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로 부자 된 조선족, 울상 된 신(新) 조선족

  • 입력 2009년 3월 10일 15시 13분


세련된 중국 대도시 풍경 조선족 젊은이들은 중국에 더 많은 기회가 있다고 판단해 부모세대와 같이 무조건 한국행을 원하지 않는다
세련된 중국 대도시 풍경 조선족 젊은이들은 중국에 더 많은 기회가 있다고 판단해 부모세대와 같이 무조건 한국행을 원하지 않는다
중국 광저우의 한 고층아파트 풍경 중국 부동산 가격은 하락하는 추세지만 위안화 급등으로 인해 오히려 큰 이익을 남겼다
중국 광저우의 한 고층아파트 풍경 중국 부동산 가격은 하락하는 추세지만 위안화 급등으로 인해 오히려 큰 이익을 남겼다
한때 한국의 이주노동자의 중심축을 담당했던 조선족들은 중국 경제의 부상과 함께 만만치 않은 경제세력으로 성장중이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한때 한국의 이주노동자의 중심축을 담당했던 조선족들은 중국 경제의 부상과 함께 만만치 않은 경제세력으로 성장중이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중국 랴오닝(遼寧省)성 선양(瀋陽)시에 사는 조선족 최명길 씨(58)는 지난해 말 그간 저축해 둔 적잖은 중국돈을 한국 돈으로 환전했다. 근래 1위안 당 140원 선을 유지하던 환율이 1위안에 200원 이상으로 폭등하자 발 빠르게 환투기에 나선 것.

그러나 최 씨는 최근 환율이 1위안 당 250원까지 치솟자 쓴 입맛을 다시는 중이다. 그렇지만 손해를 본 것만도 아니라고 자위한다. 그는 인근 대도시에 아파트를 3채 이상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 씨는 이 기회에 한 채를 팔아 한국 돈으로 바꿔놓아야 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그의 170m²(약 54평) 아파트 가격은 100만 위안 이상. 지난해 1억 4000만원이었다면 올해는 2억 5000만원을 호가하는 셈이다.

그간 한국인의 위세에 눌렸던 조선족들의 경제력이 위안화 급등으로 새삼 주목받고 있다.

환율에 남모를 웃음 짓는 조선족들

1990년대 중반 이후 일자리를 찾아 한국에 몰려온 1세대 조선족은 10년 이상 한국에서 번 돈을 꾸준하게 중국으로 송금해왔다. 2000년대 이후에는 이들의 자녀까지 한국에 건너왔고, 한국에서 배운 부동산 재테크로 중국에 만만치 않은 재산을 모아둔 상태다. 그런데 이번에 환율의 급격한 변동으로 한국인 못지않은 재력가로 거듭나고 있다.

경기도 안양시 원곡마을에 거주하는 조선족 박재삼 씨(63)의 가족은 대부분 한국에서 돈을 벌고 있다. 부인인 최모 씨(59)는 목동에서 입주 보모로 일하고 있고 그의 여동생과 딸도 한국에서 돈을 벌고 있다. 그의 아들은 일찍이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일본 회사에 취업했다.

박 씨의 가족이 매달 중국으로 송금하는 액수는 한국 돈으로 400만원이 넘는다. 이들이 고향인 하얼빈과 장춘, 베이징에 소유한 아파트는 무려 세 채. 10여 년간 한국에서 번 돈으로 구입한 재산인데, 이번에 환율 폭등으로 그의 재산은 3억 원대에서 6억원으로 급등했다.

현재 베이징의 한인 밀집 지역인 왕징(望京)의 중대형 아파트는 1평(3.3㎡)에 4만5000 위안(한화 약 1100만 원)을 호가한다. 애당초 한화 600만 원 선이었는데 환율의 마법으로 두 배 가까이 폭등 한 셈이다. 서울 강북 아파트 값에 근접한 셈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박씨 가족이 올라간 환율에 반색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 100만원을 환전했을 때 7000위안 가까이 받았지만 지금은 4000위안도 채 안된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환율로 뜸해진 한국인 관광객들

환율이 급등하자 중국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들의 발걸음은 뜸해졌다. 여행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중국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은 2007년 하반기와 비교해 절반 이상 하락했다. 중국전문 여행사들도 상당수가 경영난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베이징이나 상하이의 유흥가에 조선족 여성 대신 한국인 여성들까지 등장했다는 소문도 나돈다.

