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김현진] 스타일 인 셀럽<21>현빈, ‘마리화나 추리닝’ 입을뻔?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1월 18일 16시 32분


"이거 이태리에서 40년간 트레이닝복만 만든 장인이 손수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만든 거야. (상표를 보여주며) 허 참."

SBS 새 주말드라마 '시크릿 가든'이 낳은 가장 큰 화제는 엉뚱하게도 현빈이 입은 파란색 반짝이 트레이닝복이다.

드라마에서 까칠한 백화점 CEO 김주원을 연기하는 현빈은 '호적상 4.5촌, 심정상 철천지 원수'로 설정된 친척 형이자 한류스타, 오스카(윤상현 분)의 부탁으로 그의 애인을 찾아 나서는 길에 이 '블링블링'한 추리닝을 꺼내 입었다.

이 트레이닝복은 까칠하고 도도하면서 귀엽기도 하고 졸부적인 기질도 다분한 현빈의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설명하는 소재로 쓰였다. 길라임(하지원)과 주변 사람들이 트레이닝복 차림을 보고 무시하는 듯한 시선을 보내자 '사실 이건 명품이고, 나는 중요한 사람'이라고 증명하기 위해 상표가 붙은 상의를 뒤집어 보이기까지 한다.

▶파란색 트레이닝복의 비밀

까칠하지만 코믹한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스타일리스트가 직접 제작한 현빈의 반짝이 트레이닝복. 사진 제공 SBS.
까칠하지만 코믹한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스타일리스트가 직접 제작한 현빈의 반짝이 트레이닝복. 사진 제공 SBS.

'현빈 추리닝'은 며칠 동안 인터넷 검색어 순위 1, 2위를 다퉜다. 어떤 브랜드 제품인지 누리꾼끼리 갑론을박하다가 결국 스타일리스트가 직접 제작한 특수 의상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드라마 게시판과 디시 인사이드 현빈 갤러리 등에는 "기성복으로 만들어서 판매하라" "내 남자친구가 저런 옷을 입었으면 좋겠다" "현빈이 또 나를 비줠(비주얼)의 노예로 만들었다"는 등의 '찬양' 글이 잇따랐다.

'시크릿 가든'은 '파리의 연인' '프라하의 연인' '시티홀' '온에어'를 성공시킨 히트 콤비 김은숙 작가와 신우철 PD의 작품이라는 사실 만으로도 방영 전부터 관심을 모았다. 트레이닝복 한 벌이 이처럼 화제가 된 데도 김 작가가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 빚어낸 쫄깃한 대사가 기여한 바가 크다.

현빈은 드라마 1, 2회에서 이 파란색 트레이닝복을 줄기차게 입고 나왔다. 현빈의 스타일리스트 강윤주 실장은 "캐릭터의 성격을 효과적으로 소개해야 하는 중요한 아이템이기에 어떤 브랜드와 스타일의 옷을 선택해야할지 심사숙고했다"고 말했다.

강 실장은 '발리에서 생긴 일'의 조인성, '파리의 연인'의 박신양, '미남이시네요'의 장근석 등 세간에 화제가 된 남성 스타들의 스타일링을 주로 맡았다. 트레이닝복이 드라마 속 '키 아이템'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간파한 그가 가장 먼저 뒤지기 시작한 것은 이탈리아 브랜드들의 신제품이었다.

강 실장은 "고급스럽고 댄디한 캐릭터 설정 상 이탈리아 제품이 적합할 것 같고 화려하게 반짝거리는 느낌이었으면 좋겠다고 작가가 주문했다"며 "하지만 이탈리아 브랜드는 물론 유럽이나 미국 브랜드 중에서는 만족할 만한 디자인을 구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대안을 찾기 위해 고개를 돌린 곳은 최근 개봉된 해외 영화와 드라마들. 그러다 지난해 개봉한 일본 영화 '크로우즈 제로2'에 출연한 배우 오구리 순이 일본 브랜드 '드레스트립'의 저지 소재 트레이닝복을 입은 모습에 시선이 꽂혔다.

"최종적으로 이 트레이닝복을 입기로 하고 한국으로 공수하려고 시도하던 중, 브랜드 로고와 함께 수놓아진 이파리 무늬가 마리화나 잎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논란의 소지가 있어 결국 포기하게 됐죠."

