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집중분석] 신데렐라 언니, ‘결핍소녀’들의 불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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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24일 1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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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조야 하고 불렀다."

나는 이 내레이션이 나오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그 말을 듣고 싶어 한 은조와 그 모습을 보는 효선의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KBS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가 장안의 화제다. 스토리텔링의 시대에 고전이 갖는 힘은 그만큼 크다. 역시 직구가 잘 먹혀야 변화구도 효과가 있는 법이다.

신데렐라 이야기의 힘이 워낙 크기에 신데렐라 언니를 주인공으로 한다는 아주 짧은 설정 하나로 대중은 이 복잡한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신데렐라나 우리나라의 콩쥐팥쥐는 모두 이복자매와 핍박받는 동생, 가혹한 새어머니, 무력한 아버지의 구도로 이루어져 있다.

전래동화와 민담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하면 아시아권에서만 '콩쥐팥쥐'와 유사한 이야기가 400여 편 발견된다고 한다. 그만큼 이런 이야기의 원초적 구조는 탄탄하다. 인간의 본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신분석가 브루노 베텔하임은 '옛이야기의 매력'에서 신데렐라의 새어머니가 사실은 아이의 심상 속의 나쁜 어머니상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엄마가 읽어주고 아이가 듣는 침대 머리맡 이야기에서 어머니가 아이를 괴롭히는 얘기를 차마 직접 할 수는 없다. 그러니 내용상 어머니를 상징하는 새어머니를 등장시킨 것이다. 얘기를 해주는 어머니도 "그러니까 엄마 말 잘 들어, 엄마가 속상해서 죽고 나면 이런 사람이 와서 널 힘들게 할 거야"라는 교훈을 줄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옛이야기에서 엄마와 딸의 갈등이 나올 때 예외 없이 새어머니가 등장한다.


▶ 아버지 결핍의 은조 VS 어머니 결핍의 효선

그런데 이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는 오리지널 이야기에서 기본 구도를 빌려와 중심축을 신데렐라의 언니로 살짝 틀었고, 새어머니도 그냥 악독한 사람이 아니라 생계형으로 변화시켰다는 것 말고도 꽤 다른 점이 많이 보인다. 특히 주인공들의 심층심리가 그렇다.

신데렐라인 효선뿐만 아니라 언니인 은조에게서도 근본적인 불안의 징후가 끊임없이 보인다. 일방적으로 괴롭히고 착취하는 악당이 아니라 배트맨의 조커에게서 느껴지던 근본적인 불안의 풍미가 느껴진다. 일부에서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신데렐라 언니가 대성참도가를 재건하는 과정을 보면서 악조건 속에서도 성취를 해나가는 자기개발 차원의 진취적 현대여성의 모습으로 해석한다.

그렇지만 피 한 방울 안 섞인 은조가 왜 구대성의 뜻을 이어가려 하는 걸까. 은조가 엄마에게 표면적으로 얘기하듯이 "이 곳을 살리지 못하면 쫓겨나게 돼"기 때문이라는 생계형 목적만 있는 것은 분명히 아닌 것 같다. 그리고 효선도 은조도 뭔가 불안하다. 어쩌다 일이 잘 풀려도 그리 편안해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왜 이 두 여성은 이렇게 드라마 내내 불안해보이고 힘든 것일까. 대성참도가가 망할까봐? 오직 그것뿐이었다면 이런 인기를 얻지는 못했으리라. 뭔가가 우리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 키워드는 '결핍(deficit)'이다.

나는 이 드라마에서 두 명의 결핍된 소녀를 보았다. 아버지 없이 자란 은조는 아버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성은 감정표현을 전혀 하지 않는 은조에게 "너 아버지라고 한 번 안 해줄래? 안 해줄 테야? 응?"이라고 하고는, "어디다 내놓아도 걱정 없을 때가 오면 보내줄게 약속하마. 난 약속을 하면 지키는 사람이다. 당분간 내가 네가 이 집에 있어도 좋을 이유가 돼주마. 믿어라"고 말한다.

