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정주현]‘인셉션’ 이성과 상식을 뒤흔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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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22일 15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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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다룬 \'인셉션\'. 재구성된 기억과 인간의 상상력은 가상의 세계를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로 만드는 요소가 된다.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다룬 \'인셉션\'. 재구성된 기억과 인간의 상상력은 가상의 세계를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로 만드는 요소가 된다.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마.

아마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신작 '인셉션'을 통해 전달하려는 첫 번째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 아닌가 한다. '생각을 훔치는 거대한 전쟁' 이라는 카피가 보여주듯,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수십 년간 형성되어 왔을 당신의 이성, 그리고 결코 의심해 보지 않았을 당신의 상식을 통째로 비틀고, 흔들려 한다.

현실이 아닌 가공의 세계를 다루는 이 영화에는 기본적으로 몇 가지 중요한 축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꿈과 무의식이다. 이는 가상의 세계를 횡(橫)으로 나눈다. 수면상태에 빠진 인간은 꿈의 세계로 들어서게 되고, 이 꿈의 세계는 몇 겹의 단계, 즉 꿈속의 꿈, 그리고 그 꿈속의 더 깊은 꿈으로 나뉜다. 각 단계를 거칠 때마다 시간은 상대적으로 흐르게 되고 중력의 법칙은 흐트러진다. 그리고 그 꿈의 밑바닥에는 무의식의 세계가 있다.

또 하나의 축은 바로 기억과 상상이다. 이 축은 가상의 세계를 종(縱)으로 나누며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구축한다. 재구성된 기억과 인간의 상상력은 가상의 세계를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로 만드는 요소가 된다. 단, 상상이 아닌 기억으로 꿈의 세계를 짓게 될 경우 인간은 꿈과 현실을 혼동할 수 있다. 주인공 돔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숨겨진 비극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한다.
▶ 사람의 꿈 속으로 들어가 현실을 바꿔라

코브는 드림머신이란 기계를 이용해 다른 사람의 꿈속으로 침투하며, 그 사람의 생각을 읽고 훔쳐내는 전문가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에게는 이와 반대의 미션이 주어진다. 바로 다른 사람의 꿈속으로 들어가되 거꾸로 현실의 행위를 바꿀 수 있는 어떤 생각을 심으라는 것. 위험한 작전이라며 그의 파트너는 말리지만, 코브는 자신의 비극을 풀 열쇠가 될 수 있는 이 작전을 거절하지 못한다.

표적이 된 사람은 바로 거대한 에너지 기업의 상속자인 로버트 피셔(킬리언 머피)다. 그는 거대 기업의 상속자답게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훈련을 받았다. 따라서 미션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이전까지와 다르게 여러 층의 꿈을 설계해야 한다. 코브는 견고한 그의 꿈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각 분야의 전문가를 모은다. 절친한 친구이자 오랜 파트너인 포인트 맨 아서(조셉 고든-레빗)와 꿈의 세계를 창조하는 설계자 아리아드네(엘렌 페이지), 꿈 속에서 신원을 위조해 표적을 속이는 임스(톰 하디), 그리고 깊은 꿈의 세계로 접속할 수 있는 약물을 제조하는 유서프(딜립 라오)가 바로 그들이다.

그러나 이 전대미문의 작전에는 한 가지 예상치 못한 복병이 있었다. 바로 코브의 기억과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그의 아내 멜(마리온 코티아르).

멜은 코브가 처음 생각을 심는 데 성공했던 바로 그 실험 대상이자 이로 인해 꿈과 현실을 혼동하게 되어 자살을 택한 비극적 인물이다. 그는 죽음 이후 코브의 무의식 속에 트라우마와 죄책감의 원형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작전을 위해 팀원들이 표적과 공유하는 꿈 속에 코브를 통해 투영된다. 그리고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이 곧 꿈이고 자신이 존재하는 꿈이 곧 현실이라 주장한다. 바로 외면하고 싶은 현실과 아름다운 꿈, 어느 것이 진짜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다.

영화는 이러한 질문을 통해 철학적인 내연까지도 확장한다. 나비가 되어 날아다닌 것이 꿈인지 아니면 그 반대가 꿈인지, 꿈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에 대해 질문을 던진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주인공 돔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드림머신이란 기계를 이용해 다른 사람의 꿈속으로 침투하며, 그 사람의 생각을 읽고 훔쳐내는 전문가이다.
주인공 돔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드림머신이란 기계를 이용해 다른 사람의 꿈속으로 침투하며, 그 사람의 생각을 읽고 훔쳐내는 전문가이다.

