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안현진] 뚱뚱해서 불편한 세상에 날리는 하이킥 ‘드롭 데드 디바’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7월 1일 19시 06분


제인(가운데)과 테리. 제인이 스트레스 받을 때 마다 테리는 달콤한 도넛과 치즈 스프레이로 마음의 안정을 찾아준다.
제인(가운데)과 테리. 제인이 스트레스 받을 때 마다 테리는 달콤한 도넛과 치즈 스프레이로 마음의 안정을 찾아준다.

"문제는 사이즈다(Size does matter)." 그놈의 '사이즈'가 뭔지, 받은 편지함보다 더 자주 비워내야 하는 스팸메일함은 연일 지치지도 않고 사이즈 타령이다. 가슴은 더욱 크게, 허리는 더욱 가늘게. 남녀를 막론하고 부위에 따라 다른 사이즈를 갖추어야 아름답고 매력적이라고 주장하는 이 기괴한 시대에, 큰 사이즈의 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과감한 드라마가 있다. '미녀는 괴로워'에서의 김아중처럼 실리콘으로 만든 가짜 살덩이를 입고 뚱녀를 연기하다가 (다이어트와 성형수술로) 환골탈태하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아니라, 진짜 과체중의 여배우가, 과체중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코믹 판타지 드라마, 미국 TV네트워크 '라이프타임(Lifetime)'에서 최근 시즌2를 출항시킨 '드롭 데드 디바(Drop Dead Diva)'가 그 주인공이다.

▶ 내 삶을, 아니 내 몸을 돌려줘

'금발이 너무해'와 '미녀는 괴로워' '프리키 프라이데이' 등을 연상시키는 '드롭 데드 디바'는 드라마를 위한 설정을 설명하며 시작한다. 24살의 모델 뎁(브룩 도세이)은 TV쇼 오디션을 보러 가는 길에 룸미러를 보며 립글로즈를 고쳐 바르는 동시에 절친한 친구 스테이시(에이프릴 볼비)와 전화통화를 하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같은 시각, 32살의 넉넉한 체형의 변호사 제인(브룩 엘리엇) 역시 소송 결과에 불만을 가진 고객이 들이닥쳐 오발된 총에 맞고 즉사한다.

그리고 화면은 에스컬레이터로 오르고 내리는 천국의 문으로 시청자를 안내한다. 온통 흰색으로 칠해진 그곳에서는 흰옷을 입은 문지기들이 방금 죽은 영혼을 심판해 천국행과 지옥행을 결정한다. 역시 흰 목욕가운을 입고 그곳에 도착한 뎁은 담당 문지기 프레드(벤 펠드먼)를 만나는데, "착한 일도, 나쁜 일도 하지 않은 '제로제로'" 상태라는 판정을 받는다. 얄팍한 삶을 살아왔다는 혹평에 화가난 뎁은 지구로 돌아가는 버튼을 프레드 몰래 누르고 삶을 다시 되찾는데, 여기서 약간 문제가 생긴다. 뎁이 돌아간 곳은 원래 그녀가 살았던 몸이 아니라, 병원에 누워 사망선고를 기다리던 제인의 비대한 몸이다.

개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옛말은, 새로운 몸으로 전생에서 받아본 적 없는 괄시와 부족한 자신감에 시달려야 하는 뎁, 아니 제인에게는 동의할 수 없는 이야기다. '드롭 데드 디바'는 뎁과 제인의 삶을 자연스럽게 이어주기 위해서 파일럿에서 몇 가지 설정을 설명하는데, 두뇌는 신체의 일부이기 때문에 제인의 총명함과 변호사로서의 전문지식이 그대로 유지되는 동시에, 영혼의 일부인 기억과 성격은 뎁의 것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인과 뎁의 삶을 자연스럽게 잇기 위해 제인이 사실은 뎁이라는 비밀을 친한 친구인 스테이시에게 털어놓으며, 뎁의 약혼자였던 그레이슨(잭슨 허스트)은 제인의 새로운 직장 동료가 된다.

그렇게 제인은 절친한 친구와 비밀을 나누며, 예전 삶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연인이 뎁을 잃은 슬픔을 견디고 앞으로 한발 나가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는 행복과 불행을 동시에 겪게 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새로운 제인의 삶에는 두 명의 보조자가 있다. 법률 회사에서 6년 동안 제인을 보조해온 비서 테리(마거릿 조)가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제인으로서의 삶을 이어갈 수 있게 도와준다면, 뎁이 사고를 치는 바람에 천국의 문지기에서 수호천사로 강등당한 프레드는 뎁이 새로운 제인으로서의 삶에 익숙해지도록 곁에서 지켜주고 도와준다.

천국에 간 뎁. 착한 일도 나쁜 일도 하지 않은 '제로제로'라는 말에 발끈해 '송환 버튼'을 누르는데, 본래의 몸이 아닌 제인의 몸으로 돌아가면서 드라마가 시작된다.
천국에 간 뎁. 착한 일도 나쁜 일도 하지 않은 '제로제로'라는 말에 발끈해 '송환 버튼'을 누르는데, 본래의 몸이 아닌 제인의 몸으로 돌아가면서 드라마가 시작된다.

