다.

"이 캐스팅은 머리에 총 맞은 거예요. (웃음) 한 방송사의 수목드라마가 30부작이면 4개월이죠. 올해 KBS 흑자 요인을 '제빵왕 김탁구' '추노'로 꼽는데 만약 우리 드라마가 실패했고 KBS가 적자가 났다면 전부 우리 때문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잖아요. 그러니 메인 연출하라고 했을 때 안한다고 했죠. 저는 계속 공동 연출할테니 다른 사람이 오면 좋겠다고 했어요. 사실 이 대진운은 죽으러 들어가는 것이라는 게 눈에 보이니 메인 연출을 맡겠다는 사람이 없죠. 그랬는데 강은경 작가가 굉장히 힘들어했어요. 방송을 보류할 상황까지 갔었고, 강 작가는 저한테 결정내리라면서 도피용 미국행 비행기까지 끊어놓았다고 하더군요. 사실 강 작가도 전작 성적이 좋지 않았고 2년 만의 복귀작이었고 저도 '이평강'이 6% 시청률이었잖아요. 만약 '김탁구'가 시청률이 저조해서 조기 종영한다면 앞으로 2~3년은 월화, 수목 미니시리즈는 못 하는 거거든요. 강 작가께 '내 인생 책임지겠냐. 나에겐 굉장히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책임을 지겠다더군요. 만약 이번 작품이 망가지면 같이 다음 작품으로 만회하자는 암묵적인 동의, 서로간의 믿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연출을 맡아야겠다고 결정했던 이유가 있나요?
"전광렬 전인화 선배랑 식사하면서 이야기하는데 우리 드라마를 사랑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지금까지도 촬영 중단되고 방송 보류 이야기까지 나오는 고통을 겪었는데… 제가 공동연출이니 일단 내 식구들이잖아요. 내 자식이 남의 집 가서 찬밥 먹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들어서 '에이씨! 내가 해버리고 만다' 그렇게 된거죠."

그는 "이 드라마가 좋고 사명감이 있어서 연출을 맡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드라마를 싫어했다"며 웃었다.

-왜 싫으셨나요?
"저는 항상 우리 아들이 봐도 부끄럽지 않은 드라마를 만들려고 해요. 그런데 어느 날 아들하고 밥을 먹는데 '아빠 이번엔 무슨 드라마해?' 묻는데 '이번에 아빠는 네가 봐서는 안 될 드라마를 한다'고 했어요. 1~6회에 살인 강간 등 온갖 막장적 요소들이 다 들어있었잖아요."

-방송 초반부터 막장 비난이 많았어요.
"1~6회 대본을 보고는 강 작가께 제가 아들과 나눈 대화를 들려줬어요. 나중에 강 작가가 굉장한 상처였다고 말하더군요. (웃음) 그 대화 후 젊은이가 빵에 대한 꿈을 품고 희망차게 살아가는 이야기로 드라마톤이 조금은 바뀌지 않았나 싶어요. 그렇더라도 6회까지의 막장적인 요소는 사실 70, 80년대 부모세대들이 살아왔던 모습이에요. 아버님들이 바람을 피셨고 어머님들은 이혼을 하네 마네 쥐약을 먹네 마네 부부싸움을 하셨고요. 그런 가정환경에서 저희들이 자라왔고요. 막장이라면 막장이지만 우리가 살아왔던 모습이기도 합니다. 단지 보기 싫은 것 뿐이죠. 강 작가는 막장 비난에 대해 막장적 요소가 개연성 없이 흥미 위주로만 설정된다면 비난 받아야겠지만 우리가 살아왔던 모습이고 음모를 그리는데 있어서 필연적으로 보여줘야 할 부분이라면 막장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김탁구가 막장이 아니라는 강 작가의 말에 동의하는 건가요?
"막장적 요소를 막장이 아니게 찍으면 되는데 막장으로 찍으면 문제인 것이죠. 대본을 쓸 때 막장으로 쓰느냐의 문제가 있고, 연출자로 드라마를 찍을 때 막장으로 찍었느냐의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제 역할은 겁탈하는 장면을 원초적으로 찍느냐 아니면 괴로운 감정에 충실해서 찍느냐인데 원초적으로 찍지 않았기 때문에 막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첫 방송 5일 전 메인 연출을 맡은 이정섭 PD는 "방송은 막아야 해서" 촬영하느라 제작발표회 현장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제빵왕 김탁구' 제작발표회. 사진제공 KBS
첫 방송 5일 전 메인 연출을 맡은 이정섭 PD는 "방송은 막아야 해서" 촬영하느라 제작발표회 현장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제빵왕 김탁구' 제작발표회. 사진제공 KBS

