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한옥의 재발견]<1>황두진의 휘닉스스프링스 게스트하우스

동아일보 입력 2010-07-07 03:00수정 2010-07-07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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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 대신 유리지붕… 하늘과 通하다

길이 27m 회랑위에 유리판 얹어
빛과 소통하는 열린 공간으로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파격
“한 옥의 가능성은 무한합니다”
《한옥이 변하고 있다.판에 박힌 아파트나 국적 불명의 양옥에 신물 난 사람들이 한옥이 지닌 색다른 아름다움에 빠져들고 있다. 현대의 한옥은 기와, 온돌, 마루 등 외형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콘텐츠가 아니다. 지붕에 유리를 덮고,내부 공간을 관습과 다르게 구획하고, 전통에서 벗어난 새로운 재료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시공을 관류해 현대적 공간’을 모색하는 한옥의 재발견 현장을 찾아간다.》
경기 이천시에 있는 휘닉스스프링스 골프클럽 게스트하우스. 두 메인 한옥을 잇는 진입부 이동 공간(회랑)의 지붕에 기와 대신 유리를 얹어 여느 한옥과 다른 멋을 자아낸다. 사진 제공 황두진건축사사무소
‘한옥은 기와집이다.’ 황두진 씨(47·황두진건축사사무소장)가 설계한 경기 이천시 휘닉스스프링스 골프클럽 게스트하우스는 당연한 듯한 이 명제를 부정한다. 파격의 핵심은 이동 공간 위에 올린 ‘유리 지붕’이다.

황 소장이 이 건물의 설계 제안을 받은 것은 2007년이었다. 그는 대규모 스포츠 위락시설과 한옥의 흔치 않은 만남을 무의미하게 넘겨버리고 싶지 않았다. 2009년 완공한 이 게스트하우스는 대지면적 980m², 총면적 1868m²의 지상 2층, 지하 1층 건물. 호텔이나 리조트 건물 일부에 기와지붕 또는 나무기둥을 삽입해 한옥의 이미지를 덧댄 경우는 적지 않지만, 이 정도 규모의 골프장 부대시설 전체를 한옥으로 지은 사례는 없었다.

최근 5년 동안 10채의 한옥을 지은 황 소장은 건축계에서 ‘한옥 짓는 건축가’로 통한다. 2005년 기초 지식을 자습하며 160m² 넓이의 서울 종로구 가회동 땅에 소박한 한옥 ‘무무헌(無無軒)’을 처음 만들었을 때에 비하면 경험의 폭과 깊이가 몰라보게 달라졌다. 그는 과거로부터 전해져 온 방식을 답습하기보다 현대의 건축 문법으로 한옥을 해체해 재구성하려 한다. 황 소장에게 이천 골프클럽 게스트하우스는 한옥 실험의 첫 장(章)을 마무리하는 특별한 결실이다.

골프를 마친 사람들이 완만한 경사의 북쪽 진입로를 따라 오르며 바라보게 되는 것은 여느 한옥 건물과 다를 바 없는 기와지붕의 처마자락이다. 하지만 그 길 끝 모퉁이를 돌아선 시야에는 예상 밖의 낯선 광경이 들어온다. 용지 양쪽으로 갈라선 회의장과 식당 건물을 잇는 27m 길이의 회랑(回廊·벽체 없이 지붕을 올린 긴 복도) 겸 정문. 매끄럽게 다듬은 나무 부재로 기둥과 들보를 얽었다. 그 골조 위에 얹은 것은 기왓장이 아니라 가로 1m, 세로 2m의 유리판 62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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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 피라미드에만 유리를 쓰라는 법이 있습니까? 회랑은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이동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차양(遮陽)의 기능은 생략해도 무방해요. 빛과 그림자가 엇갈린 실루엣을 통해 건물 골조의 패턴을 느낄 수 있는 공간입니다.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지붕 위로 흐르는 빗물을 바라볼 수도 있죠.”

황 소장은 한옥 작업을 할 때마다 ‘한옥이 이 땅 역사의 굴곡에 의한 기술 계승의 단절을 겪지 않고 현대까지 자연스럽게 진화했다면 어떤 가치를 이뤘을까’ 고민한다. 고유의 형식과 내용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품위를 무너뜨리지 않는 선에서 어떻게든 변화를 주려고 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두 건물을 잇는 회랑의 지붕은 기와 대신 통유리로 덮었다. 고스란히 드러난 목재 골조에서 한옥의 매력이 새롭게 느껴진다. 사진 제공 황두진건축사사무소
이천 골프클럽 게스트하우스의 실험적 확장은 정문 회랑의 유리 지붕에서 끝나지 않는다. 두 메인 건물의 기와지붕 아래 공간에도 황 소장의 독특한 배려가 숨어 있다. 전통적인 한옥 지붕은 나무 골조 위에 흙을 올려 바른 뒤 기와로 마감한다. 이런 습식(濕式) 구조의 지붕 밑 공간은 현대식 건축물과 달리 공기조화나 전기배선용으로 쓰기 어렵다. 이천 골프클럽 게스트하우스의 기와지붕은 흙이 아닌 나무 합판 위에 기와를 얹은 건식(乾式) 구조를 채택했다. 통풍에 대한 걱정이 없어져 지붕과 천장 사이 공간을 활용할 수 있었다. 황 소장은 이곳에 공조와 배전 설비는 물론 스프링클러 설비, 개보수를 위한 작업자용 통로까지 마련했다.

