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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고달픈 ‘워킹실버’ 노인 취업자 300만명 시대… 근로비율 OECD국가의 4배

입력 2010-07-31 03:00업데이트 2010-07-31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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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킹실버 24명 만나보니… #1 35년간 중학교 음악 교사로 일하다 교감으로 명예퇴직한 최모 씨(62·여)는 현재 서울 송파구의 한 주상복합아파트에서 7개월 된 남자 아이의 베이비시터로 일하고 있다. 하루 7시간씩, 주 5일 근무하고 한 달에 90만 원을 받는다.

교사로 평생을 보낸 최 씨가 처음부터 이 일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형 건설사 직원이었던 남편이 1997년 외환위기 직후 명예퇴직을 당했고 설상가상으로 고혈압으로 쓰러졌다. 당장 목돈이 필요했다. 2002년 명예퇴직하며 연금 대신 일시금으로 3억4000만 원을 받아 남편 치료비를 충당했다. 퇴직금 일부를 떼 서울 강남에서 노래방 사업도 시작했지만 대신 앉힌 ‘바지사장’이 수입을 중간에 가로채면서 3년 만에 문을 닫았다. 그 이후 구립도서관 행정 아르바이트, 사설 어린이집 교사 등 일자리를 구했다. 하지만 나이가 많아 번번이 거절당했다. 결국 정착한 곳이 베이비시터. 월 90만 원 수입으론 남편 치료비와 대학을 졸업하고 연기 공부 중인 딸(27) 등 세 식구 생활비를 대기도 벅차다. 그는 “그래도 이 일이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2 유기영 씨(66)는 직업군인과 대기업 인사 담당자로 30년을 일한 뒤 1997년 외환위기 때 명예퇴직 했다. 한창 일할 50대 중반에 갑자기 퇴직하니 멍해지고 우울증이 찾아왔다. 온몸이 특별한 이유 없이 두드려 맞은 것처럼 아파 약까지 먹었다. ‘일’이 필요했다. 2006년 6월, 10년 가까운 백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있는 법무사 사무실로 출근했다. 하루 동안 배달해야 할 서류를 배정받아 택배 일을 한다. 보수는 월 100만 원 정도. 유 씨는 “규칙적인 생활을 할 뿐 아니라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많이 걷다 보니 훨씬 건강해졌다”며 만족해했다.

일하는 60세 이상 노인, 이른바 ‘워킹실버(Working Silver)’가 매년 큰 폭으로 늘면서 3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지난달 노인 취업자 수는 297만2000명으로 통계청이 관련 데이터를 조사한 1999년 6월 이후 사상 최대다. 고용률은 39.1%. 노인 5명 중 2명이 일하는 셈이다. 65세 노인 10명 중 1명 정도 일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과 비교하면 한국의 워킹실버의 수는 선진국보다 3∼4배 많다.

이들은 노후준비가 부족해 경비원 택시운전사 택배원 미화원 등 이른바 블루칼라 일을 하는 노인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액티브 에이징(Active Aging·활기찬 노후)’ 흐름을 타고 경제적인 이유와 상관없이 일을 하는 선진국형 워킹실버도 빠르게 늘고 있다.

▼생활고에 月 85만원 일터로… 휴식 잃은 ‘제2의 인생’▼

○ 노인 5명 중 2명 ‘일하는 중’