수많은 남자를 만나며 억척같이 살아온 엄마 덕에 역시 수많은 아빠들과 만나고 헤어져온 은조는 그때까지 어른 남자를 믿지 않았다. 그리고 만나지 못했다. 아이의 발달에 꼭 필요했던 한 축이 결핍돼 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필요가 없다고 의식적으로는 여기고, 믿으면서 살아왔다. 그래야 더는 상처받지 않을 것이라 여겼으니까. 그래서 은조는 말한다.

"저한테 마음 주지 마세요. 주셨다면 다 거둬가세요. 저 끝내주게 못된 애에요. 얼마나 못됐는지 상상도 못하실 거예요.(중략) 그러니까 저 예뻐하지 마세요. 저 믿어 주신다구, 그 은혜 백골난망이라 평생 감사하게 여기면서 살 그런 애가 아니에요."

이렇게 말은 하지만 의식 깊은 곳은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효선도 그렇다. 어머니 없이 자란 효선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강숙의 존재가 그저 기쁠 뿐이었다. 그래서 한없이 의존하고 사랑을 받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대성이 죽은 뒤 강숙이 태도를 백팔십도 바꿔서 효선에게 매몰차게 대해도 "한 번만 우리 애기라고 불러주세요"라며 그녀의 인정과 사랑을 갈구한다. 나쁜 엄마라도 있는 게 엄마가 없는 것보다 낫다고 여긴다.

그녀는 축전지가 없는 태양광 자동차와 같다. 누군가의 인정과 사랑이 없으면 움직이기 힘들고, 그것이 없으면 멈춰버린다. 어떤 때에는 비록 미움으로 느껴진다고 해도 그것을 관심으로 여기고 감내한다.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는 존재라고 자신을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효선은 말한다.

"날 쫓아내거나, 너랑 엄마가 도망가지만 않으면, 그러면 돼. 너랑 엄마랑 준수랑 없으면 나 정말 혼자잖아. 날 버리지만 마!"


▶ 불안의 원인은 '원초적 결핍감'

하지만 둘의 갈증은 쉽사리 채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각자 자기의 방식으로 마음속의 원초적 결핍감을 해결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게 된다. 이것이 두 사람의 성인기의 불안을 설명하는 키워드다.

은조는 처음으로 자신을 받아준 대성이 허망하게 죽어버리자 뭔가에 홀린 듯이 대성의 뜻에 따라 대성참도가를 재건하기 위해 사생활도 없이 로봇이 된 듯 일에 매달린다. 그녀에게도 한 때 소녀적 로망이 있었다.

"상관없다. 나는 딱 한사람한테만 칭찬받고 싶었을 뿐이다."

이렇게 그녀는 기훈의 인정과 사랑을 기대했다. 기훈도 십대 소녀 은조의 그런 마음을 알았다. 그렇지만 몇 년이 지난 뒤 만난 은조는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일에 미쳐 있는, 그리고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감을 감당하지 못해 허덕이는 안타까운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정상적인 소녀가 여성으로 발달하면서 갖기 마련인 '사랑'이, 그보다 훨씬 이전 단계에서 달성돼야할 아버지의 결핍을 해결하기 전까지는 그저 사치일 뿐이라고 여기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드세요. 제가 만든 거예요. 저는 아, 아빠한테 칭찬받고 싶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잘못했어요. 아빠, 아빠~~."(대성의 영정 사진에 자신이 만든 막걸리를 놓고 울면서)

효선은 기훈의 사랑을 애타게 찾는다. 그렇지만 그저 어린 동생일 뿐이라는 것을 절감하고 속상해한다. 그러고는 강숙 대신 이복동생을 챙기고 먹이고 보살피는 것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결핍된 모성성을 채워나가려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어머니의 인정을 필사적으로 바란다. 그리고 어머니의 사랑을 은조와 동등하게 받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이는 쉽지 않다. 강숙은 효선을 뜯어먹을 게 있는 대상으로 여길 뿐이다.

