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을종]나눔과 기부는 사회건강의 척도

  • 입력 2009년 10월 9일 02시 58분


세계적인 경제 위기 속에서 지금이야말로 사회에 환원할 최적기라며 기부금을 늘린 사람이 있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과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다. 기부하면 생각나는 인물이 록펠러, 카네기, 워런 버핏, 빌 게이츠, 조지 소로스 등 미국인이 다수를 차지하듯이 기부는 미국인에게 남다른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 미국 사회가 산업화를 거치면서 소수 기업가의 독점, 지나친 개인주의와 물질만능주의 사회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세계 최강대국으로 성장했던 이면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었다. 사회 지도층이 막대한 재산을 아낌없이 사회에 기부하고 자선활동에 나설 때 국민으로부터 진정한 존경과 명예를 얻는다. 계층갈등이 있을 때도 이를 해결할 ‘나눔’이라는 사회적 자산이 큰 힘을 발휘했다.

앨빈 토플러 등 미래학자가 2035년경 아시아는 전 세계 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한국 중국 일본 인도 등 아시아 국가가 세계 중심이 된다고 예측했다. 그러나 기부라는 측면에서 보면 좀 부족하다. 압축성장한 경제는 반드시 그에 따른 혼란과 무질서라는 성장통을 겪는다. 사회적 빈부격차는 나날이 커지고 빈곤층을 위한 사회복지 시스템은 여전히 취약한 상태다. 성장통을 해소하고 사회갈등을 바로잡는 요인이 바로 나눔의 힘이다.

기부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눈에 띄게 늘어났지만 동정적이고 일회성인 기부가 많은 편이고 사회지도층의 개인 고액 기부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산업화 1세대가 이룬 부를 다음 세대로 넘기는 과도기의 한국 사회에서 부를 세습할지, 사회화를 이룰지를 선택해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다.

조선시대 최고 부자로 불렸던 최 부잣집은 12대에 걸쳐 만석꾼을 지냈다. 최 부잣집이 주위의 칭송을 받으며 오랫동안 부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부자이면서도 나눔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어려운 사람이 손을 집어넣어 잡히는 만큼 쌀을 가져가도록 구멍을 뚫은 ‘구멍뒤주’는 지금도 유명한 일화이다. 제주도의 김만덕 씨는 큰 기근이 들자 전 재산을 털어 곡식을 사서 굶주린 백성에게 내놓았다. 몇백 년이 흐른 이야기지만 아직도 입으로 전해져 숭고한 나눔의 뜻을 기린다.

경제규모가 커지고 사회가 발전한 만큼 그에 걸맞은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필요한 시점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한국형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위해 2007년 12월부터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를 만들었다.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에 참여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할 개인 고액 기부자의 모임이다.

지난해 말 80대 재산가가 찾아왔다. 15세에 상경해서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하며 돈을 모았다. 지금도 검소하게 생활한다. 전단지를 오려서 메모지로 쓰고, 구두 뒤축에 고무를 덧대서 신고, 물건도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며 가장 싼 가격에 산다. 자손에게 나눔이 얼마나 소중하고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보여주고 싶다며 성금을 전달하는 자리에 두 아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그는 문근영 김장훈 홍명보 청룽(成龍) 등 유명인의 기부사실을 보도한 신문기사를 스크랩하며 기부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갖고 있었다. 돈을 모으기보다 쓰는 일이 더 중요하고 힘들다, 돈을 소중히 여기고 좋은 곳에 잘 써서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얘기였다.

‘아너 소사이어티’에는 해가 갈수록 더욱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있다. 사회의 건강 척도는 경제적인 규모뿐만 아니라 부를 어떻게 이어가고 분배하는지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떳떳한 부를 존경하는 사회,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사회에서 나오는 힘이 모두가 더불어 잘사는 행복공동체를 만든다.

박을종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