▶ 스태프에게 '우리가 최고' 자부심 심어주고파

-갑자기 메인 감독을 떠맡는 바람에 화가 나 제작발표회에 오지 않았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그건 아니에요. 저는 드라마 연출할 때 첫 방송 전에 최소 6회까지는 완성합니다. 그런데메인 연출 맡겠다고 결정하고 방송은 5일 남았는데 1~6회 촬영이 50%가 안 돼 있었어요. 촬영된 분량도 연출 이정섭이라는 이름으로 내보내기에는 용납이 안 되는 상황이었고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20~25%는 재촬영해서 완성했어요. 게다가 1~6회는 아역 배우들이 출연했고 시대극이라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아 다녀야 했어요. 여주 대구 합천 춘천에서 1, 2신 찍고 전주 가서 자는 일정으로 돌고 있으니 제작발표회에 갈 수 없었죠. 스태프들에게 '이제부터 전국을 떠돌아 다녀야 하고 지금 출발하면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일단 보름쯤 출장간다고 생각하고 옷을 싸가지고 나오라'고 하고 촬영 중일 때였어요. 일단 방송은 막아야 했으니까요."

그는 "전국을 떠돌아 다녀야 하니 내가 몇 마디 하지 않아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고 알아서 움직여줄 스태프들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스태프들에게 전화해 '방송 5일 전입니다. 경쟁작은 '로드넘버원'과 '나쁜남자'입니다. 안하신다고 해도 미워하진 않겠습니다. 그러나 힘듭니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흔쾌히 응해주셨어요. 그렇게 제 멤버들이 다 모였습니다."

-그 멤버들이 '천하무적 이평강' 스태프라고 들었어요.
"'이평강' 때 스태프이고, 제가 단막극 데뷔했을 때 스태프에요. 10년 정도 같이 한 스태프들이죠."

-종방연 때 일부러 '이평강' 스태프들을 모았다고 하셨는데.
"우리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는 오기도 있었고요. '우리는 최고의 스태프'라는 자부심을 주고 싶었어요. 저는 그 분들이 최고로 빨리, 잘 찍는다고 생각하는데 드라마 시청률이 안 좋으면 스태프들이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하거든요. '이평강' 끝나고 나서도 격려 같은 것이 없어서 마음이 너무 안 좋았어요. '김탁구'가 시청률이 높게 끝나고 제작사인 삼화네트웍스에 '연출자에게 무언가 해 줄 생각은 절대 하지 마라. 대신 우리 스태프들 막내까지 모두 해외 여행 보내달라, 막내 하나라도 빠지면 나는 여행에 가지 않겠다, 그리고 사람들한테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제작사가 연출자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않았다고 말하겠다'고 했어요.(웃음)"

'제빵왕 김탁구'의 연기자와 스태프 50~60명은 9월 말 태국 파타야로 3박5일간 포상휴가를 다녀왔다.

-시청률이 높아서 다행이었지만 반대로 망할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스태프들 모을 때는 자부심 이야기 안하고 그냥 도와달라고… 너무 힘드니까 (웃음) 죽어라고 뛰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거죠."

-감독님 원칙대로 일주일에 하루 쉬고, 하루에 4시간 자면서 정상적으로 굴러간 건 몇 회 부터인가요.
"100% 제가 찍은 그림이 나간 7회부터입니다. 저는 그림보다 촬영의 효율성을 우선으로 여겨요. 전국으로 흩어져있던 촬영지를 청주와 평택으로 모았어요. 합천 가는데 6시간이 걸리는데 합천 쪽에 이미 팔봉 제빵점과 거리 세팅으로 7000만원 정도가 들어가 있는 상태였어요. 제작사에 지금까지 들어간 돈을 포기하겠냐 아니면 방송을 포기하느냐 선택하라고 했고 합천을 포기하고 청주에 팔봉제빵점을 다시 세팅했죠."

▶ 몽유병(?) 증상까지…새벽 3시 부인과 아들 치우고 거실에서 컷!

-연장 이야기가 있었어요.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강 작가는 결막염에 걸려 한쪽 눈을 감고 대본을 썼고요. 나도 너무 힘들었어요."