적용할까 망설이다 다음 기회로 미룬 아이디어도 있다. 황 소장은 지붕 등 외형 디테일에 변화를 주는 것과 아울러 한옥 건축의 최대 맹점이라 할 수 있는 문제에 근본적 개선을 시도하고 싶었다. ‘한옥은 비싸다’는 것. 그는 가격을 높이는 중요한 원인인 목재 사용량을 줄여보고 싶었다.

“대들보에 일반 목재 대신 얇은 ‘나무 피복’으로 철심을 감싼 부재를 써보려 했어요. 부재 굵기는 가늘어지고 필요한 목재 양은 줄일 수 있죠. 하지만 설계 초반부터 마음먹었던 것이 아니어서 기둥 두께와의 밸런스 등 세부 사항을 조율하기 어려웠습니다. 그 대신 곧바로 ‘철심 박은 나무 부재’를 연구하는 프로젝트팀을 만들었어요. 무의미한 공상으로 흐지부지 끝내지 않을 겁니다.”

황 소장은 ‘한옥’이라는 단어에 연연하지 않는다. 전통의 엄숙함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지속적인 확장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단청과 창호 등 한옥의 디테일을 소극적으로 차용하거나, 한옥에 수세식 화장실과 현대식 주방만 붙여놓은 어색한 공간도 그리 좋은 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외양으로 보면 한옥이 아닌 건물을 통해서도 한옥이 추구해 온 공간적 가치를 구현하는 길을 수없이 찾아낼 수 있다”고 했다.

“한국 사람 스스로 한옥의 가능성과 다양성을 제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봅니다. 웅장했던 우리 궁궐 건축의 자취를 잊고 ‘소박하고 고즈넉한 정취’라는 식의 감상을 읊조리는 것을 보면 답답해요. ‘지붕의 우아한 곡선미, 손만 뻗으면 하늘이 닿는 안온한 공간….’ 지적으로 게으른 사람들이 입에 담는 헛된 수식(修飾)입니다. 이 땅에서 태어난 건축가라면, 한옥을 생각함에 몸과 마음을 결코 한가롭게 둘 수 없습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건축의 껍질 벗기면 삶의 공간이 나오죠”▼

건축 비틀어보기 나선 함성호 씨


‘건축에 대해 부정(否定)해 보는 건축 강의.’

한국건축가협회 주최 시민교육아카데미 ‘2010 건축문화학교’의 강의를 맡은 함성호 EON건축 대표(47·사진)가 내세운 수업 목표다. 지난달 말 시작해 8월까지 6회 일정으로 마련된 이번 강의에 함 대표는 ‘예술 장르 간 소통: 건축을 알면 보이는 다른 예술의 즐거움’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세 번째 강의를 듣기 위해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가회동의 한 한옥에 모인 17명의 수강생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귀를 기울였다.

“여기 오신 분들께 딱 한 가지, ‘부정의 기술’에 대해 고민해 보시길 당부합니다. 여기 이 콜라 깡통을 보세요. ‘이것은 콜라가 아니다’라는 부정을 완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용물을 부정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결코 부정할 수 없는 본질은 눈에 보이는 표피에 있지 않은 거죠.”

1990년 계간지 ‘문학과 사회’를 통해 등단한 ‘시인 건축가’다운 말이다. 함 대표는 시작(詩作)과 건축 설계 외에도 건축평론, 만화비평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서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파크 등 겉모양에 초점을 맞춘 건축이 현대 건축의 전부인 양 오해되고 있다”며 “이런 건물들에서 시각을 유혹하는 요소들을 하나하나 부정해 보면 본질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용지를 꽉 채운 박스형 상업건물 설계를 맡게 된다면 표피 외벽을 아예 만들지 않을 겁니다. 기상천외한 간판들이 더덕더덕 외피를 대신해 붙여지겠죠. 그 결과물은 정말 추하기만 할까요. 기능보다 ‘관계’를 따라가는 현대 건축의 본질을 찾아낼 한 방법일 수 있으리라 봅니다.”

함 씨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액세서리용품점 ‘마이 패이버리트’ 등 독특한 작업을 펼쳐 왔다. 그의 강의는 20일과 8월 10, 17일에 이어진다. 02-3675-2550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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