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샤넬이 사랑한 상하이…상하이가 열광한 샤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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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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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60년대 프랑스 파리 캄봉가의 가브리엘 샤넬 자택. 차분한 베이지 톤에 화려한 장식품들로 가득한 그녀의 아파트에서 샤넬과 그를 방문한 공작부인이 담소를 나눈다.

공작부인 : 중국풍 예술 작품이 정말 많군요.
샤넬 : 항상 중국 상하이 여행을 꿈꾸죠.

#2. 1960년대 중국. 샤넬이 인민복 차림의 젊은 남녀를 찾아간다.

샤넬 : 중국 젊은이들은 정말 아름답고 우아해요.
중국 여성 : (샤넬이 들고 있던 ‘2.55’ 백을 보며) 가방이 정말 예쁘네요.
샤넬 : 중국 퀼팅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죠. 퀼팅은 중국에서 먼저 시작됐어요.
중국 여성 : 그래요? 근데 유럽 여성들이 미니스커트를 입는다는 게 정말인가요?
샤넬 : (성난 목소리로) 그래요, 정말 흉측하죠. 절대 무릎을 보여선 안 되는데 말이죠.
중국 여성 : 전 청바지도 입고 싶어요.
샤넬 : (인상을 찌푸리며) 그것도 정말 싫어요.
중국 여성 : 당신 재킷이 정말 예쁘네요.
샤넬 : 그래요? 입어볼래요? (남자에게도) 당신도 한번 입어 봐요.

샤넬 재킷을 입고 좋아하는 젊은 남녀.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샤넬이 말한다. “이 세상 누구나 샤넬을 입을 수 있죠.”

○ 샤넬과 상하이의 인연

가브리엘 샤넬(애칭 코코 샤넬)이 이달 3일 은막 속에서 환생했다. 그녀가 그토록 꿈꿨던 중국 상하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파리-상하이, 환상’이라는 단편영화 속에서 말이다. 그녀는 상하이는 물론 중국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1971년 눈을 감았다.

코코 샤넬에 이어 샤넬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수석 디자이너 카를 라거펠트는 이날 패션쇼에 앞서 영화 한 편을 무대에 올렸다. 자신의 아파트 소파에서 잠든 코코 샤넬이 꿈속에서 중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상상 속의 이야기다. 1990년대 초부터 1960년대까지의 중국을 여행하며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소박한 방, 상하이 익스프레스 기차, 상하이의 카바레 등에서 겪은 경험을 몽환적으로 그려냈다. 곳곳에 숨겨진 샤넬의 철학과 유머 코드는 영화가 진행되는 20여 분 내내 사람들을 웃게 했다.

“라거펠트는 정말 천재예요. 대본은 물론 촬영까지 직접 했어요. 그는 사진 한 장도 본인이 직접 챙기죠. 영화에는 샤넬의 뮤즈(샤넬이 추구하는 여성상으로 거론되는 유명 인물)와 모델도 나왔지만 직원들도 단역으로 출연했죠. 등장인물이 나올 때마다 관객석에서 웃음보가 터진 것도 그 때문이에요.” 조성인 샤넬싱가포르 지사장은 일흔을 넘긴 라거펠트의 창작욕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제법 긴 영화인데 지루한 줄 몰랐네요. 코코 샤넬이 중국 청년들에게 샤넬 옷을 입히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샤넬의 철학을 보여주는 장면이거든요.” 김영은 샤넬코리아 상무는 “샤넬은 끊임없이 모더니즘을 추구해요. 언제 어디서나 빛날 수 있는 게 샤넬이죠”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그리고 영화는 샤넬과 상하이와의 인연을 짐작하게 했다. 생전의 코코 샤넬이 동경했던 상하이라는 도시에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중국 시장에 대한 샤넬의 애착을 보여준 것이다.


○ 황푸 강에서 막 오른 ‘공방 컬렉션’

영화에 이어 공개된 ‘파리-상하이 공방 컬렉션’도 영화만큼이나 많은 얘깃거리를 쏟아냈다. 샤넬은 이날 상하이의 중심에서 샤넬의 자존심이기도 한 ‘공방(工房) 컬렉션’을 선보였다.

