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집중분석]드라마캐릭터열전⑩ 헐벗은 팜 파탈 모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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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2일 15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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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으로라도 사랑받고 싶었던 여자, 모윤희(황신혜 분).

대부분의 악녀가 그렇듯, 그녀 역시 자기 본능에만 충실한 여자였다.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사랑을 되찾기 위해 뇌쇄적인 관능미로 이미 다른 여자의 남자가 된 첫사랑을 거침없이 유혹하는 모습은 본능에 충실한 욕망 그 자체였다.

물론 통제할 수 없는 본능적인 욕망 때문에 다른 사람을 불행에 빠뜨리는 그녀에게서 전형적인 악녀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녀는 다르다.

거짓말이라도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겠다고 생각하는 그녀의 행동에선 사랑에 약한 여자의 본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런 그녀를 단순히 이분법적 논리로 악녀라고 매도할 수 있을까?

목숨 걸고 사랑을 갈구하는 그녀가 다른 사람을 불행에 빠뜨리는 악녀로 보이는 것은 어린 시절 정신적 외상에서 비롯한 지독한 자기애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자기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아무렇지 않게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는 것을 보았던 그녀. 그로 인한 상처가 그녀를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 본능에 충실한 독종으로 만든 것이다.

본능적 욕망을 통제하지 못한 채 도발적이고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그녀를 마냥 비난하기 어려운 것도 그 때문이다. 명망 있는 가문에서 유복하게 자란 남자와의 결혼에 성공한 이후 행복할 것 같았던 그녀의 삶이 여전히 결핍의 연속이었던 것도 그래서이다.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으나 정작 중요한 사랑을 갖지 못한 그녀 모윤희의 불행의 원인은 바로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의 가치를 빛나게 해주는 자기애의 결핍에 있었다.

불신과 증오, 탐욕과 질시, 그리고 불륜과 살인으로 부서진 부부 간의 문제를 '미스터리 멜로'로 풀어가고 있는 드라마 '즐거운 나의 집'에서 갈등의 진앙지 역할을 하고 있는 모윤희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캐릭터이다.

어려서 함께 생활했던 친동생 같은 김진서(김혜수)에게 첫사랑의 남자 이상현(신성우)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며 복수를 감행하는 그녀는 언뜻 사랑의 피해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녀가 어떻게 첫사랑을 빼앗겼는지가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상현을 끊임없이 욕망하면서 갈등을 일으키는 모습은 영락없는 가해자이기도 하다.

질투심과 시기심을 어쩌지 못하는 그녀가 김진서와 이상현의 '즐거운 나의 집'을 악몽의 현장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윤택한 성장 환경과 정신과 전문의로서의 능력, 그리고 뛰어난 미모와 행복한 결혼 생활 등 자신이 갖지 못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김진서에 대한 그녀의 지독한 열등감은 치욕적인 수모를 감내하면서 쟁취한 사학 재단 이사장 성은필(김갑수)과의 결혼으로 치유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죽은 줄 알았던 남편의 전처가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녀는 결코 행복할 수 없었다. 결혼 생활 6년 내내 철저하게 기만당했다고 생각한 그녀는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첫사랑이자 대학 시간강사로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가던 이상현에게서 위로받고 싶었다.


이상현을 되찾는 것은 그녀가 그토록 싫어하는 김진서 때문에 불가능했다. 게다가 이상현은 21살의 여대생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반드시 가져야만 직성이 풀리는 모윤희로서는 견딜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그럴수록 이상현에 대한 갈망은 그녀의 동공을 퀭하게 만들었고 김진서를 향한 근거 없는 증오심은 걷잡을 수 없이 솟구쳐 올랐다. 그래서 모윤희는 개인 병원을 개원하게 된 김진서의 첫 번째 환자로 이상현의 불륜 상대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복수를 자행하면서 바닥을 알 수 없는 상대적 박탈감과 상실감을 벗어던지기 위해 몸부림친다.

그런데 불행의 늪에 빠질 줄 알았던 김진서는 너무도 의연하게 남편의 외도를 용서하고 평온한 생활을 유지했다. 불행한 상황에서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김진서의 태도가 모윤희에게는 또 다른 치욕이고 수모였다.

설상가상으로 자신의 생일파티가 있던 날 남편이 의문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상황에서 김진서는 몇 개월에 걸친 진료 결과를 토대로 성은필이 절대 운전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 증언했다. 이를 근거로 올케 성은숙(윤여정)은 동생이 살해당했을지 모른다고 의심하면서 모윤희를 살해용의자로 지목한다.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에도 모른 척했던, 그래서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가슴 속에서 죽여 버린 아버지와 자신이 짜고 살인을 교통사고로 위장했다는 성은숙의 의심 때문에 억울한 상황에 처한 모윤희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끊임없이 긴장한다.

