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포커스/로저 코언]이란核풀려면 체면 살려주라

  • 입력 2009년 10월 9일 02시 58분


프랑스와 독일은 유럽연합이라는 더 큰 공간에서 그들의 문제를 풀어보자는 현명한 생각을 하기 전까지 70여 년간 무려 세 번의 전쟁을 치렀다. 미국과 이란은 전쟁을 치르지는 않았지만 병적으로 상대를 불신하는 관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처방은 같을 수밖에 없다. 서로 사고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란이 은밀하게 두 번째 우라늄 농축시설을 지었다는 사실이 새로 드러났다고 해서 이란의 핵폭탄 제조능력이 갑자기 달라지지는 않는다. 우라늄은 아직 그 시설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핵탄두를 날려 보낼 수 있는 능력은 고사하고 무기 수준의 핵분열 물질 생산능력도 확보되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이란 핵 프로그램에 대한 심리학이다. 이미 깊었던 양측의 불신은 이제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이란의 나탄즈에 5만4000개의 원심분리기를 수용할 수 있는 우라늄 농축시설이 있지만 아직 설치된 것은 8000개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이란 당국은 원심분리기 3000개를 더 설치하기 위해 성스러운 고대 도시 쿰의 산자락을 파고 들어갔다.

이런 선택을 한 데는 이유가 많지 않다. 테헤란은 핵보유 시도가 가져올 부작용을 우려하며 한편으로는 주저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핵 능력이 없는 현실에 불안해하면서 군사적으로 핵 옵션을 갖기를 원한다. 쿰의 우라늄 농축시설은 이란의 이런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현재 이란에서 우라늄 농축 계획은 1950년대 석유사업 국유화에 비견될 만큼 이란의 독립을 상징하는 성스러운 지위를 획득했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이란에 대한 제재는 성공하기 어렵다. 이유는 크게 네 가지다. 첫째, 오랜 시간 각종 제재를 받아 온 이란은 제재에 익숙하다. 일정 비율의 부가세만 물면 필요한 물품을 구할 수 있는 확실한 샘이 두바이에 있다. 둘째, 러시아와 중국은 제재와 관련해 립서비스 이상은 하지 않을 것이다. 셋째, (이란은) 석유 매출이 줄어든다고 해서 성스러운 상징인 핵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넷째, 제재는 이란 정권의 발판인 ‘박해 콤플렉스’만 살찌울 뿐이다.

테헤란은 그동안 핵 프로그램과 관련해 줄곧 거짓말을 해왔다. 1990년대 초 이후 이스라엘은 몇 년 뒤엔 이란이 핵폭탄을 개발할 것이라는 전망을 거듭 밝혀왔다. 그러나 이란의 핵 개발은 미국 정보 당국의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미래의 일이다.

선택은 이란을 군사적으로 공격하는 것과 핵을 가진 이란을 허용하는 두 지점 사이에 있다. 여기서 ‘핵을 가진 이란’이란 뭘 의미할까. 핵무장한 이란인가, 아니면 국제원자력기구가 감시하는 우라늄 농축시설을 가진 이란인가. 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말한 ‘이란이 평화적인 핵에너지를 가질 권리’라는 측면에서 국제기구의 감시를 받는 우라늄 농축시설을 이란에 허용하는 것이 핵의 무기화를 막아내는 협약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란 정권은 취약하다. 이란 내에는 미국과의 협상을 통한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보는 중요 분파도 있다. 이란을 고립시키면 핵 협상은 실패한다. 함께하면 실패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란이 느끼는 굴욕의 뿌리는 미국 콤플렉스다. 이란의 핵 프로그램은 무엇보다 자신감의 회복을 위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핵 프로그램을 봉쇄하려면 그 콤플렉스를 제거해줘야 한다. 좌나 우 어느 한쪽이 아니라 그 중간을 선택하라.

넓게 생각해야 한다. 독일에 대한 일방적 강요를 위주로 한 1919년의 베르사유 조약식이 아니라 유럽의 대통합을 일궈낸 유럽연합을 머릿속에 그려야 한다.

로저 코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