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 14명 교육
‘엔터’를 ‘ㄴ자모양 자판’으로
수화통역사들 의역해 가르쳐
‘종료’ 클릭에 수십초 걸려도
“제대로 배우겠다” 열의 넘쳐

16일 오후 2시경 서울 송파구 송파동 송파경로문화센터 정보화교육실. 컴퓨터 강사가 이렇게 말하자 그 옆에 서 있던 수화통역사가 두 눈을 손가락으로 한 번씩 가리킨 후 허공에 검지로 무언가를 꾹 누르는 시늉을 한다. 검지로 두 눈을 가리키는 행동은 ‘확인’을, 허공에 무언가를 누르는 것은 ‘누르다’를 뜻하는 수화다. 이곳에서는 이달 2일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청각장애인 14명이 정보화교육을 받고 있다.
○ 소리 없는 ‘열의’
자판과 마우스를 사용하는 데 익숙하지 않아 ‘종료(X자) 단추’를 클릭하는 데도 수십 초가 걸릴 정도. 하지만 ‘제대로 배우겠다’는 열의는 대단했다. 청각장애인 홍순태 씨(78)는 “컴퓨터를 처음 써보는 데다 나이가 많아서인지 잘 적응이 되지 않는다”면서도 따로 챙겨온 종이에 필요한 내용까지 적어가며 열심히 배웠다. 맨 앞줄에 앉아 수업을 듣던 김상옥 씨(78·여)도 강사가 시범을 보이면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꼭 따라해 봤다. 이해가 안 가면 수화통역사를 불러 질문까지 할 정도였다.
청각장애인들은 수업이 원활히 진행되도록 강사와 다른 수강생을 돕기도 했다. 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에 화면에 집중하고 있으면 진도를 나가기 위해 강사를 쳐다보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수화통역사가 앞에서 양손을 머리 높이로 들고 ‘반짝반짝’하듯 손을 흔들자 수강생들도 이 동작을 따라하거나 다른 수강생들에게 손짓을 해 강사를 쳐다보라고 전해주는 모습도 보였다.
강의를 돕는 수화통역사 4명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청각장애인들의 질문을 받아주거나 동작이 잘되지 않는 컴퓨터를 바로잡아 주는 등 수업이 진행되는 2시간 내내 자리에 앉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통역사들은 또 청각장애인들의 질문에 답해줄 때마다 팔꿈치 안쪽 바로 윗부분을 주먹으로 한 번씩 ‘탁’ 치면서 격려하기도 했다. ‘잘했다’는 뜻의 수화였다.
○ 청각장애인에게 필요한 컴퓨터교육
송파구는 문서작성 등 난도가 높은 과정은 생략하고 정보검색, e메일 등 인터넷 사용방법을 위주로 가르칠 계획이다. 당초 청각장애인 15명 한 팀을 교육하는 데 3개월을 예상했지만 이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여 필요한 내용을 다 가르칠 때까지 수업기간을 늘리기로 했다.
청각장애인들도 꼭 필요한 교육을 받게 돼 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농아인협회 석승모 송파구지부장은 “이번 정보화교육 때도 수강 신청을 했지만 컴퓨터가 부족해 다음 기회를 기다리게 된 청각장애인이 많다”며 “사회의 거의 모든 부분이 컴퓨터로 운영되기 때문에 청각장애인들이 정보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면 컴퓨터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파구 사회복지과 김옥식 팀장은 “관내 청각장애인이 1950명 정도로 파악된다”며 “수요가 없을 때까지 청각장애인 컴퓨터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