샤넬은 공예 기술을 보존하고 작품에 적용하기 위해 깃털 공방, 자수 공방, 구두 공방, 모자 공방, 금속 공방, 꽃장식 공방, 벨트와 단추 공방 등을 운영하고 있다. “과거 귀족들을 위해 고급 공예품을 만들었던 공방이 프랑스에서도 사라지고 있어 샤넬이 공방 7곳을 후원하며 운영하고 있다”고 샤넬 측은 설명했다. 이 같은 공방에서 장인들이 손수 작업한 소재로 만들어져 ‘공방 컬렉션’이라고 불리는 패션쇼는 장인정신과 예술성을 강조하는 샤넬의 자부심의 표현이기도 하다.

샤넬은 매년 장인들의 손길을 거친 이 공방 컬렉션을 브랜드의 상징적인 도시에서 펼치는데, 8번째를 맞은 올해의 무대는 상하이가 됐다. ‘왜 상하이냐’는 질문에 라거펠트는 “매년 특별한 관계가 있는 지역에서 공방 컬렉션을 여는데, 상하이에 최근 최고급 샤넬 부티크가 들어섰다. 상하이는 샤넬이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게 해 줄 곳”이라고 답했다. 신흥부자들의 급증으로 성장 잠재력과 소비력이 무한한 중국 시장에 대한 기대를 드러낸 것이다.

라거펠트는 패션쇼에서도 모든 것을 진두지휘했다. 그는 무대를 상하이 황푸(黃浦) 강 위에 올렸다. 5600t의 무게를 수용하는 대형 유람선을 띄우고, 6m 높이의 구조물 위에 방수천을 덮어 지붕을 만들었다. 무대 배경은 상하이의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그대로 투영할 수 있도록 투명한 필름으로 처리했다. 이날의 쇼는 오후 8시부터 항해와 함께 닻을 올렸다.

쇼에서는 영화에서 소개된 라거펠트의 영감이 차례로 소개됐다. 모델들은 황푸 강 건너편 푸둥(浦東) 지역의 스카이라인을 배경으로 런웨이를 밟았다. 460여 m로 높게 치솟은 상하이의 랜드마크 둥팡밍주(東方明珠)의 조명이 무대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컬렉션은 인민복에서 모티브를 딴 디자인과 하이칼라의 슈트, 정교한 자수 등 중국적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액세서리도 화려한 앤티크 느낌이 강조됐다. 긴 이어링과 챙이 넓고 뾰족한 모자, 화려한 보석으로 장식된 뱅글(여성용 고리 장식),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부츠 등이 수제 공예품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뿜어냈다.

“옛 상하이의 감수성에 모던한 세련미를 더해 젊은층의 감성에 부응했다”는 게 이번 쇼에 대한 라거펠트의 설명이다.

갤러리같은 샤넬 매장, 상하이 상류층 취향에 ‘딱’

○ 사치와 화려함의 경계에 선 상하이 부티크

샤넬은 최근 중국에 6번째 부티크를 열었다. ‘세계에서 가장 호화로운 샤넬의 부티크.’ 상하이의 페닌슐라호텔 1층에 자리 잡은 부티크는 부연 설명이 붙지 않더라도 시선을 압도했다. 480m²(145평) 너비와 10여 m 높이의 공간, 골드와 레드가 뒤섞인 강렬한 인테리어는 최고급 럭셔리 브랜드 ‘샤넬’이라는 이름과 어우러져 극적인 화려함을 연출했다. 샤넬과 인연이 깊은 미국 뉴욕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피터 마리노의 작품이다.

“이번 매장에서 가장 독특한 부분은 입장하는 순간부터 샤넬의 거대한 갤러리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겁니다.” ‘거대한 출입구’라는 이름이 붙은 입구는 마리노의 설명처럼 전시관을 연상케 했다. “코코 샤넬의 파리 아파트 분위기를 고스란히 옮겼습니다.” 코코 샤넬은 생전에 예술품을 수집했고, 특히 주술적 의미가 담긴 장식에 심취했다고 한다. 그래서 두꺼비와 사자머리, 구슬, 새장 등 코코 샤넬의 애장품을 그대로 본뜬 장식으로 치장돼 있다. 또 시선을 잡는 작품은 소용돌이치는 듯한 모양의 ‘금 올가미(Gold Lasso)’이다. 코코 샤넬이 항상 두르던 목걸이에서 모티브를 따온 작품으로 금과 블랙의 무라노 유리 진주들이 회오리 치듯 천장까지 8m가량 감겨 올라간 작품이다. 홍콩의 홍보 담당자는 “금 올가미 작품은 홍콩 부티크에도 설치돼 있는데, 상하이 매장 것이 훨씬 크다”고 거들었다.