실제로 같은 의상을 국내에 수입하거나 모조품을 만들어 공급하는 업자들과 소비자 사이에 이 제품은 '마리화나 트레이닝복'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하다.

강 실장이 자체 제작을 결정한데는 이 같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숨어있다. 강 실장이 제시한 디자인으로 의상 제작 전문가가 반짝이 스팽글을 '한 땀 한 땀' 정성껏 붙여 만든 이 트레이닝복은 제작비가 100만원에 달하는 '오트쿠튀르(고급 맞춤복)'인 셈이다.

트레이닝복으로 일단 화제가 됐지만 드라마 속 현빈의 패션에서 눈여겨 볼 또 다른 아이템은 슈트와 구두의 조화다. 극 중 차가 막힌다는 이유로 화요일과 목요일만 출근하는 날라리 사장 현빈은 출근하는 날 만큼은 조끼까지 갖춰 입은 말끔한 쓰리피스 슈트 차림을 자랑한다.

슈트의 색상은 감색, 갈색, 회색 등으로 다양하고 입는 브랜드 또한 버버리 프로섬, 제냐, 돌체앤가바나, 티어리 등 유명 수입 브랜드들을 망라하지만 슈즈와 벨트만큼은 갈색으로 통일한 것이 현빈의 숨은 패션 코드다.

강 실장은 "이탈리아 남성들이 블랙 정장에도 브라운 슈즈를 매치해 신는 모습을 보고 이런 패션 센스를 재현하기 위해 연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빈, '우월한 비줠'의 비결

감색이나 블랙, 회색 슈트 차림에도 구두는 갈색톤으로 매치해 이탈리아 멋쟁이처럼 스타일링한 현빈과 상대역 하지원. 사진 제공 SBS.
감색이나 블랙, 회색 슈트 차림에도 구두는 갈색톤으로 매치해 이탈리아 멋쟁이처럼 스타일링한 현빈과 상대역 하지원. 사진 제공 SBS.

현빈의 빛나는 슈트 차림은 이미 전작들을 통해 검증받은 바 있다. MBC 드라마 '아일랜드'(2004년)에 출연할 당시 이나영의 경호원 강국을 연기하면서 보여준 깔끔한 슈트는 당시 우리 사회를 강타한 '핫'한 스타일 화두, 메트로섹슈얼과 맞물려 여성 팬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당시 강국의 스타일은 그저 화이트 드레스 셔츠에 블랙 타이를 매치하는 심플한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이 스타일이 패션 매거진들이 선정한 '여성 직장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패션' 리스트에 오르게 된 것은 여성들의 본능을 효과적으로 자극했기 때문이다.

경호원이라는 강한 캐릭터와 이에 어울리는 단단한 블랙 슈트는 앳된 당시 현빈의 얼굴과 묘한 조화를 이뤘다. 대다수 남성들이 청순하고 앳된 얼굴에 가슴이 풍만한 '청순글래머'형을 대놓고 이상형으로 꼽는다면 많은 여성들은 얼굴은 '샤방샤방'하지만 몸만큼은 단단한 '꽃미남형 짐승남'을 은근한 로망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현빈은 차승원, 이정재처럼 슈트가 캐주얼보다 절대적으로 잘 어울리는 이른바 '슈트 간지형' 배우는 아니다. 함께 주연을 맡은 송혜교와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돼 더 유명해진 KBS2 '그들이 사는 세상'(2008년)에서는 캐주얼한 차림으로도 화제가 됐다.

강 실장은 "패션 화보를 통해 현빈을 마초적이거나 퇴폐적인 이미지로까지 변신시켜봤는데 신기하게 이 모든 코드가 잘 어울렸다"며 "부드러운 이미지만 있을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의외의 반전이 가능해 극과 극의 멋을 낼 수 있는 것이 그의 매력"이라고 덧붙였다.

강 실장이 현빈을 스타일링하면서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은 '내 남자친구가 입었으면 좋을 법한 옷을 입힐 것'이다. 큰 키(184cm)에 긴 팔다리, 작은 얼굴 등 여성들이 선호할 만한 완벽한 '하드웨어'에다, 다정다감하고 부드러운 이미지와 나긋나긋한 목소리 같은 '소프트웨어'까지 갖췄으니 여자들이 좋아할만한 옷까지 입혀 제대로 여심을 공략하겠다는 의지다.

