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마을 할머니 한글교실의 마지막 수업

동아일보 입력 2010-07-23 03:00수정 2010-07-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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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신지동초등교 최금홍 교장 2년6개월간 밤마다 글 가르쳐
다음달 정년맞아 학교 떠나 24명 제자들 눈물의 감사 편지
20일 오후 전남 완도군 신지면 신지동초등학교 ‘반딧불이 한글교실’은 온통 울음바다였다. 8월 말 정년퇴임하는 이 학교 최금홍 교장(오른쪽)에게 한글을 배운 한 할머니가 최 교장을 위해 쓴 편지를 읽고 있다. 완도=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선생님 해여지기가 아‘습니다. 정년이 되여가기에 우리가 잡을수도 없습니다. 긋자도 모르는 저희들 가르차 시느라고 정말로힘드 었지요….”

20일 오후 전남 완도군 신지면 신지동초등학교 5학년 교실. 이태덕 할머니(67)는 난생처음 쓴 편지를 띄엄띄엄 읽으면서 울먹였다. 맞춤법이 틀리고 띄어쓰기도 엉망이었지만 “밤새 쓴 편지”라며 선생님에게 내밀었다. 선생님은 눈물을 글썽이며 할머니를 꼭 껴안았다.

이 학교 최금홍 교장(65·여)은 ‘반딧불이 한글교실’에 다니는 섬마을 할머니들의 담임교사다. 이날은 8월 말 정년퇴임하는 최 교장이 마지막으로 수업을 하는 날이었다. 2년 6개월 전 부임한 최 교장은 마을에 사는 오옥희 할머니(63)가 찾아와 “글을 가르쳐 달라”고 하자 다음 날부터 한글교실을 열었다. 6년 전 교감으로 승진하면서 놓은 분필을 다시 잡은 최 교장은 ‘형설지공(螢雪之功)’의 의미를 담아 ‘반딧불이 한글교실’로 이름 지었다. 처음에는 5명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24명으로 늘었다.

최 교장은 전날 마지막 수업 숙제로 ‘마음을 담은 편지쓰기’를 내줬다. 할머니 가운데 4명이 편지를 써왔다. 이남님 할머니(70)는 서툰 글씨로 “아무리 힘들어도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서 결석 안 하고 다니려고 노력했다”고 썼다. 장수금 할머니(64)는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는 저에게 용기를 주신 선생님의 은혜에 어떻게 보답할까요”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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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교장도 41년 교직 생활의 마지막 제자들에게 편지를 썼다. “오래전 내 삶의 주인공이 아니었을 때 못한 공부는 내 탓이 아니요, 부끄러울 일이 아니랍니다. 지난날 못한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용기 있는 당신들이 아름답고 장할 뿐입니다.”

최 교장은 토,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글을 가르쳤다. 눈 핏줄이 두 번이나 터져 교사와 가족들이 수업시간을 줄이라고 했지만 최 교장은 그럴 수 없었다. 할머니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면 더 많이 가르쳐주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최 교장은 “이번 6·2지방선거에서 처음으로 후보자 이름을 보고 당당하게 투표했다며 자랑하는 할머니들을 보고 보람을 느꼈다”며 “이제 홀가분하게 떠나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완도=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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