유독 힘들었던 이유는 한 여름에 빵 만드는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밀가루 반죽하는데 30분, 숙성시키는데 30분~1시간, 숙성된 반죽을 판에 공굴리기해서 다시 숙성하는데 또 1~2시간. 숙성된 반죽을 빵 모양으로 잡아서 다시 1시간 숙성. 그리고 15~20분을 오븐에서 굽는다. 이 절차가 드라마 촬영과 안 맞아요. 그런데 또 이 과정들을 그 때 그 때 타이밍에 맞춰서 찍지 않으면 제대로 된 그림이 안 나와요. 제빵실에서 벌어지는 일과 인물들이 부딪히는 감정들이 좋아서 제빵실 장면을 포기할 수는 없고… 한 회에 제빵실 장면이 3~4번 나오는데 아주 돌아버리는 거죠. 게다가 한 여름에 촬영했잖아요. 200도 오븐 6개 켜놓고 폐쇄된 제빵실에 스태프들 20, 30명 들어가서 연기 효과를 내기 위해 스모그를 뿌려놓고요. 환풍기라도 틀고 싶은데 스모그 빠져나갈까봐 못 틀고 소음 때문에 문도 못 열죠. 아침 7시에 촬영을 시작하면 그 다음날 해가 떠야 촬영이 끝났어요. 촬영 끝나면 문 열고 나와서 해 뜨는 것 보면서 맑은 공기 마시면서 심호흡합니다. 옷에는 하얗게 소금기가 올라와 있고요."

일주일에 하루 쉬고 하루에 4시간 수면을 보장하는 이 PD지만 이 원칙은 연기자와 스태프들에게만 해당된다. 연기자나 스태프들이 쉬거나 잘 때 이 PD는 편집과 촬영 준비에 바빴다.

"수요일 아침에 연기자들과 스태프들은 집으로 가고 저는 편집하러 회사에 갑니다. 오후 1시 쯤 편집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 잠깐 자고 6시에 일어나 저녁을 먹죠. 다음 한 주 촬영 준비하고 대본보고 작가와 이야기 나누고 수정하면 새벽 1~2시에요. 잠자리에 들면 3시쯤 잠이 깨는 게 아니라 일어나요. 그리고 거실에서 촬영을 시작해요. 탁구와 미순이 유경이가 앞에 보이고 제 뒤로는 스태프들이 보여요. 연기 지도도 하고 촬영을 하는데 바닥에 누군가가 누워있어요. 촬영에 걸리적거리니 치워놓죠. 부인과 아들이에요. (웃음) 그러다 4시에 알람이 울리면 잠에서 깨서 준비하고 5시에 촬영장으로 출발하죠."

-부인과 아들이 정말 놀랐겠어요.
"이제는 익숙해졌어요. 자다가 앉아서 손 올리고 컷을 외치면 부인이 손을 잡아 내리면서 '그냥 좀 자' 그러죠. 이 직업병이 드라마가 끝났는데도 계속 되더라고요. 한쪽 머리에선 '드라마 끝났어' 이야기하는데 다른 한 쪽에선 '재방송에 끼워넣는다더라' 변명을 하고, 재방송도 끝날 즈음이 되니 또 'DVD에 넣는다더라' 그래요. 두 달 정도 그랬던 것 같아요."

-그 정도로 노이로제가 심했다면 병원에 갔어야 하는 게 아닌가요?
"잠 안자고 버텨야하니 하루에 커피를 20, 30잔 마셨어요. 스태프들이 몸에 좋은 커피라고 기니산, 콜롬비아산 등 온갖 커피를 줬어요. 그 커피에 중독 증상이 있는 것 아닐까요? (웃음) 그렇게 살다보니 시청률도 높고 좋지만 우선 내가 살아야 할 것 같아서 연장 못했어요."

-제작사에서는 연말에 번외편이 나오고 후속편도 고려 중이라고 했어요.
"이야기는 있었어요. 어린 탁구가 성인으로 갑자기 컸잖아요. 그 기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제작하려고 했는데 그러면 새로운 미술이 들어가고 완전히 새로운 드라마가 되어야 하는 거라 결국 무산됐어요."

