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다함께]“親韓派 퍼뜨린 게 바로 우리라우”

  • 입력 2009년 5월 23일 02시 59분


■ 1959년 연세대 한국어학당 창립 임호빈-홍경표 前교수

《22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교정에 곱게 화장한 두 할머니가 나타났다. 1959년 연세대 한국어학당의 창립 멤버로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어를 가르쳤던 임호빈(75), 홍경표 씨(74). 이날 한국어학당 설립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이들은 손을 맞잡고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던 추억에 빠져들었다.》

교재 직접 만들고 한국문화 알리는데도 열성
“외국인 한국어에 감탄… 우리 젊은이 반성해야”

연세대에 한국어학당이 생긴 것은 6·25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59년 4월. 교회 등에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대학에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기관이 설립된 것은 처음이었다.

교수였던 아버지 덕분에 영어를 일찍부터 접한 데다 교육학을 전공해 보육원을 찾아다니며 자주 아이들을 가르치던 홍 씨는 우연히 한국어학당의 제안을 받고 창립멤버로 참여했다. 연세대 출신의 임 씨도 거기서 만났다. 당시 한국어학당 교수는 이들을 포함해 모두 7명.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의 싹을 틔운다는 생각에 다들 어깨가 무거웠지만 그만큼 또 열심이었죠.”

이들은 음성학, 교수법 등을 연구하고 외국인 학생들과의 대화를 메모해 밤을 새워가며 교재를 만들고 수업계획을 세웠다. 더 나은 강의를 위해 서로의 강의를 지켜보며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이들의 열정적인 강의에 입소문이 나면서 외국인 선교사, 신부, 외교관 등 한국어학당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러나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을 뿌리내리는 일은 쉽지만은 않았다. 한국어로 가르쳐도 어려운 한국어 문법을 영어로 외국인들에게 이해시키려니 골치가 아팠다. 정자세로 수업을 받는 한국 학생들을 보다가 의자에 편하게 푹 퍼져 앉은 서양학생들의 수업 태도에 놀라기도 했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것 아니냐면서 우리를 경원시할 때는 참 속도 많이 상했죠. 그러나 단순히 한국어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한국문화를 알리고, 한국을 알릴 외교사절을 길러낸다는 자부심으로 버텼습니다.”

그렇게 30여 년, 그들을 거친 제자들은 세계로 나가 한국어와 한국문화의 사절단으로 활약하고 있다. 영국 셰필드대에 한국학연구소를 설립한 제임스 그레이슨도 그중 한 명.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영국의 한 방송에서 서울을 ‘세울’이라고 발음하자 직접 방송사에 전화를 걸어 발음을 교정해줬을 정도로 한국어 사랑이 각별하다. 그래서인지 그는 지금도 영국에서 재영한국학회장을 맡고 있다. 까만 사제복을 입고 열심히 수업을 들었던 아일랜드 출신의 케빈 오록 신부도 2년여간의 한국어학당을 거쳐 연세대 대학원에 진학한 뒤 본격적으로 한국문학을 공부해 외국인 최초의 국문학박사가 됐다.

홍 씨에겐 뜻하지 않은 곳에서 제자를 만나는 행운도 있었다. “제 아들이 2002년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을 갔는데 그곳의 한 교회에서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목사를 만났대요. 한국어를 어디서 배웠느냐고 물어보니까 그 목사가 ‘홍 선생님’이라고 했다고 하더군요. 밴쿠버에 갔을 때 한 번 만났는데 참 뿌듯했어요.”

1959년 4월 창립 당시 24명의 외국인 학생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한 한국어학당. 반세기가 지난 현재 128개국 7만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해마다 75개국 6600여 명의 학생이 수업을 듣고 있다.

이들은 한국어를 경시하는 세태에 대한 안타까움도 털어놨다.

“외국인들은 처음엔 한국어를 어려워하다가도 조금씩 배우다 보면 ‘정말 과학적이다’ ‘재미있다’고 감탄하는데 정작 우리 젊은이들은 한국어를 아끼지 않는 것 같아요.”(임 씨)

“길거리에 나가면 간판들이 너무 낯설어요. 노인네들은 봐도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국적불명의 언어가 너무 많죠. 한국어학당이 생긴 지 벌써 50년이 지났는데….”(홍 씨)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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