자신이 남편을 살해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모윤희가 성은숙의 의심에 대해 겉으로는 당당하게 행동하지만 내심 불안해하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은 한 번도 제대로 가져 본 적 없이 빼앗기기만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그녀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빼앗기지 않기 위해 독하게 행동하면 할수록 그녀의 가슴 속은 흙바람 이는 황폐한 벌판처럼 지독한 외로움으로 가득 찬다. 성은필을 죽게 만들고 이상현을 불행에 빠뜨린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윤희는 남자를 파멸에 이끄는 팜 파탈처럼 보이지만 실은 가질 수 없어 허허로운 사랑 때문에 피가 마르는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여자였던 것이다.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마는, 상처를 정신적인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지 못할 경우 그것은 극복하기 어려운 콤플렉스가 되면서 존재를 불안하게 만든다. 남편의 죽음과 유산을 둘러싼 성은숙과의 갈등, 자기 것을 빼앗은 김진서에 대한 증오와 빼앗긴 사랑을 되찾고 싶은 욕망이 뒤섞인 모윤희의 심리 상태가 혼란스러울 정도로 불안한 것도 그래서이다.

도발적이고 뇌쇄적인 눈빛으로 이상현을 바라보다가도 그가 자신을 거부할라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냉기를 쏟아내는 눈빛이 교차하는 모윤희의 퀭한 눈동자는 그녀가 얼마나 지독한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넌 다른 사람 인생을 망칠 소지가 다분해!"라는 김진서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배제된, 그래서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려는 생존에 대한 욕망으로 인해 자아가 분열된 모윤희의 행동은 종종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남편의 죽음 이후 그토록 갈망하던 이상현의 품에 안겼지만 이내 그것을 없던 일로 하자는 말에 상실감이 깊어지고, 간절히 원하던 일이었으나 막상 납치된 아들 때문에 혼비백산하여 무너지는 김진서의 모습에 초조함을 느끼는 그녀를 어떻게 비난할 수 있겠는가?

사랑으로 보호받고 싶었던 욕망이 좌절되면서 생긴 독성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만, 어느 틈에 부메랑처럼 돌아온 독성에 쓰러지는 그녀를 어찌 악녀라 손가락질 할 수 있겠는가?

억울하게 살인자로 오해받는 상황에서 자신이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을 이용해 재단 사무국장과 고문변호사는 물론 대학 내에서 영향력 있는 교수까지 장악하는 카리스마와 거짓말이라도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연약한 심성이 혼재된 모윤희. 그녀는 사랑보다 조건이 앞서는 우리 시대의 일그러진 애정관이 만들어낸 프랑켄슈타인일지도 모른다.


연구비 유용과 제자 논문 가로 채기, 그리고 교수들 사이의 치졸한 권력 쟁투가 난무하는 현실에서 시간강사이면서 내부 고발자라는 이중의 억압에 시달리던 이상현을 유일하게 위로하는 존재가 모윤희라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이상현과는 전혀 다른 입장이지만 모윤희 역시 출신 성분이야 어떻든 간에 명문가의 며느리임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이른바 사회적 명성과 경제적 부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멸시 당했던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외양과 달리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는, '삶'이라 하기엔 너무 구차스러울 정도로 추레한 까닭에 '생존'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해 보이는 모윤희에게 연민의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것도 그래서이다.

지독하게 가난한 환경에서 어렵게 성장한 모윤희가 명문가의 자식으로 아쉬움 없이 자란 성은필과 어떻게 결혼할 수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고, 비록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녀에게서 신데렐라의 흔적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신데렐라 이야기에도 그늘은 있다. 한 번도 제대로 가져본 적 없이 빼앗기기만 했던 모윤희의 처절한 생존기는 바로 그 그늘의 온도가 얼마나 낮은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모윤희는 가족 간의 사랑이 사라지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들과 딸이라는 역할조차 제대로 수행되지 않아 해체 위기에 놓인 가정에서 잉태된 일그러진 욕망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아니라 '나'의 집이라는 이기적인 사랑이 넘쳐나는 현실에서 'Home, Sweet Home'의 노랫말이 모윤희의 독기만큼 지독한 역설로 느껴진다. '즐거운 나의 집'은 누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드라마평론가 drama@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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