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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6월 3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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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 퀭한 눈에 깡마른 열일곱 살 소녀는 달리고 또 달렸다. 육상 후진국의 국가대표. 예선만 통과해도 다행이려니 했는데 800m와 1500m, 3000m를 석권했다. 경기 후 “간식으로 라면을 즐겨 먹었다”고 말한 게 와전돼 ‘라면 소녀’로 불린 임춘애. 그에게 달리기는 어려운 가정 형편을 넘기 위한 희망이었다. 헝그리 정신으로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요즘 프로야구 히어로즈는 홍수환과 임춘애를 닮았다.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정신력과 헝그리 정신이 넘친다. 지난주에 6연승으로 지난해 창단 후 최다 연승. 시즌 초반 맥없이 9연패를 당하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김동수(41), 이숭용(38), 송지만(36) 등 노장들은 적시타를 날렸고 정수성(31), 황재균(22)은 기회 때마다 도루를 했다. 투수 이보근(23)은 3승, 이현승(26)과 장원삼(26), 김성현(24)은 1승씩을 거뒀다. 신구(新舊)의 조화였다.
조태룡 단장은 “한(恨)풀이의 결과”라고 말했다. 히어로즈의 전신 격인 현대는 한국시리즈를 4회나 우승한 명문 구단. 하지만 지난해 모기업의 경영난으로 공중분해됐고 창투사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가 인수했다. 선수들은 연봉이 반 토막 나는 아픔을 겪었다. 의욕을 잃은 팀은 지난 시즌을 7위로 마쳤다. 그러나 구단은 올 시즌 연봉을 대폭 올렸다. 사령탑으로 복귀한 김시진 감독은 맏형처럼 선수들을 다독였다. 선수단은 명문 구단의 자존심을 지키자고 의기투합했다.
히어로즈 구단의 경영 상황은 어렵다. 올 시즌의 30%가 지났지만 아직도 메인 스폰서를 발표하지 못했다. 하지만 조 단장은 “조만간 야구를 사랑하는 구원투수(메인 스폰서)를 공개하겠다”고 자신했다.
히어로즈는 나머지 7개 구단과 태생이 다르다. 다른 구단은 모기업의 지원을 받는다. 반면 히어로즈는 지원군이 없다.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 이 때문에 내년에는 수억 원 단위의 소액 스폰서 유치와 ‘히어로즈 치킨’ 같은 독자적인 프랜차이즈 상품 개발 등 수익 모델을 다각화할 예정이다.
1월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의 구단 가치를 13억 달러(약 1조6000억 원)로 평가했다. 포브스코리아가 지난해 10월에 발표한 8개 구단 가치에서 롯데가 1102억 원으로 1위였고 히어로즈는 최하위(366억 원)였다.
국내 프로야구단은 매년 수백억 원의 적자를 내고 있다. 방송중계권, 입장 수입만으로는 손익분기점을 맞추기에 역부족이다. 하지만 프로야구는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다. 매일 각종 매체에 노출되는 광고물인 만큼 500억∼1000억 원의 가치가 있다는 게 조 단장의 생각이다. “가족과 연인이 야구를 즐기고 기업들이 마케팅을 펼치는 ‘꿈의 구장’을 만들겠다”는 히어로즈의 실험에 눈길이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황태훈 스포츠레저부 차장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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