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육정수]김준규 새 검찰총장의 길

  • 입력 2009년 8월 21일 20시 10분


공석이던 검찰총장 자리가 두 달 보름 만에 메워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사 중 사망과 임채진 검찰총장의 사퇴 이후 검찰이 겪은 지휘부 공백과 조직의 불안정은 검찰 60년 역사상 거의 전례가 없는 일이다. 그제 김준규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한 새 검찰체제가 출범했지만 검찰의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 그의 어깨는 역대 어느 총장보다 무겁다. 검찰조직의 안정과 개혁, 신뢰 회복이 그가 짊어진 시급한 과제다.

새 검찰체제 앞날 밝지만은 않아

김 총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총장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이 뭐냐는 질문에 “선진검찰을 만드는 것”이라고 답했다. 경직된 검찰문화와 수사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고 지연 학연 등으로 갈라진 조직을 하나로 통합하고 싶다는 설명도 붙였다. 그런가 하면 “한국 검찰의 훌륭한 모델을 아랍권 국가에 수출해보고 싶다”는 남다른 포부도 밝혔다. 주미대사관 법무협력관, 국제검사협회 아태(亞太)지역 부회장 등 국제 분야 경력이 우리 검찰을 ‘글로벌 검찰’로 키우는 데 기여하리라는 기대도 없지 않다.

그러나 화려한 말과 막연한 기대만으로 검찰총장의 성공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그는 취임사에서 ‘범죄에 대한 국가적 대응’을 강조했지만 법질서 유지와 비리척결이라는 검찰 본연의 사명을 감당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듯한 인상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인사청문회에서 밝혀진 위장전입과 세금 이중공제, 아파트 ‘다운 계약서’, 친인척 사건 담당검사에 대한 부탁전화 등은 ‘사소한 일’로 볼 수 없는 대목이다. 1700여 명의 후배 검사들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검찰총장의 성패(成敗)는 무엇보다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지키는 균형추와 방파제 역할을 해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 부분과 관련해 어느 의원이 인사청문회에서 “역대 총장 가운데 표상으로 삼을 만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그는 이명재 송광수 전 총장을 꼽았다.

송 전 총장은 노무현 정권 출범 직후 임명돼 임기 2년을 채웠다. 그는 대선자금 수사를 위한 내사(內査) 당시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두 차례, 친인척 수사와 관련해 부인 권양숙 여사로부터 한 차례 청와대에서 만나자는 전화를 받았다고 필자에게 털어놓았다. 노 전 대통령은 “대선자금 문제를 함께 얘기해보자”고 했고, 권 여사는 “억울한 게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국민이 알게 되면 검찰 수사를 믿겠느냐”며 완곡하게 거부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자신의 치적 중 하나로 ‘검찰 독립’을 내세운 것은 아이러니다.

역시 노 정권 시절 김종빈 전 총장은 동국대 강정구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사건을 불구속 기소하라는 당시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지휘에 직면했다. 김 총장은 천 장관의 지휘권 발동을 일단 받아들인 뒤 이에 항의해 곧바로 사퇴했다. 김 신임 총장이 이런 경우를 당한다면 어떤 처신을 할 것인가. 그는 인사청문회에서 “지휘에 따르지 않고 사직도 안 하겠다”고 말했다. 가상 문답으로 김 총장을 평가하기는 이르지만 이 발언에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검찰 독립은 총장 의지에 달려

검찰총장 임기 2년제는 검찰의 독립을 위한 제도로서, 정치권력에 의해 총장의 본분이 흔들리지 않게 하려는 배려다. 정상명 전 총장은 “검사 한 사람 한 사람의 신념과 뜻이 모아지면 총장이 임기와 독립을 지키지 않을 수 없다”며 검찰조직의 일체감을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과 사법시험 동기인 그는 세간의 상상과는 달리 “잘 알기 때문에 더 힘들었다. 대통령의 생각을 뻔히 알면서 중심을 잡고 평상심을 갖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절감했다”고 회고했다.

노 정권 때 각각 4개월, 6개월 만에 중도 하차한 김각영 김종빈, 그리고 임채진 전 총장의 사례는 임기제의 허망함을 보여준다. 이명박 대통령도 검찰 독립을 깨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검찰 독립은 총장 자신의 의지로 지켜야 한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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