▶ 뚱뚱해서 불편한 세상에 날리는 귀여운 하이킥

파일럿 이후의 내용은 과체중 여성을 향한 세상의 시선을 변호사라는 제인의 직업을 통해서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뻔한 이야기지만, 이 드라마가 말하려는 것은 얄팍한 피부 아래 숨겨진 "내면의 아름다움"이다. 변호사인 제인의 직장이 주무대인 덕분에 에피소드 마다 새로운 소송사건이 소개되는데, 전부는 아니어도 많은 경우에 과체중 여성으로서의 제인이 가지는 신체 이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급격하게 체중이 불어난 웨이트리스가 직장에서 해고당한 뒤 일부러 과체중인 제인을 변호사로 선임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할 때, 점찍어둔 옷을 사려고 디자이너 매장에 찾아갔는데 "당신의 사이즈는 우리 브랜드의 이미지와 맞지 않아" 옷을 팔 수 없다는 황당한 답변을 들을 때, 바텐더가 매장의 수질관리를 위해 서비스하던 음료를 이제는 제 값 주고 사먹어야 할때, 뎁으로서의 기억을 간직한 제인은 좌절하곤 하지만, 더 이상 '제로제로'로 살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한 뎁이기에 제인의 총명함과 정의로운 마음을 바탕으로 세상의 불공정함에 맞서 싸운다. 결과가 언제나 해피엔딩일 수는 없어도 작은 노력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노력은 아름다운 내면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드롭 데드 디바'는 지치지 않고 매회 이야기한다.

온갖 드라마틱한 장르가 난무하는 TV시리즈 세상에서 착하기만 한 이야기는 재미가 없다. 그래서 제인이 불공정함에 맞서 싸우는 모습만 보여줬다면 이 드라마를 계속 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드롭 데드 디바'의 주인공은 '제인의 몸에 사는 뎁'의 이야기다. 모델이었던 뎁 덕분에 제인은 화장도 자신의 피부톤에 어울리게 할 줄 알게 되었고, 체형을 매력적으로 강조하는 옷차림도 하게 된다. 덕분에 제인에게도 이런 저런 사랑이 오고 간다. 이전의 제인이 제대로 풀어나가지 못했던 부모와의 관계를 새로운 제인은 현명하게 바꾸어 나가고, 부족한 자신감과 착한 마음 때문에 속아서 결혼했던 이전의 제인을 대신해서 가짜 남편에게 화를 내주기도 한다.

▶ 인기TV쇼가 TV시리즈 안으로~

하지만 가장 재미있는 파트는, 리얼리티 TV쇼의 판정시스템과 법정물로서의 특징을 재치있게 도입한 드라마의 스타일이다. TV쇼와 패션 월드를 연모하던 뎁과 스테이시의 삶이 제인의 삶에 드라마틱하게 녹아 들어간다. 제인의 몸에 뎁의 영혼이 들어가 있는지 모르는 옛 연인 그레이슨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도 내가 뎁이라고 말하지 못해 가슴앓이를 하는 제인이 꿈을 꾸면, '프로젝트 런웨이'의 팀 건이나, '아메리칸 아이돌'의 폴라 압둘이 판사 복장을 하고 나타나서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진실이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며 미니 스커트에 킬힐을 신고 나타나서는 춤을 추면서 "네 맘의 소리를 따르라"는 폴라 압둘의 조언을 '드롭 데드 디바'의 캐스팅 전원이 군무하는 대목은 시즌2의 첫 에피소드에서도 가장 재미있던 장면. '드롭 데드 디바'는 꿈 장면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시즌1에서 제인을 그저 좋은 직장 동료이자 상사로 생각했던 그레이슨이 제인과 키스하는 꿈을 꾸면서 제인에 대해 새로운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도 시즌2를 이끌어갈 중요한 줄거리가 될 것이다.

뎁이 제인의 몸에 있는 줄 모르는 그레이슨. 시즌2부터 제인에게 심상치 않은 매력을 느끼게 된다.
뎁이 제인의 몸에 있는 줄 모르는 그레이슨. 시즌2부터 제인에게 심상치 않은 매력을 느끼게 된다.

▶ 새 시즌에서는 제인에게도 사랑이…

뚱뚱한 여자를 내세워 세상의 편향된 시선에 일침을 가하는 '드롭 데드 디바'의 의미 있는 시도는 시청률로 그 성과도 증명했다. 첫 에피소드의 시청자수 1600만명으로 출발하여 시즌1의 파이널은 2800만명의 시청자를 TV앞에 앉혀놓았다. 특히 18세에서 40세 사이의 여성이 유효 시청자인데 시즌1을 방영하는 동안 이 유효 시청자 그룹의 수치가 2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이즈 제로가 득시글한 TV세상에 '플러스 사이즈' '넉넉한 체형' '뚱뚱한 여자' 등등의 수식어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캐릭터 제인 빙엄이 나와 춤추고 노래하고, 자신을 비롯해 체형으로 차별받는 사람들을 변호한다. 새로운 시즌에서도 제인의 노력은 계속되겠지만, 부디 시즌2에서는 제인에게도 가슴 따뜻한 사랑이 찾아오길 바란다. 뚱뚱한 체형을 좋아하는 남자가 찾아오는 게 아니라, 제인이 간직한 따뜻하고 총명한 내면을 사랑하는 그런 사람이, 꼭 그레이슨이 아니더라도, 찾아와줬으면 좋겠다.

안현진/잡식성 미드 마니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