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 입적…가실때도 ‘무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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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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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과 수의 마련 말라
장례의식도 말라
사리 찾으려 말라
탑도 세우지 말라

“많은 사람 수고만 끼치는 일체 장례의식 하지 말라. 관과 수의를 따로 마련하지 말고,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서 지체 없이 평소 승복 입은 그대로 다비하라. 사리를 찾으려고 하지 말며 탑도 세우지 말라.”

가시는 길도 ‘무소유’의 가르침 그대로였다. 무소유의 삶을 설파하고 실천해온 법정(法頂·사진) 스님이 11일 오후 1시 51분 서울 성북구 성북2동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세수 78세, 법랍 56세.

‘법정 스님 다비준비위원회’는 스님의 평소 말씀에 따라 영결식 등 장례절차 없이 법구(法柩)를 12일 스님이 수행했던 전남 순천시 송광사로 운구해 13일 오전 11시 다비(茶毘)할 예정이다. 스님은 문상도 받지 말라고 했지만 다비준비위는 불자들을 위해 서울 길상사, 순천 송광사와 인근 불일암 등 3곳에 분향소를 마련했다.

스님은 4년 전 폐암이 발병해 여러 차례 수술과 치료를 받았다. 지난해 겨울에는 강원도의 오두막에서 제주도로 거처를 옮겨 요양했지만 최근 병세가 악화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했고, 11일 오전 위급한 상황을 맞자 평소 뜻대로 길상사로 옮겨졌다.

다비준비위 대변인 진화 스님은 “10일 밤 법정 스님이 ‘모든 분께 감사한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했다.

법정 스님은 1932년 전남 해남군에서 태어나 전남대 상과대 3년을 수료한 뒤 22세 때인 1954년 경남 통영시 미래사에서 효봉(曉峰) 스님을 만나 출가했다. 1959년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자운(慈雲) 스님을 계사(戒師·계를 주는 스님)로 비구계를 받았다.

스님은 경남 합천군 해인사, 경남 하동군 쌍계사, 송광사 등에서 수선안거(修禪安居)했다. 불교신문 편집국장과 송광사 수련원장 등 종단 소임을 몇 차례 맡았을 뿐 수행자로서 본분에 충실했다. 1994∼2003년 시민모임 ‘맑고 향기롭게’ 회주(會主·모임이나 법회를 이끄는 사람)와 1997∼2003년 서울 길상사 회주를 지냈다.

1976년 처음 낸 산문집 ‘무소유’를 비롯해 ‘산방한담’ ‘버리고 떠나기’ ‘산에는 꽃이 피네’ ‘아름다운 마무리’ 등 30여 권의 책을 냈다. 스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담은 ‘무소유’는 370만 권이 나갔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진석 추기경은 이날 조계종 총무원에 메시지를 보내 “고통받는 중생들에게 많은 위로와 사랑을 주셨던 법정 스님의 원적은 불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큰 슬픔”이라며 애도했다.

조계종은 법정 스님에게 수행력과 법을 갖춘 큰스님에게 주는 최고의 법계인 대종사(大宗師)를 추서하기로 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우리 종단의 큰스님이자, 무소유의 정신을 실천해 사회적으로 존경받은 법정 스님의 열반 앞에 애통한 마음을 감출 길 없으며 전 종도와 더불어 깊은 애도를 드린다”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은 조전을 보내 “살아생전 빈 몸 그대로 떠나셨지만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남겨주셨고 자비가 무엇인지, 진리가 무엇인지 말씀만이 아니라 삶 자체로 보여주셨다”며 스님의 가르침을 기렸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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