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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5월 2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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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해마다 12만 명의 암 환자가 생기고 약 6만5000명이 암으로 사망한다. 이 중 간암은 폐암에 이어 암 사망률 2위인 심각한 질환이지만 4기가 될 때까지 아무런 증상이 없어 절반가량의 간암 환자가 진단을 받는 시기는 주로 심각하게 진행된 때이다. 중증 간암의 경우 평균 생존기간이 3∼6개월에 불과한데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의사로부터 이런 설명을 듣는 환자와 보호자는 깊은 절망감에 빠진다.
중증 간암 환자는 건강보험 급여가 제한적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치료제 선택 시 다른 질병의 환자에 비해 차별을 받는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에서도 소외된 면이 있다. 이 정책은 암 환자의 본인 부담 금액을 경감시키는 환영할 만한 제도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작 더 좋은 효과를 기대하고 적극적으로 처방해야 하는 새로운 항암제에 대해서는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중증 간암 환자처럼 새로운 항암제 약제비의 100%를 본인이 부담하는 환자가 보기에는 보장성이 강화되지 않고 오히려 축소시킨 면이 있다.
간암 환자는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를 위해 정부가 도입한 약제 포지티브 리스트 제도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이 제도는 가격 대비 효과가 우수한 약품에 보험급여를 허용하는 제도로서 건강보험 재정의 안정화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많다. 하지만 좋은 신약에 대한 접근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단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제도 시행 이후 신약의 보험급여 등재와 약가 결정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일 정도로 어렵다. 임상적 효과와 유용성이 확인된 새로운 항암제임에도 재정 소요가 크거나 비용 대비 효과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다.
대표적인 예가 먹는 표적치료제다. 효과를 인정받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항암요법 치료제로 최초로 허가했고 우리 식품의약품안전청도 허가했지만 보험재정 부담을 이유로 약가 전액을 환자가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먹는 간암 표적치료제는 전 세계 임상 연구를 통해 간암 환자의 생존 기간을 의미 있게 증가시키는 약으로 입증됐고 입원 기간을 줄일 수 있어 환자와 보험이 부담하는 입원비를 절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암 환자는 약제비 전액을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보험 수혜의 사각지대에 놓여 신약을 마음 놓고 써볼 수 없다.
고가의 신약 치료제에 대해 보험을 적용받는 폐암과 비교할 때도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 국내에서 간암 환자는 1년에 1만4000명이 새로 발생하는데 중증으로 진행된 5000∼6000여 명의 간암 환자만이 새로운 치료제의 투여 대상이 된다. 환자 수가 너무 많다는 논리로 치료 기회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새 치료제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덴마크 등 유럽은 물론이고 미국 캐나다 대부분의 주에서도 보험을 적용한다. 우리나라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포르투갈 체코 그리스 루마니아 같은 나라도 보험을 적용한다.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기대한다.
박중원 국립암센터 간암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