▶ 놀라울 만큼 독창적이고 물샐틈없이 정교한 구성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이 거대한 상상력의 세계는 하루아침에 지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놀란 감독은 16세에 처음 이 영화의 초안을 떠올렸고, 이후 약 10여 년의 작업기간을 거쳐 25년 만에 영화를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랫동안 구상한 프로젝트인 만큼 '인셉션'은 놀라울 만큼 독창적이고 물샐틈없이 정교하다. 치밀한 스릴러적 이야기전개는 완벽한 물리적 가정으로 더욱 강한 흡입력을 발휘한다. 감독과 벌이는 두뇌게임은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다.

놀란 감독의 행적을 돌아보면 '인셉션'의 견고함은 더욱 타당해 보인다. 올해 마흔 살이 된 그가 지난 10여 년 동안 쌓은 필모그래피에는 '메멘토'를 포함해 '인섬니아' '배트맨 비긴즈' '다크 나이트' 등이 들어있다. 하나같이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 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 대해 말하는 영화들이다. 그는 결코 시류에 따라 다양한 작품을 보여주려는 무리한 시도를 하지 않았다. 외골수적인 고집으로 자신의 관심분야만을 파고 들었고, 그리하여 그 분야에 대해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집요함에 대한 할리우드의 지원은 전폭적이었다. 각본, 연출, 그리고 제작까지, 할리우드에서는 흔치 않게 한 사람의 독보적인 지휘하에 만들어진 이 영화에 워너 브라더스는 총 2억 달러의 제작비 중 2/3 이상의 거액을 투자했다. 덕분에 영화의 스케일은 그의 상상력을 완벽에 가까울 만큼 구현시킬 정도로 장대하다. 모로코의 숨막히는 추격 신부터 파리 시내의 슬로모션 폭발장면, 로스앤젤레스의 빗속 도로 자동차 추격 장면과 캘거리의 스키 액션 장면까지, 다양한 대륙과 나라를 넘나드는 영화의 화려함은 전작 '다크 나이트'의 위용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특히 꿈 속의 무중력 상태에서 아서가 벌이는 격투장면은 흡사 매트릭스의 총알 신을 떠오르게 할 정도로 창조적이고 충격적이다. 중력의 법칙을 완벽하게 배반한 이 액션장면은 상하좌우라는 공간감과 교과서를 통해 배운 물리의 공식 따위는 무시해 버린다. 오로지 감독이 코브의 입을 통해 제시하는 '크리스토퍼 놀란식' 법칙만이 적용된다. '머릿속 아이디어가 도시를 지을 수도 있지. 세계를 바꿀 수도 있고 법을 만들 수도 있어.'

꿈 속의 무중력 상태에서 아서가 벌이는 격투장면은 흡사 매트릭스의 총알 신을 떠오르게 할 정도로 창조적이고 충격적이다.
꿈 속의 무중력 상태에서 아서가 벌이는 격투장면은 흡사 매트릭스의 총알 신을 떠오르게 할 정도로 창조적이고 충격적이다.

▶ 최강의 연기 드림 팀의 완벽한 조화

코브의 지휘 하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것처럼, 천재적인 감독하에 모여 든 배우들의 조합 역시 최강의 드림 팀이라 부를 만 하다. 주요 출연진 대다수가 아카데미 상을 수상했다는 수식어는 차치하고라도, 영화에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조셉 고든-레빗, 마리온 코티아르, 엘렌 페이지, 톰 하디, 톰 베린저, 딜립 라오, 켄 와타나베, 킬리언 머피, 마이클 케인 등 일일이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의 거물급 연기파 배우들이 총 출동한다. 완벽하다 할 정도의 연기를 보여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강한 인상을 남긴 조셉 고든-레빗,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받게 해 주었던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와 다시 인연을 맺은 마리온 코티아르, 그리고 '주노'의 헤로인 엘렌 페이지까지, 이들의 연기를 한 영화에서 보는 것은 어쩌면 다시없을 행운일지도 모른다.

▶ 영화가 끝날 즈음 주인공은 꿈에서 깨어났을까


영화 속에는 '토템'이라는 것이 등장한다. 이는 현실과 꿈을 구별하기 위해 쓰는 일종의 개인 소지품이다. 코브의 토템은 작은 팽이다. 꿈일 경우 이 팽이는 계속 돌아가고, 현실일 경우엔 시간이 지나면 멈춘다.

피셔의 막강한 무의식적 방어와 멜의 집요한 방해에도 팀은 작전을 완성하고, 부상을 입은 멤버를 구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남았던 코브 역시 꿈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 그토록 그리던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그는 책상 위에 팽이를 돌린다.

팽이가 돌기 시작한다. 그는 진정으로 꿈에서 깨어난 것일까. 대답은 관객의 상상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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