-연기 경험이 있다고 들었어요.
"대학 시절 극회 활동을 했었어요. 단편영화에 단역으로 몇 번 출연했고요. 그 시절 연기 트레이닝 받았던 경험으로 연기자들이 말로 설명해서 못 알아들을 때 직접 해서 보여주죠. 이를테면 탁구한테 '네가 마준이 대사해봐. 내가 탁구 대사하면서 보여줄게' 이렇게요."

-탁구의 키스 신도 직접 지도하셨나요?
"탁구랑 마준이가 실제 키스를 해 본 적이 없어요. 마준이는 키스를 해 본 것 같기도 하고, 탁구는 해봤다고는 하는데 자존심 때문에 거짓말하는 것 같고요. 키스 경험도 없고 키스 신을 찍어 본 적도 없는 거죠. 그래서 탁구한테 '네가 유경이고 내가 탁구야' 가정하고 키스 할 때는 어떻게 입술이 들어가야 하고 카메라에 얼굴이 보여야하니 각도를 틀어야 하는 등 알려줬죠. 잠깐 실수로 거리 조절을 잘 못해서 탁구랑 입술이 부딪힌 적은 있어요."

-윤시윤과 주원, 탁구와 마준이의 연기는 얼마나 달라졌나요.
"탁구는 눈물 신에서 눈물이 안 나와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강지환처럼 눈물 신을 앞두면 슬픈 음악을 듣다가 감정을 잡고 눈물 흘린다거나, 연기자들은 자기만의 방법이 있거든요. 그런데 탁구는 그 방법을 몰랐죠. 사람 하나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골방에 가두고 눈물 나올 때까지 안 꺼내준다고도 해보고 양파를 눈 밑에 비벼보기도 하고 별의별 방법을 다 써봤어요."

-안약을 넣으면 쉬울 텐데요.
"탁구가 안구건조증이라 눈이 안약을 먹어요. (웃음) 결국은 스스로 울었어요. 드라마 막바지에는 자유자재로 눈물을 흘렸고요. 이제 전인화 전미선 씨처럼 눈물은 글썽글썽하는데 흘리지 않는 경지를 배워야죠. 감정을 터뜨리는 건 알았는데 조절하는 경지는 아직 못 배운 거예요. 주원이는 굉장히 영리해요. 전인화 전광렬 씨 연기하는 걸 가만히 보고 있다가 본인 연기할 때 써먹어요. 뮤지컬 배우 출신이라 카메라 앞에 한 번도 서보지 않았던 친구인데 후반부에는 능수능란하게 잘했죠."

이정섭 PD가 종방연에서 "처음 '김탁구'가 방송에 나갈 수 있을지 없을지 조마조마 했었다"며 소감을 밝히자 윤시윤이 눈물을 흘렸다. 사진제공 KBS
이정섭 PD가 종방연에서 "처음 '김탁구'가 방송에 나갈 수 있을지 없을지 조마조마 했었다"며 소감을 밝히자 윤시윤이 눈물을 흘렸다. 사진제공 KBS

▶ '김탁구' 성공은 시청률 초월해서 만들었기 때문

-2009년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선덕여왕'보다 시청률이 높았어요.
"정말 통쾌했어요. '이평강'이 '선덕여왕' 중간에 방송을 시작했는데 '이평강' 1회 때 미실이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해서 2회 끝나고 5분 후에 죽었어요. 방송 분량도 길게 했던 거죠. '아, 이렇게 밟아버리는구나' 싶었어요. 그리고 12회 연장까지 했죠. 결국 '이평강' 종영 2주 전에 끝났는데 우린 이미 너덜너덜해진 뒤였어요."

-반대로 '제빵왕 김탁구'에 '로드넘버원' '나쁜남자'가 당했죠.
"(민망해하며) 사실 시청률과 별도로 드라마 질도 봐야하는데 너무 시청률로 성공 실패가 갈리니 안타까워요. '나쁜남자' 이형민 PD는 친한 선배이기도 하고 제가 굉장히 재밌게 본 드라마에요. 영상도 뛰어났고 배워야겠다 싶은 점도 있었죠. 그랬는데 너무 처참하게…. '로드넘버원'은 뭐… 사실 우리 드라마에 출연하겠다고 했다가 번복한 연기자들이 MBC로 간 경우라서 그다지…."

말끝은 흐렸지만 씩 웃는 얼굴에 통쾌함이 묻어났다.

