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영균]지자체도 구조조정할 때

  • 입력 2009년 6월 11일 20시 04분


집 근처에 근사한 구립(區立) 문화예술회관이 생겼다. 문화강좌도 하고 운동시설도 있다는 말에 가보니 많은 주민이 배우고 익히느라 다들 열심이었다. 지하 운동시설은 만원인데 지상의 수백 석 공연장은 일정도 없이 텅 빈 날이 많다. 워낙 공연이 적고 올해는 경제위기로 그나마 취소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서울에는 이런 문화예술회관이나 구민회관이 31군데나 있다. 예술회관만 14개가 있는데 이 중 10곳이 2000년 이후에 지어진 것이다. 지금은 회관이 없는 구에서도 앞으로 하나씩 지을 계획이라고 한다.

구청마다 수백억짜리 ‘전시성’ 회관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이런 회관 하나 짓는데 수백억 원은 족히 든다. 2005년 광진구가 완공한 나루아트센터에는 410억 원의 예산이 들어갔다. 주민 세금을 이렇게 많이 들였지만 이용률은 낮다. 수영장이나 헬스 시설을 제외하고는 절반 가까이 놀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울의 경우 문예회관의 가동률은 65%, 구민회관은 평균 60% 가동되고 있다고 하나 볼 만한 공연 기준으로 보면 이보다 낮다. 각 구청이 경쟁적으로 짓다 보니 건물만 크게 만들고 운영비를 제대로 지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공연을 늘릴 수도 없다. 관객이 오지 않으면 재정자립도가 평균 50%에 불과한 구청이 내야 할 돈만 늘어날 뿐이다.

2007년 서울의 15개 구청이 문예회관이나 구민회관에 지원한 금액은 209억 원이나 됐다. 수백억 원을 들여 지은 문예회관을 운영하느라 매년 구청마다 평균 10여억 원을 세금에서 내주고 있는 것이다. 부두완 서울시 의원은 “전시성 문예회관을 건립하여 예산과 인력을 낭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구민을 위한 운영인지 잉여 공무원의 자리보전용인지 구별이 안 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시민을 위한 문화예술지원 사업을 일반 기업 경영과 같이 수익만으로 따지는 것은 무리한 점이 있다. 하지만 상업 문화시설을 경쟁 입찰에 부쳐 수익을 올리겠다고 해 상인과 이용자들의 반발을 사면서 잉여 공무원의 자리보전용이라는 소리를 듣는 문예회관을 구마다 세운다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국민 세금을 가볍게 여긴다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경제위기로 지방자치단체의 살림살이가 팍팍해지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침체로 취득세 등록세 비중이 높은 지방세수는 10% 이상 줄었다. 올해 지방세 징수액은 당초 예산 47조 원에 크게 미달해 실제로는 40조 원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일본은 지난 10여 년간 지자체 통합을 추진해 99년 3232개였던 기초자치단체가 내년에는 절반 가까운 1760개로 줄어든다. 기업으로 치면 엄청난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그것도 모자라 앞으로는 여러 지자체가 통폐합하지 않고도 공동기관과 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예컨대 구청 군청마다 수백억 원짜리 회관 짓지 말고 두세 개 지자체가 공동회관을 짓는다는 말이다.

지자체 절반으로 줄인 일본

일본의 지자체 통합은 지방 재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파산하는 지자체가 생기고 재정 적자를 메우려고 호텔 골프장 초등학교 심지어는 소방차까지 팔려고 내놓은 곳도 있다. 우리 지자체들은 마냥 재정 사정이 좋을까. 헤프게 쓰다 보면 훗날 수백억 원을 들인 문예회관을 헐값에 팔아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제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은 “국회에서 지자체 간 자율 통합을 결정하면 9곳을 대상으로 우선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에 비하면 한참 늦었지만 내년 지방선거가 다가오면 이마저도 어려워질지 모른다. 기업과 대학의 구조조정을 구경만 할 때가 아니다. 시청 구청 지자체도 스스로 구조조정을 서두를 때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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