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수화로 배우는 컴퓨터 ‘소리없는 열정’

동아일보 입력 2010-04-20 03:00수정 2010-04-20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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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경로문화센터
청각장애인 14명 교육
‘엔터’를 ‘ㄴ자모양 자판’으로
수화통역사들 의역해 가르쳐
‘종료’ 클릭에 수십초 걸려도
“제대로 배우겠다” 열의 넘쳐
16일 서울 송파구 송파동 송파경로문화센터 정보화교육실에서 한 청각장애인이 수화통역사의 도움을 받아 인터넷 검색 방법을 익히고 있다. 이원주 기자
“자, 이제 화면 가운데 있는 ‘확인’ 버튼을 마우스로 클릭해 주세요.”

16일 오후 2시경 서울 송파구 송파동 송파경로문화센터 정보화교육실. 컴퓨터 강사가 이렇게 말하자 그 옆에 서 있던 수화통역사가 두 눈을 손가락으로 한 번씩 가리킨 후 허공에 검지로 무언가를 꾹 누르는 시늉을 한다. 검지로 두 눈을 가리키는 행동은 ‘확인’을, 허공에 무언가를 누르는 것은 ‘누르다’를 뜻하는 수화다. 이곳에서는 이달 2일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청각장애인 14명이 정보화교육을 받고 있다.

○ 소리 없는 ‘열의’

수업 진행 속도는 장애가 없는 컴퓨터 입문자를 가르칠 때보다 훨씬 느리다. 강의나 대화를 할 때마다 수화통역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데다 영어가 많은 컴퓨터 용어를 낯설어하는 청각장애인이 많기 때문. 강서옥 수화통역사는 “청각장애인들은 수화를 모국어처럼 사용하고 국어를 배울 때도 많은 노력을 들이기 때문에 영어까지 접하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날 수업에서도 수화통역사들은 ‘엔터키’를 ‘ㄴ자 모양 자판’으로, ‘스페이스바’를 ‘기다란 자판’으로 의역해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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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과 마우스를 사용하는 데 익숙하지 않아 ‘종료(X자) 단추’를 클릭하는 데도 수십 초가 걸릴 정도. 하지만 ‘제대로 배우겠다’는 열의는 대단했다. 청각장애인 홍순태 씨(78)는 “컴퓨터를 처음 써보는 데다 나이가 많아서인지 잘 적응이 되지 않는다”면서도 따로 챙겨온 종이에 필요한 내용까지 적어가며 열심히 배웠다. 맨 앞줄에 앉아 수업을 듣던 김상옥 씨(78·여)도 강사가 시범을 보이면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꼭 따라해 봤다. 이해가 안 가면 수화통역사를 불러 질문까지 할 정도였다.

청각장애인들은 수업이 원활히 진행되도록 강사와 다른 수강생을 돕기도 했다. 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에 화면에 집중하고 있으면 진도를 나가기 위해 강사를 쳐다보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수화통역사가 앞에서 양손을 머리 높이로 들고 ‘반짝반짝’하듯 손을 흔들자 수강생들도 이 동작을 따라하거나 다른 수강생들에게 손짓을 해 강사를 쳐다보라고 전해주는 모습도 보였다.

강의를 돕는 수화통역사 4명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청각장애인들의 질문을 받아주거나 동작이 잘되지 않는 컴퓨터를 바로잡아 주는 등 수업이 진행되는 2시간 내내 자리에 앉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통역사들은 또 청각장애인들의 질문에 답해줄 때마다 팔꿈치 안쪽 바로 윗부분을 주먹으로 한 번씩 ‘탁’ 치면서 격려하기도 했다. ‘잘했다’는 뜻의 수화였다.

○ 청각장애인에게 필요한 컴퓨터교육

송파구는 문서작성 등 난도가 높은 과정은 생략하고 정보검색, e메일 등 인터넷 사용방법을 위주로 가르칠 계획이다. 당초 청각장애인 15명 한 팀을 교육하는 데 3개월을 예상했지만 이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여 필요한 내용을 다 가르칠 때까지 수업기간을 늘리기로 했다.

청각장애인들도 꼭 필요한 교육을 받게 돼 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농아인협회 석승모 송파구지부장은 “이번 정보화교육 때도 수강 신청을 했지만 컴퓨터가 부족해 다음 기회를 기다리게 된 청각장애인이 많다”며 “사회의 거의 모든 부분이 컴퓨터로 운영되기 때문에 청각장애인들이 정보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면 컴퓨터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파구 사회복지과 김옥식 팀장은 “관내 청각장애인이 1950명 정도로 파악된다”며 “수요가 없을 때까지 청각장애인 컴퓨터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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