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노명선]대법원의 법안 제출, 3권분립 어긋난다

  • 입력 2009년 4월 20일 02시 57분


대법원은 3월 국회 법사위에서 “2010년 2월까지 항소법원 설치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리겠다. 대법원 규칙을 개정하여 대법원장 자문기구로 ‘심급구조 개편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공청회를 거쳐 2009년 8월까지 법률안을 마련하여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하겠다”고 공표했다. 내용대로라면 대법원이 헌법과 법률상 논쟁에 휘말릴 수 있다. 대법원이 헌법상 인정되지 않는 법률안제출권을 ‘법원 관련 법안에 대한 입법의견 제출’이라는 형식을 빌려서 우회적으로 행사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어서다.

우리 헌법 제52조는 ‘국회의원과 정부는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다’고 하여 국회의원과 정부가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법원도 항소법원 설치 여부에 대한 의견을 제출할 수는 있다. 법원 조직에 관한 결론을 내고 공청회를 거쳐 법률안을 제출하겠다는 발표는 법원이 법률안 제출권의 주체임을 공인한 것이거나 헌법이 규정한 삼권분립 원칙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든다. 입법안에 관한 공청회 개최 또한 행정절차법 제45조에 따라 행정청의 업무사항이기 때문이다.

사법권 독립은 헌법상 최고의 가치질서 중 하나로서 정부나 국회가 입법에 관한 권한을 행사할 때 우선적으로 존중해야 할 사항이다. 법원의 조직자율권이 사법권의 독립을 보장하기 위한 필요최소한의 수단이라는 점에도 이론의 여지가 없다. 여기서 법원의 조직자율권은 헌법과 법률에 의한 범위 안에서 행사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심급구조를 포함하는 법원의 조직은 절대적 독립을 보장하는 재판권 행사와는 달리 국가적 여건이라는 제약과 다른 국가기관이나 수요자인 시민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법원은 2004년 대법원 산하에 사법개혁위원회를 설치하여 ‘사법개혁을 위한 건의문’을 제출하고, 그 추진을 위해 대통령 자문기구인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를 주도적으로 이끌면서 형사소송법 개정 등 많은 성과를 거뒀다. 당시 사법개혁위원회나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구성 멤버를 법원 중심의 법조계 인사로 채우고, 무엇보다 대법원 산하에 설치하다보니 법원행정처 소속 법관들이 실무를 주도함으로써 법원의 개혁문제에 대해서만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했다는 기억이 남아 있다.

대법원에서 발표한 심급구조 관련 논의에 앞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중립적이고 민주적인 논의기구의 구성과 절차상의 합헌성을 찾는 일이다. 법원이 실질적인 입법제출권을 가진다면 선거 관련 사건과 정치자금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국회의원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법관이 입법자가 된다면 시민의 생명과 자유에 대한 자의적인 권한행사가 될 수 있음을 일찍부터 몽테스키외는 경고했다.

200여 년 전 미합중국 헌법을 제정하면서 제임스 매디슨을 비롯한 헌법 기초자들이 가장 고심했던 부분도 수적 우위만을 과신하는 ‘다수의 횡포’와 자신들의 이익만 교묘하게 추구하는 ‘소수의 횡포’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었다. 적어도 지금은 법원이 스스로를 개혁하겠다고 하면서 사법권 외에도 실질적인 입법권까지 행사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권력의 남용’ 문제를 되돌아볼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심급구조 개편 문제는 국민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및 검찰, 변호사의 직무와 관련되는 사법구조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사안이다. 그러므로 각계 의견을 담아낼 수 있는 공정한 논의기구를 통해 항소심, 상고심의 기능 및 재판의 독립을 담보할 법원 행정과 인사 분리 등 사법구조에 대한 논의를 선행한 후 결정할 문제라고 본다. 국민의 기본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심급구조 논의가 소수를 위한 입법의 편의성과 효율성만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

노명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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