26일 서울 관악구 행운동 관악시니어클럽의 도시락작업장. 앞치마를 두른 할머니들의 바쁜 손놀림 속에 맛깔스러운 음식이 정성스레 담긴 도시락이 속속 완성됐다. 60, 70대의 요리 베테랑인 이들이 만든 도시락은 인근 지역의 주민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훈구 기자26일 서울 관악구 행운동 관악시니어클럽의 도시락작업장. 앞치마를 두른 할머니들의 바쁜 손놀림 속에 맛깔스러운 음식이 정성스레 담긴 도시락이 속속 완성됐다. 60, 70대의 요리 베테랑인 이들이 만든 도시락은 인근 지역의 주민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훈구 기자
26일 오전 서울 관악구 행운동 관악시니어클럽의 도시락작업장. 입구에서부터 맛깔스러운 반찬 냄새가 나는 이곳에서는 앞치마를 두른 할머니들의 도시락 제작이 한창이었다. 방학을 맞아 맞벌이 가정에서 주문이 늘면서 새벽부터 작업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곳의 특징은 직원 9명 대부분이 60세 이상 노인으로 이뤄져 있다는 것. 주부경력 40년 이상 베테랑 할머니들은 밥과 반찬 만들기를, 할아버지들은 배달을 맡았다. 새벽 6시부터 오후 2시까지 일하면서 하루에 만들어내는 도시락은 130여 개. 이들이 손에 쥐는 월급은 85만 원 정도.

최정순 씨(68)는 “남편은 칠순을 훌쩍 넘겨 일을 못하고, 자식들에게 부담 주기 싫어 도시락 만드는 일에 나섰다”며 “바쁘게 움직이며 일을 하는 것이 즐겁고 또 보람도 있다”고 전했다. 작업장에서 일하는 위생사 강혜란 씨(33)는 “순발력은 떨어지지만 일에 대한 열정은 젊은 사람들 못지않다”라며 “요식업계에 60세 이상 노인들의 취업이 크게 늘고 있다”고 전했다.

젊은 사람들로 채워졌던 경비원, 보험설계사, 택시운전사, 택배원에도 노인들의 진출이 빠르게 늘고 있다. 대부분의 아파트 경비원은 이미 60대 이상으로 채워져 있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의 S아파트 경비원은 12명. 73세인 경비대장을 포함해 70대가 3명, 나머지는 모두 60대 이상이다.

대한생명 전체 보험설계사 2만2140명 중 373명이 60세 이상이다. 주부였다가 외환위기 때 대한생명 보험설계사를 시작한 이향자 씨(60·여)는 “사무실에 70세 넘는 분도 있다”며 “이제 60대는 ‘할머니’축에도 못 낀다”고 말했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한일택시는 전체 300명의 운전자 중 10%가 넘는 40명이 60대 이상이다. 그 비율은 매년 커지고 있다.

서울강남시니어클럽의 정병오 관장은 “오토바이를 몰아야 하는 퀵서비스는 여전히 젊은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5, 6년 전부터는 택배 서비스에 노인들의 진출이 활발해 현재 약 10%를 차지한다”며 “노인들은 난 화분처럼 5kg 미만의 가벼운 물품 택배 같은 틈새시장에서 주로 일한다”고 말했다.

○ 대부분 블루칼라 직종에서 근무

직업군인과 대기업 인사담당자로 30년을 일한 뒤 지금은 택배 일을 하는 유기영 씨(66). 그는 “50대에 일을 그만두니 우울증이 찾아왔는데 택배 일을 하며 많이 움직이면서 건강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박상훈 인턴기자 동국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직업군인과 대기업 인사담당자로 30년을 일한 뒤 지금은 택배 일을 하는 유기영 씨(66). 그는 “50대에 일을 그만두니 우울증이 찾아왔는데 택배 일을 하며 많이 움직이면서 건강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박상훈 인턴기자 동국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박모 씨(68·여)는 대형 은행 청소를 담당하는 서울 여의도의 한 환경용역업체에 소속돼 일한다. 전업주부였던 그가 돈벌이에 뛰어든 것은 37세 무렵. 아들 셋에 딸 하나, 자식만 4명인데 도저히 중소기업에 다니는 남편이 벌어오는 돈만으로는 생계유지가 안 돼 구로공단 내 스피커 전자제품을 만드는 공장에 취업을 했다.

