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벌릴 곳은 남한뿐’ 판단한 듯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17일 02시 30분


■ 北 인도적지원 요청 왜?
수해 겹쳐 경제 악화되자
“임진강 유감” 성의 보인후
“도와달라” 정식으로 요청

“성과 갖고 오겠다”남북 적십자 실무접촉 우리 측 대표단이 16일 오전 북측과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비롯한 현안을 협의하기 위해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개성으로 가고 있다. 연합뉴스
“성과 갖고 오겠다”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 우리 측 대표단이 16일 오전 북측과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비롯한 현안을 협의하기 위해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개성으로 가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남북 회담을 통해 인도적 지원을 공식적으로 요청한 것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 관계의 변화를 보여준다. 북한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엔 공식 회의석상이 아니라 저녁 만찬장 등에서 비공식으로 쌀과 비료 등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북한이 이번에 공식 회담을 통해 남한에 손을 벌린 것은 무엇보다 경제 사정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남한의 대북 쌀 지원은 2007년을 마지막으로 중단됐다. 미국도 지난해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다가 북핵 협상이 교착되면서 중단한 상태다. 북한은 올해 4월 이후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가 강화된 데다 동·서해안 지역에 수해와 냉해가 겹쳐 농업 작황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북한 지도부는 현실적으로 손을 벌릴 곳은 남한뿐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 측면에서 보면 북한이 결국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호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해 출범 이후 인도적 지원에 ‘국제적 기준’을 적용하겠다고 거듭 천명해왔다. 인도적 지원을 △수혜국의 요청이 있고 △지원이 필요한 긴급한 사정이 있을 때 △취약계층에 혜택이 갈 수 있도록 분배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을 전제로 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 정권 때처럼 남한 정부가 알아서 쌀과 비료를 주지 않을 것이 분명해지자 정식으로 지원 요청을 한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은 지원 요청에 앞서 나름의 성의도 보였다. 북한은 9월 26일∼10월 1일 금강산에서 열린 추석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이번 상봉은 북에서 특별히 호의를 베푼 것이다. 이에 대해 남에서도 상응하는 호의를 표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운을 뗐다. 12일 열린 임진강 수해 방지를 위한 남북 당국 간 실무회담에서는 임진강 참사에 유감을 표명했다.

어쨌든 북한의 지원 요청으로 정부는 지난해 출범 이후 처음으로 직접적인 인도적 대북 지원의 계기를 마련했다. 일부 보수진영의 반대가 예상되지만 정부는 인도적 지원을 통해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확보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정부는 과거처럼 쌀을 30만∼40만 t씩 대규모로 주는 것은 인도적 지원의 범위를 벗어난다고 본다. 이에 따라 지원 규모는 지난해 제안했던 5만 t 이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인도적 지원이 필요할 정도로 북한의 사정이 긴급한지, 과거보다 분배의 투명성이 높아질 것인지 등 나머지 조건을 고려해 지원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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