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정재승 소설 ‘눈 먼 시계공’]<123>

  • 입력 2009년 6월 25일 13시 39분


[서로 다른 성명서]

'배틀원 2049'가 진행되면서 과격한 생태주의자들이 여러 차례 테러를 감행하고 성명서를 발표하자, 도시문명주의자들과 온건한 자연주의자들도 이에 대한 비판성명을 냈다. 과연 '배틀원 2049'는 인류의 행복과 복지에 기여하는 '기술진보의 장'인가, 상업주의에 물든 '폭력적 난투극'에 지나지 않는가. 지난 이틀 동안 시민들에게 잇달아 도착한 성명서에는 '배틀원 2049'에 대한 그들의 입장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로봇격투기 대회 '배틀원 2049'를 반대하는 우리의 입장

나날이 심각해지는 인류의 자연파괴와 도시문명에 반대하는 우리는 지난 2049년 6월 25일 서울 상암동에서 개막한 로봇격투기 대회 '배틀원 2049'를 바라보며, 심각한 우려와 통탄의 목소리를 쏟아내지 않을 수 없다.

인간들의 폭력적인 싸움을 그대로 연상시키는 로봇들의 무자비한 격투, 마치 자신이 싸우는 것처럼 격앙된 고성과 과격한 분노를 표출하는 관람객들, 그 모두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방송사와 다국적 기업들. 우리는 이런 '미친 난장판'이 인류에게 어떠한 이로움도 주지 않으며,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생명을 경시하고, 폭력을 정당화하게 만들지 않을까 심각히 걱정한다. 그리고 그것을 경쟁적 상업주의로 포장하는 인류의 도덕적 해이가 다음 세대로까지 이어질까 심히 우려된다.

아직도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버리지 못하고,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부정하는 어리석은 도시인들에게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우려의 목소리와 함께 '경고'를 보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문제를 깨닫거나 개선의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 모든 생명체의 삶은 '먹이사슬의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는 자연 공간'인 생태계 안에서 재정립해야 한다고 믿는 우리는 안타깝게도 이제 '경고'로도 지혜를 얻지 못하는 어리석인 사람들에게 최후의 메시지를 전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우리는 '그 동안 당신들이 벌인 일들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었는가'를 당신들이 좋아하는 방식인 '폭력과 테러'를 통해 그대로 되돌려 주려고 한다. 우리의 테러 대상은 로봇 격투기 대회를 관람하는 모든 관람객을 향할 것이다. 전세계로 전파되는 '배틀원 2049'가 중단될 때까지, 그리고 '서울특별시장의 사과'와 함께 다시는 이 땅에 기계문명의 꼭두각시들이 폭력적인 대리전을 치르지 않는 날이 올 때까지, 분연히 투쟁할 것이다.

2049년 7월 3일 자연과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들 일동

테러와 협박을 일삼는 '배틀원 2049' 반대자들을 위한 경고

지난 6월 25일, 오랫동안 준비한 세계적인 행사 '배틀원 2049'가 많은 시민들의 관심과 격려 속에 화려하게 개막됐다. 로봇 기술의 발전을 도모하고, 기계문명을 통해 인간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시작된 '배틀원 2049'의 개막으로 전세계의 눈이 서울 상암동으로 향했다. 이 중요한 행사를 위해 모든 시민의 단합된 애정과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한 이때, 과격한 생태주의자들이 일으킨 '일련의 테러'에 대하여 우리는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부엉이 빌딩과 로봇방송국에 폭탄을 터뜨렸고, 어린이와 노인을 포함해 수만 명의 관람객이 로봇격투기 대회를 즐기고 있는 경기장까지 폭파하겠다는 테러리스트들에게 엄중히 경고한다. 테러는 어떠한 목적으로도 용납될 수 없으며, 이런 방법을 통해서는 절대 당신들의 어리석은 목적을 이룰 수 없음을 일러둔다.