"엄마한테 내가 별로 이쁘지 않은 거 알아. 그래도 내게 잘해줘서 고마워. 나중엔 엄마가 정말 마음으로 내가 예뻐서 안을 수 있게 내가 잘 할게." (효선의 대사)

뜯어 먹힐 것임을 알면서도 몸을 맡기는 것이 효선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나쁜 음식인 것을 알면서도 허기진 배를 채워야하는 심정과 같다. 나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강숙의 마음은 멀게 느껴진다. 그래서 효선은 속상하고 무력감을 느끼고, 어느 순간부터 그저 착하기만 해보이던 효선이 강한 공격성을 드러내는 계기로 전환된다.

이렇게 둘은 각자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무한한 노력을 한다. 그러니 남의 떡이 커 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서로를 질투한다. 내가 갖고 있지 못한 것을 너무나 손쉽게 태어나면서부터 차지하고 있고, 나는 그것이 없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죽을 고생을 하고 한없이 사라지지 않는 불안을 견디며 살아야한다고 생각해보자. 어떻겠는가.

둘의 노력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젊은이들의 성공과 야망을 위한, 사랑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근본적인 자기애와 자기존중의 확보를 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읽힌다. 그래서 그녀들은 불안하다.

은조가 대성참도가에서 새로운 막걸리를 만들지 못한다면, 효선이 기훈과 강숙의 사랑을 얻지 못한다면, 그냥 그런가 보다하며 다른 대상을 찾으면 그만이 아니다. 그들의 존재가 허물어져버릴 것이라는 깊은 수준의 공포감이, 지속적으로 작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그녀들을 흔들어 댄다.

그렇기에 드라마 내내 두 사람은 불안하고 흔들려 보인다. 그만큼 두 사람의 내면은 아직도 어린 시절의 모습 그대로 멈춰져있는지도 모른다. 작은 촛불 하나에 의지해서 떨고 있는 어린 소녀들의 모습이 어른이 된 은조와 효선의 뒤에서 비추어져 보인다는 것은 나만의 착시일까.

▶ 행복을 찾기 위한 귀인을 기다리며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둘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드라마에서 그 결말을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것은 작가의 영역이다. 그렇지만 이런 사람이 세상에 정말 있다고 한 번 생각해보자. 그냥 가정을 해보자. 흥미삼아 말이다.

정신과 의사는 드라마를 보면서도 자꾸 그런 생각을 하게 되니 피곤한 직업임은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 떠오르는 것은 먼저 자기심리학파 정신분석가 하인츠 코훗이다. 그는 자기애적 인격의 결핍모델을 제시하면서 치료적 해결은 직면과 해석이 아니라 결핍된 부분이 충분히 채워질 때까지 기다리고 용인하며 끈기를 갖고 공감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이 드라마에서는 그런 면에서 기훈과 정우의 역할이 크다. 두 사람이 둘의 결핍을 채워줄 때까지 기다리고 인내할 수 있다면, 또 그들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공감해줄 수 있다면, 점차 효선과 은조는 세상은 안전하고 살만한 곳이라는 것, 인간은 기본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서서히 변화해갈 수 있을 것이다.

그 변화라는 것은 별 다른 게 아니다. 덜 불안해지고, 덜 열등감을 느끼고, 편안해 하고 너무 무리하게 애를 쓰면서 안달복달해하지 않는 그런 삶을 사는 것이다. 또 모든 것이 100% 충족될 수 없는 현실의 완벽하지 못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신과 전문의 노경선은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라는 책에서 생애 초기부터 아이에게 해야할 일관된 부모의 메시지를 제시했다.

"우리는 늘 너를 바라보고 있고, 너의 말에 항상 귀 기울이고 있단다. 너는 소중하고 의미 있는 존재란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너를 좋아해. 네가 말하는 것을 잘 알아듣고 너의 반응을 존중해서 대답해 줄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은조와 효선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메시지를 자기 주변 사람들로부터 받는 것이다. 세상 살면서 귀인(貴人)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들 한다. 귀인은 따로 있지 않다. 부모가 해주지 못한 것을 어른이 되어서 대신 해줘서 멈춰있던 마음의 성장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존재가 바로 소중한 귀인이다.
하지현 건국대 의대 신경정신과 교수 jhn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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