▶오스카의 비범한 표범무늬 가운


윤상현이 입은 강렬한 레오파드 무늬 가운도 스타일리스트 자체 제작품이다. (사진=드라마 장면 캡처).
윤상현이 입은 강렬한 레오파드 무늬 가운도 스타일리스트 자체 제작품이다. (사진=드라마 장면 캡처).

현빈의 트레이닝복에 가려 전국적인 화제가 되지는 못했지만 패션에 밝은 팬들의 눈을 사로잡은 아이템은 오스카 역, 윤상현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바람둥이 스타 윤상현은 드라마 1회 첫 등장신에서 잠시 사귄 여자 배우와 진한 키스를 나눈다. 하룻밤을 함께 보냈다는 뉘앙스를 풍기기 위해 그가 입은 옷은 표범무늬 가운. 오스카에게서 '날라리 티'가 나기를 원하는 제작진의 요구 사항에 맞춰 이 가운 역시 담당 스타일리스트가 직접 제작했다. "웬만한 브랜드는 다 뒤져봤지만 표범무늬에 세련되기까지한 남성용 가운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의 스타일링을 맡은 권은정, 박상정 실장은 "한류스타 중에서도 배우가 아닌 가수로 설정된 캐릭터인 만큼 평상시에도 무대 의상처럼 강력한 프린트 또는 모티프로 악센트를 준 스타일을 찾았다"며 "보통 남자들은 감히 시도하지 않는 레오파드 프린트를 선택하는 것이 그의 비범한 이미지에 맞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드라마 1회 마지막 장면, 현빈 하지원 윤상현이 다 같이 처음으로 대면하는 신에서도 윤상현은 흰색 슈트에 '루이뷔통'의 레오파드 무늬 스카프를 매치했다.

오스카 캐릭터는 스키니 팬츠를 통해서도 빛을 발한다. 콘서트 신에서 그는 국내 남성복 브랜드 '레주렉션'의 슬림한 검은색 가죽 팬츠를 입었다.

하지만 담당 스타일리스트도 인정하는 윤상현의 최대 약점은 휜 다리다. 윤상현 본인도 '프로필에 나온 키 181cm가 사실인데도 휜 다리 때문에 작아 보인다'고 억울해 한다. 이 약점은 스키니 팬츠와 곁들여지면 더욱 더 부각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스타일링팀은 "단점을 오히려 부각시켜 개성으로 살리기 위한 전략"이라고 전했다.

김주원이든 오스카든 젊은 남자 배우라면 한 번씩 탐을 낼만한 매력적인 캐릭터다. 하기에 따라서는 최고의 스타일 아이콘 또는 호감형 배우로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누릴 수 있는 배역이다. 드라마 게시판 등에는 이미 '주원앓이' '오스카 앓이'에 시달린다는 여성 팬들의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여성 팬의 숫자를 두 배 이상 늘어나게 할 만한 이런 기회를 앞두고 현빈, 윤상현은 모두 극심한 다이어트를 감행했다는 후문이다. 현빈의 신체적 단점을 묻는 질문에 강 실장은 "그들이 사는 세상 때보다 살이 많이 빠져서 이제는 없다"고 살짝 돌려 말했고 윤상현의 스타일리스트팀은 "예쁜 옷 입으려면 살 빼라고 (윤상현을) 협박했고 결국 촬영을 앞두고 10kg 감량에 성공했다"고 전했다.

15%대 시청률로 상큼하게 출발한 '시크릿 가든'은 20대는 물론이고 '볼만한 드라마'를 갈망하던 30, 40대 여성 팬들도 설레게 하고 있다. 날로 싸늘해지는 바깥 날씨와 반비례해 마음 속을 훈훈하게 덥히기 위한 용도로 이 작품을 보기 시작했다는 이들도 있다.

어느덧 말도 살찌는 계절의 끝자락에 왔다. 예쁜 옷 입으려고 살 뺀 이 훈남들을 보며 다이어트의 의지를 새롭게 하고 동병상련의 애틋함을 느끼는 것….

이것이 '시크릿 가든'을 보는 또 다른 재미가 될 것 같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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