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국무총리는 6일 청와대 주례보고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정부가 마련한 세종시 초안을 보고했다. 정부는 11일 세종시 수정안을 국민에게 내놓는다는 목표 아래 유치 대상 기업과 대학, 연구소 등의 목록을 막판 조율하고 있다. 정부 부처 이전은 백지화를 선언하는 일만 남았다. 어떤 기업, 어떤 대학이 어느 정도의 규모로 입주할 것인지가 세종시의 운명을 좌우할 것으로 전망된다. 충청권 민심은 “그 정도라면 됐다”로 흐를 것인가, 아니면 “그 정도론 어림도 없다”로 흐를 것인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정치권의 각 정파도 긴장한 모습이다. ○ MB, 세종시 수정 5대 원칙 제시
정 총리가 6일 오전 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세종시 초안은 A4용지 70쪽가량의 방대한 분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현재 유치 문제를 놓고 막판 조율 중인 기업과 대학, 연구소 등의 목록과 사업타당성, 실현가능성, 고용 및 인구유입 효과 등도 함께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부는 목록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일절 함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보고를 받은 뒤 크게 다섯 가지 원칙을 언급했다고 정 총리는 전했다. 5대 원칙은 △수도권을 포함한 타 지역 사업 유치 불가 △신규사업 위주 유치 △고용 창출 사업 위주 △지역 여론 수렴 △해외 자본이나 기업 유치 등이다. 이는 무엇보다 세종시 수정 추진으로 인한 다른 지역의 역차별 논란을 불식하고 세종시를 국제적인 명품도시로 만들라는 지침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이 대통령은 현지 주민의 사정을 각별히 살피라고 당부했다. 아울러 외국 자본 유치를 위해 자족용지를 충분히 남겨놓을 것도 지시했다. 정부는 1520만6600m2(460만 평) 정도의 자족용지 중 60∼70%만 채워놓고 나머지는 장차 외국자본 유치 등으로 활용하기 위해 빈 터로 남겨놓을 방침이다.
○ 삼성전자와 서울대의 선택은
유치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업과 대학, 연구소 중에서 초미의 관심사는 역시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그룹과 서울대의 입주 여부다. 고용 및 인구 유입 효과도 중요하지만 세종시 찬반 여론의 향배에 결정적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상징성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바이오시밀러(바이오 복제약) 등 첨단산업 투자를 정부에 제안했다.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은 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신년회에서 기자들에게 “세종시 이전 문제는 기본적으로 (정부에) 협조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며 “하지만 결정된 건 없다”고 말했다. 여권 관계자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바이오시밀러 투자가) 확정은 아니지만 유력하다”고 말했다.
여전히 적지 않은 기업이 정부의 수정안 최종 발표를 보고 판단하겠다는 태도지만 정부는 세종시 토지 가격 등이 5일 발표된 만큼 기업들의 판단이 빨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윤 삼양사 회장은 상공회의소 신년회에서 동아일보 기자에게 “그 정도 토지 가격이면 상당히 괜찮은 것이다. 매력적이다”라고 말했다. 중견그룹인 웅진 관계자는 “정부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웅진코웨이 웅진에너지 웅진케미컬 등 3개 주력 계열사의 신규 공장 추가 설립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연구개발(R&D)센터 설립도 검토 중이다”라고 말했다. SK 최태원 회장은 “우린 정해진 게 없고 위에서 들은 바도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입주 기업 목록은 8일경 확정될 것이며 8일을 넘기면 장기화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의 경우도 사정이 복잡하다고 한다. 이장무 현 총장의 임기가 올 7월 끝나고 그에 앞서 5월에는 서울대 총장 선거가 예정돼 있어 학내 의견을 하나로 모으기가 쉽지 않은 측면도 있다.
정부는 최근 서울대 융합학문 제2캠퍼스 설립 등을 서울대 측과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서울대 체제와 정원에 추가해 세종시에 융합학문 관련 학부를 설치하고 교수와 학생도 완전히 새로 뽑는다는 구상이다. 또 이런 구상을 세종시 수정안 발표 때 정부가 서울대에 ‘공개 제안’하는 방안도 검토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서울대 내에서도 단과대별로 의견이 분분한 데다 다른 대학들의 반발도 있어 세종시 수정안 발표 때 포함될지는 불투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정부가 캠퍼스 건립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청와대 관계자는 “서울대 제2캠퍼스는 현재 논의가 진행 중인 것은 맞지만 확정된 것은 아니다. 국가기관(국립대학)이기 때문에 정부 재정이 들어가야 한다. 내부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서울대는 정부가 큰 틀을 발표하면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태도에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 긴장하는 정치권
이 대통령은 8일 오전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들과 조찬회동을 갖고 세종시 문제에 대한 협조를 당부할 예정이다. 또 당정청 8인 수뇌부는 세종시 수정안 발표 하루 전날 회동해 막판 점검 절차를 밟는다. 11일 수정안 발표는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송석구 세종시민관합동위원회 민간위원장이 아니라 정 총리가 직접 할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행복도시 수정안은 원안의 10분의 1도 못 되는 실패작이며 졸작 중의 졸작”이라고 비난했다. 또 최종안이 나온 뒤 당 차원의 규탄대회를 열고 대국민 홍보전을 펴 나가기로 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세종시 수정안이 발표돼도 법률 개정안을 곧바로 국회에 넘기지는 않을 것”이라며 “여론 변화 추이를 살핀 뒤 법률안을 국회로 넘길 것”이라고 말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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