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한옥의 재발견]<3>윤대길의 도쿄 한국문화원 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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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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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속 툇마루에 고즈넉이 걸터앉아…

얼마나 오래된 우리 고택(古宅)의 내부일까 싶지만 이 공간의 외관은 오른쪽 위 알루미 늄프레임 커튼월 표피의 현대식 건물이다. 일본 도쿄 한복판에 우리 문화를 알리기 위해 세운 주일본 한국문화원. 4층 정원과 응접실을 한옥 양식으로 만들어 한국 전통 건축의 기품을 드러냈다. 사진 제공 조선건축사사무소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얼마나 오래된 우리 고택(古宅)의 내부일까 싶지만 이 공간의 외관은 오른쪽 위 알루미 늄프레임 커튼월 표피의 현대식 건물이다. 일본 도쿄 한복판에 우리 문화를 알리기 위해 세운 주일본 한국문화원. 4층 정원과 응접실을 한옥 양식으로 만들어 한국 전통 건축의 기품을 드러냈다. 사진 제공 조선건축사사무소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서구식 철근콘크리트 건물에 덧붙인 한옥 기와 처마. 한국의 호텔 또는 오피스텔에서 드문드문 보이는 모습이다. 어색하기 일쑤인 이 조합을 지난해 6월 일본 도쿄 신주쿠(新宿)요쓰야(四谷)에 들어선 주일본 한국문화원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국 문화를 일본에 전하기 위해 1979년 설립된 문화원이 30년 만에 셋방살이를 끝내고 처음 마련한 보금자리다. 지상 8층 건물의 4층 중앙부에 관입(貫入)한 한옥 구조가 건물과 이질감 없이 매끄러운 조화를 이뤘다. 건물 속 정원을 감싸 두른 기와 처마와 나무 마루가 공간에 안정감을 주면서 독특한 표정도 입혔다.

8층 건물 중 4층을 한옥으로 정원 꾸미고 기와지붕 처마도

“현대식 빌딩에 한옥 디테일을 섞으면 어색해 보인다고요? 일본과 중국에는 서구식 구조에 전통 건축양식을 덧댄 건물이 허다합니다. 전통의 변용을 ‘촌스럽다’ ‘구식이다’라고 여기는 선입견이 많은 가능성을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일본 한국문화원의 한옥 부분을 설계한 윤대길 조선건축사사무소 소장(48)의 말이다. 이 건물의 전반적 설계는 김관중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본부장과 박항섭 경원대 건축학과 교수가 맡았다. 두 사람은 승무(僧舞)의 너울거리는 장삼 자락에서 모티브를 얻은 건물 북쪽의 곡면 알루미늄 프레임 커튼월을 통해 한국의 이미지를 드러냈다. 윤 소장은 그 내부에 전통적 디테일에 충실한 한옥 공간을 빚어내 한국 건축문화의 깊은 맛을 소개할 수 있도록 했다. 전시장, 공연장, 도서자료실을 거쳐 닿게 되는 이 한옥 응접실(사랑방)은 외부인 출입 공간과 직원의 업무 공간을 자연스럽게 분리하는 동시에 부드럽게 연결해주기도 하는 점이지대(漸移地帶)다.

3층 천장슬래브 위 절반 215m²를 한국 고유 양식의 정원으로 꾸미고 기와지붕 처마를 둘러쳤다. 이 정원 북쪽에 맞닿은 70m² 면적의 4층 응접실이 한옥 공간이다. 대개 단층 한옥의 기단(基壇)부터 지붕 꼭대기까지 높이는 8m 안팎. 이 건물의 층별 높이는 4.5m다. 윤 소장은 설계를 맡고 난 뒤 ‘그냥 지붕을 없애고 내부 공간만 창호와 마루 등을 써서 한옥 스타일로 구성할까’ 한참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지붕을 포기할 수 없었다. 1991년부터 전통건축 실측과 보수설계 작업을 해 온 그에게 기와지붕과 나무마루는 어떤 건축물을 한옥이라 부르기 위한 필수 요소다.