-'로드넘버원' 이장수 PD, '나쁜 남자' 이형민 PD는 제작발표회에서 서로를 경쟁작으로 꼽았어요. '제빵왕'은 언급도 하지 않았는데…
"그럴 수밖에 없죠. 저도 조기종영할 줄 알았어요. '20%만 넘기자.' 그런데 첫 방송이 15%를 넘었고 재방송 시청률이 15%였어요. 주간 시청률 순위에 김탁구 재방송이 올라갔을 정도에요. '장난이 아닌데' 했는데 3회에 20%를 넘었어요. 보통 드라마가 10% 후반에서 20%를 넘기기 위해서는 주인공 남녀가 헤어진다거나 키스를 한다거나 하는 기술을 써요. 20% 후반에서 30%로 올릴 때도 누구 하나 죽이거나 큰 사고를 당하게 하는 기술을 쓰고요. 시청률 올리기 위해 독한 약을 쓰는 거죠. 그런데 '김탁구'는 약을 쓰기도 전에 시청률이 걷잡을 수 없이 쭉 올라갔어요. 그러다보니 '대체 어떤 드라마길래' 하면서 보셨던 분들도 계셨던 것 같고요. 빵이 맛있게 그려졌던 부분도 있었던 것 같아요."

-빵을 잘랐을 때 올라왔던 김이 컴퓨터 그래픽(CG)이라는 말도 있었어요.
"김은 제 자존심이었어요. '맛있는 드라마를 만들겠다'고 강조했었거든요. 맛은 미각이라 TV로 보여줄 수 없는 감각이지만 그래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빵이 맛있는지 맛이 없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핵심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 따끈따끈한 김이라고 생각했어요. 진짜 김을 보여줘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고 70, 80%는 실제 갓 구운 빵에서 나온 김이에요. 막바지에는 시간에 쫓기다보니 20% 정도 CG처리를 했는데 원칙을 지켜내지 못해 마음이 아팠죠. 사전에 준비 기간이 좀 더 길었으면 더 좋은 드라마 영상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있어요. 최고 시청률 50.8%를 기록하며 대중들이 기억할 텐데 그런 아쉬움들이 오점이 되니까요."

-시청률을 떠나 작품성으로 본다면 '김탁구'는 어떤 의미의 드라마인가요.
"시청률을 초월해서 만든 드라마에요. 20%, 30%를 넘으려 약을 치고 개연성 없는 장치를 넣어 시청률을 올리려 하지 않은, 작가는 쓰고자 하는 대로 썼고 저는 찍고자 하는 대로 찍었죠. 시청률이 응원이 돼서 더 쓰고 싶은 대로 쓰고 더 찍고 싶은 대로 찍었고요. 시청률이 편하게 해주니 완성도도 높았고요."

-마지막 회가 50%를 넘었죠.
"정말 좋았어요. 27, 28회에 50% 못 넘는 것 보면서 결국 못 넘는구나 했거든요. 보통 드라마 마지막회에 갈등이 해소되면서 김이 새버리니 오히려 시청률이 떨어지거든요. 그런데 마지막회에 50.8%가 딱 찍히니 이야…."

-'KBS 연기대상'에서도 상을 기대하시나요?
"아하하하. 네. 그런데 연출자가 다 했거니 하는데 같이 한 사람들이 있어요. 그들이 다 같이 주목받고 같이 상받아야하는데 우리나라는 연출자 한 사람에 주목하고 상주는 건 좀 그래요. 팀으로 주면 좋겠어요."

이 PD는 "내년에도 '김탁구' 스태프, 작가와 작업할 것"이라고 했다.
"드라마 끝내고 '강 작가님 저랑 했는데 기분 나쁘셨습니까?' 물었더니 좋았다고 해서 '저도 좋았습니다. 서로 기분 나쁜 게 없었으면 한 작품 더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했더니 좋아하시더라고요. 스태프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내년에 한 작품 더 하기로 했는데 어떤 작품을 할지는 모르겠어요. 지금은 아무 생각도 하기 싫은 멍한 상태니 내년에 차차 생각하자고 하고 너무 극악스럽지 않고 너무 부자들 이야기 말고 서민들이 힘차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자는 원칙만 가지기로 했어요. 다시 가족들과 고생 터로 달려가야죠."

김아연 기자 aykim@donga.com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 오·감·만·족 O₂는 동아일보가 만드는 대중문화 전문 웹진입니다. 동아닷컴에서 만나는 오·감·만·족 O₂!(news.donga.com/O2)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