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자 열살 아들 ‘실종’의 의미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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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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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짝꿍은 언제 올까 천안함이 침몰된 지 닷새째인 30일 경기 평택시 해군 제2함대사령부 앞에 있는 원정초등학교 1학년 교실. 결석을 한 실종자 자녀들의 빈자리가 눈에 띈다. 평택=김재명 기자
내 짝꿍은 언제 올까 천안함이 침몰된 지 닷새째인 30일 경기 평택시 해군 제2함대사령부 앞에 있는 원정초등학교 1학년 교실. 결석을 한 실종자 자녀들의 빈자리가 눈에 띈다. 평택=김재명 기자

실종-생존자 자녀 10명 다니는 평택 원정초교
책상 2곳은 이틀째 빈자리
학생 76%가 2함대 장병 자녀
생존자 자녀 담임교사들도 차마 안도하는 내색 못해


“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연기….”

30일 경기 평택시 포승읍 원정초등학교 1학년 2반. 동요 ‘노을’을 부르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여느 때처럼 울려 퍼졌지만 교실 중간의 두 자리가 비어 있어 허전한 분위기였다. 해군 초계함 천안함 침몰사고 실종자 박경수 중사(30)의 딸(7)과 김태석 중사의 딸(7)은 이틀째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이들 외에도 이 학교에는 이번 사고로 인한 실종자 자녀가 4명 더 있다. 이날은 3명이 출석했다.

원정초교는 ‘해군 제2함대 부속초등학교’라고 불릴 정도로 이 부대 장병들의 자녀가 많이 다닌다. 전교생 617명 중 470명이 제2함대사령부 장병의 자녀들이다. 이번 사고의 실종자뿐 아니라 생존자 자녀도 4명. 백성욱 교감(52)은 “실종자와 생존자 자녀가 모두 있다 보니 말하기가 무척 조심스럽다”며 아이들에게는 질문을 하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이들은 모두가 한 가족처럼 지내왔다. 대부분 부대 인근 해군아파트에 살아 아이들은 서로의 부모를 ‘이모’ ‘삼촌’이라고 불렀다. 박귀옥 교장(58·여)은 “사고 소식을 접하고 제발 실종자가 없길 바라면서 명단을 일일이 대조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지없이 실종자 명단에 아이들 아버지의 이름이 있었다. 담임교사들은 28일 일요일 실종자들의 집을 일일이 찾았다.

29일부터 학교에 등교하지 못한 두 학생의 담임인 김은정 교사(27·여)는 “왜 우리 반에 이런 비극이 생긴 건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왈칵 쏟았다. 두 아이는 해군아파트 같은 동에 산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들은 일요일 집에 찾아온 선생님을 보고 마냥 반가워했다. 김 교사는 “아이들이 어려서 잘 몰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더 슬펐다”며 “혹시 상처를 줄까 봐 ‘학교에서 보자’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사고 전날인 25일 엄마와 함께한 요리강좌에서 유독 즐거워하던 남기훈 상사의 아들(10)은 학교에 계속 나왔다. 이승영 교사(31·여)는 “아빠가 실종됐다고 말하면서도 그게 어떤 것인지는 모르더라”며 “그래도 엄마가 많이 울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어봤더니 ‘꼭 안아주겠다’고 대답해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말했다.

김경수 중사의 딸(8)의 담임인 김봉환 교사(28)는 “동명이인이길 바라며 집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어머님이 먼저 하염없이 우시더라”고 말했다. “밝고 예쁜 아이가 이번 일로 상처받을까 걱정된다”는 김 교사는 아이들에게 ‘절대 티 내지 말라’고 당부했다.

구조된 김덕원 소령(35)의 아들 (7)의 담임 박은정 교사(28·여)는 “바로 옆 반에 실종자 자녀가 두 명이나 있어 내색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 군의 어머니 이문숙 씨(36)도 “우리는 괜찮은데 다른 집이 걱정”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김수길 상사의 맏딸(11)은 처음에는 생존자 명단에 성이 잘못 나와 마음을 졸였다. 담임 신지은 교사(23·여)는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학교 전체에 닥친 일이라 기뻐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신 교사가 작년에 처음 담임을 맡았을 때 가르쳤던 학생의 아버지 남기훈 상사(36)가 실종자 명단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그는 “동생을 챙기던 의젓한 아이였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평택=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동영상 = “장례용 천막 아니냐” 실종자 가족들의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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