공장에서 퇴직하던 때 그의 나이 54세, 본래 계획은 그때 일을 관두는 것이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먹고사는 게 내 뜻대로 되나. 애들 공부에 한창 돈 나갈 때라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었지.” 그는 계획했던 은퇴 시점보다 10년이 넘도록 환경용역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특히 딸 하나를 빼고 아들 세 명을 모두 4년제 대학을 졸업시키면서 지출이 컸다. 거기에 74세인 남편이 2년 전에 허리를 다치면서 수입이 절반으로 줄었다. 별다른 기술이 없는 박 씨는 월 82만7000원을 받는 청소 일을 기약 없이 해야 할 판이다.

동아일보가 심층 인터뷰를 한 24명의 일하는 노인 중 전문직으로 분류될 수 있는 사람은 보험설계사 1명, 요양원 모니터링 요원 1명 등 5명뿐이었다. 대부분 청소, 베이비시터, 아파트경비원 등 블루칼라 직종에 근무했다.

이 때문에 노인들은 열심히 일해도 생활은 빠듯한 편이다. OECD에 따르면 2008년 한국의 65세 이상 소득빈곤율(소득이 중위소득의 절반 이하인 비율)은 45%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일을 그만두는 연령도 OECD 평균(63.5세)에 비해 한국은 69.6세로 늦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건강과 취미를 목적으로 일하는 노인도 빠르게 늘고 있다. 이상벽 씨(73)는 한국전력을 정년퇴직한 후 문화유산 해설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충남 부여가 고향인 그는 10대 중반까지 부여에서 살면서 백제의 여러 문화유산을 가까이에서 봤다. 게다가 한전 입사 후 첫 발령지가 충남 공주라는 행운도 얻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책을 사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탐방하기도 했다.

1996년 정년퇴직한 후 문화유산 해설가 양성과정과 국립민속박물관 문화유산 해설지도사 과정을 마쳤다. 지금은 일주일에 사흘 정도 문화유산 해설을 한다. 그는 “해설을 하면서 하루 종일 걸어도 힘든 줄 모르겠다”며 만족감을 보였다.

○ 부모 봉양은 하고 자식에게 봉양은 받지 못하는 전환기의 노년세대

프랑스의 여론조사기관 소프르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프랑스 은퇴자 10명 중 7명이 “은퇴 후 더 나은 생활을 누리고 있다”고 답했다. 이들에게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준 것은 연금이었다. 프랑스는 젊었을 때부터 월급의 40% 이상을 연금과 의료보험 같은 사회보장비용으로 납부해 은퇴한 후 정부가 연금을 지급하도록 돼 있다. 민간기업 근로자는 근로기간 중 월급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25년의 평균임금을 계산한 뒤 이 금액의 50%를 매달 연금으로 받는다.

반면 한국은 1999년부터 전 국민 연금시대가 열렸을 정도로 국민연금 역사가 짧다. 공직에 근무한 사람을 제외한 대부분의 노인은 연금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노인들의 노후 복지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지금의 노인들은 부모 봉양에 대한 책임은 있었지만 세태변화로 자식들로부터 보살핌은 충분히 받지 못하는 전환기의 세대다.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서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이모 씨(68)는 서울 잠실의 여자고교 서무과에서 21년을 근무하고 정년퇴직했다. 사립학교교직원연금으로 받는 돈은 월 100만 원. 하지만 1남 2녀의 교육과 결혼 자금으로 얻어 쓴 빚이 많아 연금만으로 생활하기는 힘들다. 그는 “10년간 경비원을 했는데 이마저 못하게 되면 재활용센터 사원으로 취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근홍 협성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과다한 자녀 교육 및 결혼 비용, 정착되지 못한 연금제도, 열악한 노인 일자리 등 3가지 현상이 맞물리면서 한국에선 일하는 노인을 흔히 볼 수 있게 됐다”며 “연금을 통한 복지실현에 시간이 걸린다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나서 노인 전용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육체적 노동 대신 경륜이 필요한 품질검사 등과 같은 업무를 노인 전용으로 지정하면 청년 일자리와 충돌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별취재팀>

▽경제부
박형준 기자 정혜진 기자
장윤정 기자 이세형 기자

▽인턴기자
김경목 고려대 서어서문학과 4학년
지승연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3학년
이진혁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손미정 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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