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기무사령부가 북한 공작원에게 ‘작전계획 5027’을 포함한 군사기밀을 빼돌린 혐의로 현역 육군 소장 김모 씨를 소환해 수사하고 있다. 작전계획 5027은 북한의 전면 도발을 상정해 세운 2급 군사기밀 문서로 김 소장이 이를 북한에 넘긴 것으로 확인되거나 다른 고위 장교가 연루된 사실이 드러날 경우 큰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 원태재 대변인은 4일 “기무사가 이달 초 K 씨(김 소장)를 임의동행 형식으로 소환조사를 시작했다”며 “그는 아직 입건되지 않아 피내사자 신분”이라고 밝혔다. 군 당국과 검찰에 따르면 김 소장은 공작명 ‘흑금성’으로 알려진 대북 공작원 출신의 간첩 박모 씨에게 포섭돼 2005∼2007년 작계 5027과 작전교리, 야전교범 등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군 고위 관계자는 “수사 상황을 살펴 본 결과 김 소장 외에 다른 고위 장교가 관련된 사실은 파악하지 못했다”며 수사 확대 가능성을 낮게 봤다.
김 소장은 기무사 조사 과정에서 “박 씨가 간첩인지 몰랐고, 작계 5027을 문서로 넘긴 적도 없고, 인터넷을 검색하면 나올 수 있는 개략적인 내용을 설명했을 뿐”이라며 혐의를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박 씨는 “당시 육군 준장이었던 김 소장에게서 작계 5027에 대해 일부 자료를 받고 설명도 들었다. 그러나 이를 북한에 전달하지는 않았다”고 진술했다고 수사당국은 설명했다. 수사당국은 박 씨가 김 소장에게서 입수한 정보가 북으로 넘어간 일부 정황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군 당국은 한미 양국 군이 공동으로 마련한 작전계획을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 빚어질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군 관계자는 “김 소장이 전방 군단의 참모장(준장)을 지냈던 시점에 벌어진 일이어서 유출된 작계의 범위에 따라 파장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의 혐의는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가 방산업체 L사의 부장인 예비역 중령 손모 씨가 박 씨에게서 돈을 받고 군 통신장비 관련 사항을 북한에 알려준 혐의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김 소장과 박 씨, 손 씨는 장교 양성 기관의 선후배 관계다.
한편 1990년대 말 ‘북풍(北風)사건’을 통해 신분이 드러난 박 씨를 북한 공작원으로 포섭한 것은 북한 민족경제협력위원회 소속 공작원 이호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는 2006년 10월 당시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참사 자격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 씨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만났던 인물이다. 이 씨는 박 씨가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요원으로 활동할 때도 북측 상대역으로 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 작전계획 5027 ::
한미 양국이 북한과의 전면전에 대비해 세운 군사운용 계획. 전시작전권을 가진 미국이 주도적으로 작성하며 1, 2년마다 개정판이 나온다. 1974년 처음 수립된 이래 1994년부터 ‘5027-94’ ‘5027-96’ 등으로 보완됐다. 작계 5027은 한미 연합군의 신속억제전력 배치(1단계), 북한 전략목표 파괴(2단계), 북진 및 대규모 상륙작전(3단계), 점령지 군사통제 확립(4단계), 한반도 통일(5단계) 등 5단계로 구성돼 있다.
■ ‘흑금성 사건’이란 97년 안기부 주도 ‘북풍공작’ DJ 낙선시키려 北접촉 기밀수집
흑금성 사건은 1997년 12월 15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국가안전기획부가 주도한 이른바 ‘북풍(北風) 공작’이다. 흑금성은 안기부가 광고기획사인 ㈜아자커뮤니케이션에 전무로 위장 취업시킨 대북 공작원 박모 씨(56)의 암호명. 아자커뮤니케이션은 1997년부터 북한 금강산 백두산 개성 등을 배경으로 TV광고를 찍는 사업을 추진했다. 박 씨는 대북 사업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북한 고위층을 만나 기밀정보를 수집하고 안기부에 보고했다. 이 가운데는 국내 정치권 인사들이 중국 베이징(北京) 등에서 북한 고위층과 접촉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측이 북한에 판문점에서의 총격을 요청했다는 이른바 ‘총풍(銃風)’도 박 씨가 수집한 정보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