궁리 끝에 천장 중앙부는 평평한 우물천장으로 만들고 가장자리를 경사진 연등천장으로 얽어 그 위에 기와를 올렸다. 처마를 지지하기 위해서 벽체 바깥쪽으로 열주(列柱)를 세우고 전면에 툇간(退間)을 둬 마루를 만들었다. 지붕 모양새를 최대한 갖추기 위해 적용한 이중 레이어의 벽 구조. 그 덕분에 안쪽 벽면의 창호는 거센 바람에 의한 시달림을 덜게 됐다.

“옛것 돌아본다고 퇴보 아니죠”

주일본 한국문화원의 곡면 벽체 디자인은 전통 승무(僧舞)의 복식 이미지를 형상화했다(위).발을 걷어 올리고 창을 열면 툇마루 뒤 나무기둥 사이로 정원에 놓인 항아리들이 보인다.
주일본 한국문화원의 곡면 벽체 디자인은 전통 승무(僧舞)의 복식 이미지를 형상화했다(위).발을 걷어 올리고 창을 열면 툇마루 뒤 나무기둥 사이로 정원에 놓인 항아리들이 보인다.
윤 소장은 “인천 강화도 정수사 법당, 경북 안동시 개목사 원통전 등 오래전 조상들이 만든 건물에서 찾아볼 수 있는 변칙 구조를 가져온 것”이라며 “내리물림 한 한옥에 현대 건축이 고민하는 문제에 대한 많은 답이 숨겨져 있다”고 말했다.

“제게 주어진 공간 위로 5층 슬래브를 지지하는 철골 보가 가로질러져 있는 걸 보고 새삼 생각해 봤습니다. ‘한옥에서 지붕이란 뭘까’ 하고요. 제가 얻은 나름의 답은 ‘공간이 하늘과 만나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가 오롯이 담기지 않은 것을 과연 한옥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모든 일에 변화가 필요한 때라고 하지만, 이미 있는 것에 대한 연구와 논의가 그보다 먼저 충분히 이뤄져야 합니다.”

윤 소장은 덕수궁 대한문, 운현궁, 대한불교조계종과 북한 조선불교도연맹이 공동으로 진행한 금강산 수계사 등의 보수설계를 담당한 국내에서 손꼽히는 한옥 전문가다. 그러나 그 역시 건축 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한옥에 특별한 뜻을 둔 것은 아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여느 건축 전공 졸업생처럼 1년여 동안 아파트 공사장에서 현장 감독을 했다. 그는 “책에서 배웠던 것이 현장에 곧이곧대로 적용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을 깨닫고 오히려 다시 배움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고 했다. 고려대 대학원에 들어가 조선시대 궁궐 건축을 연구한 뒤 처음으로 보수설계 실무 작업에 참여한 운현궁을 통해서 평생 할 일에 대한 답을 얻었다.

주일본 한국문화원 한옥 응접실을 비롯한 그의 작업은 대개 ‘파격’보다 ‘복원’을 추구한다. 나무 마루 양쪽으로 한지 창호를 정갈하게 막아 두른 고즈넉한 공간. 그대로 수백 년을 거슬러 옮겨도 어색하지 않을 모양새다. 그는 “옛것을 뒤돌아보며 걷는 길을 꼭 ‘퇴보’라 불러야 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땅에 살아온 사람들이 물려받은 것을 그대로 지켜오기만 했을까요? ‘바람이 스미고 비가 새는’ 한옥의 단점에 대한 적나라한 비판을 조선후기 실학자인 서유구의 저서 ‘임원경제지’ 등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뭐든 제대로 알아야 좋은 변화가 가능하겠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외면하거나 변화만 찾는 것은 스스로를 업신여기는 일이나 마찬가집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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