입구를 지나면 ‘울트라 럭스 갤러리’가 나온다. 화려한 매장 중에서도 ‘울트라’란 수식어가 붙은 데는 천장을 장식하고 있는 다이아몬드 형태의 수정 샹들리에가 한몫한 듯 보였다. 1m 높이의 샹들리에는 공방 장인의 손을 거친 예술품이다. 벽면도 금빛 금속 메시 소재로 휘황하다. 이 공간을 장식하고 있는 건 파리의 공방에서 장인들이 수작업으로 직접 만든 샤넬 핸드백과 액세서리들이다. 핸드백 색상도 빨강, 노랑, 파랑 등 선명하다.

이외에도 각 공간은 수작업으로 칠한 금빛 벽면과 베이지 맞춤 실크, 샤넬 고유의 트위드 원단을 연상하게 하는 울 카펫으로 우아하게 연출돼 있다. 샤넬 측은 “코코 샤넬을 대표하는 색상은 화이트와 블랙, 골드, 레드, 베이지 5가지 색이고, 금빛 장식품을 특히 좋아했다”고 설명했다.

곳곳에 코코 샤넬의 취향이 잔뜩 묻어 있는데 금동 토르소가 대표적이다. 코코 샤넬의 아파트를 장식했던 비너스 토르소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상하이 골드’란 이름의 금동 토르소에는 샤넬의 대표적인 꽃 라인 ‘카멜리아(동백꽃)’가 빽빽하게 수놓아져 샤넬의 여성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3000장의 금종이가 내부를 가득 채운 테이블도 금장식의 절정을 보여 준다. 샤넬은 중국 고객의 특징으로 ‘단기간에 부와 명예를 얻은 신흥 부자들’이라고 꼽고 있다. 사치와 화려함을 넘나드는 부티크는 중국 신흥부자들의 취향과 꼭 닮아 있었다.

글=상하이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디자인=공성태 기자 coonu@donga.com

▼ “中,우리의 넘버원 시장… 독창성이 샤넬의 철학” ▼

중국 상하이에서 샤넬의 공방 컬렉션이 열린 3일, 현장에서 빈센트 쇼 샤넬 아태지역 회장(51·사진)을 만났다. 1994년부터 7년간 한국 지사장을 지내고 2001년부터는 아태지역 부회장직을 맡는 등 아시아 시장에 밝은 최고경영자(CEO)이다. 그에게 이번 상하이 부티크와 컬렉션의 의미를 물어봤다.

―샤넬에 중국 시장은 얼마나 중요한가.

“유럽이나 미국 시장은 성숙 단계를 지났다. 하지만 중국은 성장 잠재력이 무한하다. 샤넬뿐만 아니라 모든 기업에 중국은 가장 중요한 시장이다. 한 컨설팅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럭셔리 브랜드들이 꼽은 ‘No. 1’ 시장이 중국이다. 이미 홍콩과 중국에 위치한 샤넬의 부티크는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가장 매출이 놓은 매장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럭셔리 브랜드 시장에도 많은 변화가 있다.

“올라가면 내려오고 내려오면 올라가는 일반적인 경제 흐름으로 본다. 한때 주춤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일시적 위기가 럭셔리 브랜드 시장에 타격을 주지는 않는다. 일본 시장을 포함해 특히 아시아 시장에서 성과가 좋다.”

―아시아 시장의 특성은….

“고객과 잠재 소비자가 젊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예전에 한국에서 지낼 때 전체 인구의 30%가 20, 30대 젊은층이란 점이 놀라웠다. 2세들이 부모 세대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성장해 샤넬의 고객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래서 샤넬의 향후 전략은….

“샤넬은 지속적으로 현대성을 추구한다. 고객에게 끊임없이 샤넬만의 유니크한 독창성을 제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독창성은 샤넬의 철학이기도 하다.”

―한국도 매력적인 시장인가.

“다른 아시아 지역과 마찬가지로 계속 성장하는 시장이다. 하지만 샤넬이 중국에서처럼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하려면 여러 요건이 갖춰져야 한다. 신세계, 롯데, 현대, 갤러리아 등 파트너 관계인 백화점과도 함께 성장해야 한다.”

―화장품 부문에서 롯데백화점과의 결별은 앞으로 어떻게 되나.

“파트너들이 럭셔리 브랜드에 대해 헛갈리는 경우가 있다. 대중을 따라가지 않고 독창적 세계를 이어가는 정신은 포기할 수 없다. 함께 발전하는 관계여야 샤넬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상하이=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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