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형님보이’ MB는 언제 자립하나

  • 입력 2009년 5월 10일 20시 06분


‘마마보이’는 봤어도 ‘형님보이’는 처음 봤다. 남자 선배에게 물어보니, 아버지 같은 형 밑에서 자란 남자가 형님한테 꼼짝 못하는 건 한국 사회에서 남자로 사는 사람은 다 아는 일이란다. 그래도 엄마 치마폭에 매달린 남편과 사는 아내는 심각하게 이혼을 고민한다. 일국의 최고지도자가 되고도 아무데서나 자신을 ‘맹박이’라 칭하는 형님 앞에 할 말도 못하는 대통령을 보며 이제는 국민이 고민하고 있다.

누가 이 나라 대통령인가

돌이켜보면 한나라당 내 분란은 물론 국정소란이 일어난 이면엔 어김없이 이명박(MB) 대통령의 형 이상득(SD) 의원이 있었다.

4·29 재·보선 참패와 그래서 더 커진 박근혜 전 대표와의 갈등도 SD의 자식 같다는 정종복 전 의원이 경주에 공천되지 않았으면 안 터졌을 공산이 크다. 나눠먹기 공천은 계파정치의 핵심이고 대한민국 정당의 고질적 병폐이자 대의민주주의의 암(癌)이다. 경주시민들이 한 번 심판한 사람을 또 내는 일이 MB의 의지였다면 대통령은 국민보다 형님을 받든다는 의미고, 당심(黨心)이었다면 한나라당은 SD에 장악됐다는 뜻이다. 오죽하면 박 전 대표가 ‘우리 정치의 수치’라고 비수를 날렸겠나.

애초 18대 총선의 ‘개혁공천’이 빛바랜 것도 65세 이상 현역의원 배제 원칙을 SD가 깼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는 73세였다. SD 불출마와 국정관여 자제를 요구했던 55인 공천항명 파동 때도, “정권 초 100일간 청와대 일부 인사가 국정 아닌 전리품 챙기기에 골몰하면서 문제가 생겼다”며 일어난 정두언의 난(亂) 때도 대통령은 형님 손을 들어줬다.

SD는 억울할지 모른다. 말로는 늘 결백했고 물증도 없지만 국정에 그가 개입한 흔적은 넓고도 깊다. 박연차-천신일 고리 끝에 걸린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2008년 말 인사를 앞두고 포항의 SD 지인들과 괜히 만나 공을 들였을 리 없다. 공기업도 아닌 포스코 회장 선임에 당시 야인이었던 박영준 국무차장이 끼었다는 의혹도 SD의 왕팔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소리다.

더 큰 문제는 일각에서 국정농단이라고 개탄하는 이 중대 현안에 대해 당이 공개적으로 논(論)하고 대통령에게 간(諫)하는 일이 금기가 됐다는 데 있다. 대통령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제도적 ‘형님 관리’도 쉽지 않다. SD가 국회부의장 때 비서실장이었던 장다사로 씨가 현재 대통령 친인척을 감시하는 민정1비서관이고, SD가 기업에 있을 때 보좌하던 김주성 씨가 국가정보원 기조실장인 까닭이다.

결국 한 나라에 대통령 둘이 앉은 꼴이 된 원인은 대통령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어려서부터 자기보다 공부도 잘하고 잘생겨서 어머니 사랑을 독차지했던 SD에게 느낀 ‘형 콤플렉스’를 70세를 바라보는 지금껏 극복하지 못한 것 같다. 형보다 더 성공해서 “너까지 고등학교 보내기 어려우니 장사해 형 공부를 도우라”던 어머니에게 인정받겠다는 보상심리가 샐러리맨 신화를 일궜으나, 거기까지다.

죽을 각오로 親政하시라

대통령선거에서 자신보다 또 앞서 정치 입문한 SD의 도움을 받으면서 대통령은 도로 ‘형님보이’가 되고 말았다. 후보 때는 골치 아픈 일이 생기면 “이 부의장하고 상의하라”더니 대통령이 된 뒤 자신이 싫어하는 ‘여의도 정치’는 상왕(上王)에게 넘어갔다. SD가 친박계 의원들을 만나는 등 당내 화합에 기여했다지만 이 역시 대통령 자신이 했어야 할 일이고, 그랬다면 국정운영은 한결 순탄했을 터다. 잘사는 국민, 따뜻한 사회, 강한 나라를 지향하는 이 정부의 국정방향은 큰 틀에서 옳기에 꽉 막힌 현실이 더 안타깝다.

지금 한나라당을 하나로 만들자며 박 전 대표를 향한 구애가 다시 뜨겁다. 그러나 막후지존 SD가 무균무때의 표정으로 무대위에 앉아있는 한, 친박 세력만 끌어안는다고 상황이 풀리긴 어렵다. 어느 집단에나 행성이 태양 주위를 돌 듯 사람들은 실세에 몰리기 마련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별 볼일 없다던 형 노건평 씨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SD가 진정 사심 없이 동생 정부의 성공을 돕는다고 믿고 싶어도 이미 SD 때문에 나라가 흔들리고 대통령이 허깨비가 될 판이다.

‘권력의 법칙’을 쓴 로버트 그린은 “문제가 생기면 혼란의 출발점이 되는 강력한 인물을 찾아낸 뒤 그를 고립시키거나 추방해 평화를 되찾아야 한다”고 했다. 형님보다 국민이, 나라가 더 중요하다면 이제 대통령은 형님에게 더는 안 되겠다고 말해야 한다. 일주일 전 라디오연설에서 국민들한테 호소했듯이, 죽을 각오로 살아간다면 이겨내지 못할 것이 없다.

마침 18일이 성년의 날이다. 우리가 뽑은 대통령이 우리가 뽑지 않은 SD에게 꼼짝 못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국민 된 사람으로 자존심 상해 더는 못 봐주겠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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