인간의 무한한 호기심과 지적 탐구를 통해 얻은 과학기술과 도시문명은 선택이 아니라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며, 인간의 자존심이다. 이제 우리는 이 과학기술을 무조건 거부하고 외면할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보다 편리하고 안락한 삶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한다.

'배틀원 2049'는 이런 노력의 일환이며, 우리는 '로봇격투'라는 흥미로운 형식을 통해 인류가 함께 이 문제에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그 한 예가 바로 '배틀원 2049' 개막 일정에 맞춰 열린 일련의 세계 학회들이다. 서울특별시에서 열린 '세계 로봇공학 심포지움', '로봇과 인간을 위한 포럼 2049', '다보스 동아시아 서밋: 로봇문명의 미래' 등은 로봇 격투기 대회에 담긴 과학기술자들의 뜻과 노력을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장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인류의 진보를 거부하고 잔인하고 무차별적이며 자기모순적인 방식인 테러를 통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과격한 생태주의자들에게 엄중한 경고를 보내며, 인류가 가진 모든 과학기술적 도구를 통해 그들의 테러를 막고, 관람객을 보호하며, '배틀원 2049'가 끝까지 무사히 치러질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테러를 일삼는 과격한 문명파괴주의자들을 지구 끝까지 쫓아가 전멸시킬 것임을 굳게 약속한다.

2049년 7월 4일 과학진보포럼

격투와 테러는 무엇이 다른가?

지난 2049년 6월 25일 개막된 로봇격투기 대회 '배틀원 2049' 기간 동안 벌어진 전통적 생태주의자들의 테러와 이에 대한 도시문명주의자 진영의 어리석인 대응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인간의 삶 또한 자연의 일부라고 믿으며, 자연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는 과격한 생태주의자들이 보이는 일련의 테러를 지지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우리는 '로봇격투기 대회'가 매우 잔인하며, 인간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로봇들에게 폭력을 가르칠 수 있으며, 청소년들에게 수많은 모방 행위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반대한다.

로봇공학을 포함한 과학기술에 지나치게 의존해서는 인류의 미래는 결코 밝을 수 없으며, 빠르고 편안하며 안락한 삶으로 이끄는 기계문명은 결코 인간적 가치를 높일 수 없다. 게으르고 병든 삶을 선사할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이라도 로봇격투기 대회 같은 저급한 형식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인류의 지적 탐구와 과학문명이 인류 복지에 진정 기여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생태주의자들이 벌이는 무차별적이며 무자비한 테러에는 분명 반대한다. 그들이 왜 이런 테러를 저지르게 됐는지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테러는 그것을 이루기 위한 방법이 아니다. 테러와 폭력은 과학기술을 등에 업은 도시문명주의자들의 방식이 아닌가. 인류의 목숨을 담보로 인류의 안녕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우리는 로봇격투기 주최 측과 테러를 일삼는 생태주의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첫째, 지금이라도 로봇격투기 대회를 즉각 중단하고, 과학기술을 이용해 상업적이고 폭력적이며 인류에게 유해한 행동을 앞으로는 절대 하지 않겠다는데 합의할 것.

둘째, 인간의 생명과 삶의 터전을 공격하는 테러는 절대 용납될 수 없으니 즉각 중단하고, 머리 숙여 반성하며 스스로 자수하여 죗값을 치를 것.

셋째, 앞으로 이런 불행한 사건들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자연주의자들과 생태주의자들, 환경주의자들, 도시문명주의자들, 과학기술진보주의자들, 시민과학연대 등 다양한 집단들이 협의체를 구성해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의 삶을 추구하기 위해 지적이며 평화적으로 노력할 것.

우리는 이번 사태를 통해 인류가 뼈아픈 교훈을 얻었기를 희망하며, 더 이상 우리의 메시지가 헛된 메아리가 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2049년 7월 5일 과학과 자연을 함께 생각하는 지식인 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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