중국의 조선족들은 "예전엔 한국인들이 중국에 관광을 오면 '너무 싸다'는 말을 연발했는데, 지난해 하반기 이후부터 그런 소리가 쏙 들어갔다"며 "그럼에도 한국 경기가 나쁜 것은 조선족들에게도 좋은 소식이 아니므로 한국이 더 분발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환율로 울상 된 신(新) 조선족들

2000년대 중반 이후 중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신(新)조선족'은 중국에 거주하는 30만 한국인을 일컫는 말. 환율 변동 이후 강해진 위안화와 약해진 원화가 이들 신(新)조선족과 조선족의 관계를 재설정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와 주목된다.

무엇보다 중국에서 자생력을 갖추지 못하고 한국에서 송금해온 돈으로 사업하는 한국인들 상당수가 한국으로의 귀환을 압박받고 있다. 실제 높아진 위안화에 적응 못한 사업가들은 한국으로 철수한 상황. 한국인들이 돌아간 자리는 조선족들의 차지가 됐다. 한국인들이 운영하던 소규모 공장이나 식당 등을 인수하려면 함께 사업을 했던 조선족이 최적임자이기 때문이다.

실제 2005년 한국 기업이 6000여 개에 달했다는 산둥반도 칭다오(靑島) 인근에는 한국기업들이 절반 이하로 급감한 대신 조선족이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중소기업이 무려 2000개를 넘어섰다. 제조업의 주도권이 중국 사정을 잘 알면서도 재력을 갖춘 조선족에게 기울고 있다는 방증이다.

중국 대도시의 한국 음식점이나 찜질방, 유흥업소 또한 주인이 조선족으로 바뀐 상태. 이 같은 현상에 대해 한국인 상회 관계자들은 "앞으로는 한국인들이 조선족 사장 아래서 일하는 것이 당연해지는 날도 올 것"이라고 예측한다.

조선족은 한족(漢族)을 중심으로 55개의 소수민족이 어울려 살아가는 중국에서 한국이라는 특수한 배경으로 인해 빠르게 중산층 이상으로 뛰어올랐다. 한국인들은 그동안 '조선족'을 촌스럽게 여겨왔지만, 중국에서는 중국 국적을 갖고 있고 중국 문화를 이해하고 있으며 조선족 특유의 견고한 인적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어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선족과 재중 한국인은 동반자적인 관계이면서도 그간 문화, 경제적 차이 때문에 원만한 관계를 이루진 못했다. 연변의 한 조선족은 "한국인 여성과 조선족 남성 간의 결혼이 흔치 않은 것만 봐도 서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관계"라고 말했다.

국제학교 대신 조선족 학교에 보내는 한국인 늘어

최근 조선족, 신(新)조선족의 관계 역전을 앞으로 보다 평등한 관계에서 조선족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올 봄 중국 선양으로 파견 나가는 김 모 씨(43)는 초등학생인 두 아이들을 조선족 소학교에 입학시키기로 마음먹었다. 1차적인 이유는 비싼 환율 탓에 국제학교에 넣기가 부담스럽기 때문. 하지만 돈 문제보다는 상당수의 한국인들이 아이들을 조선족 학교에 입학시켜 성공했다는 얘기를 들은 뒤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김 씨는 "국제학교에 넣자니 경제적으로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한족 학교에 넣자니 아이들이 따라가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편견을 버리고 조선족 학교에 넣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말한다. 또 아이들이 조선족과 함께 공부하면서 친구로 지낸다면 중국에서 인맥을 형성할 수도 있을 거라는 고려도 작용했다.

그렇다고 해서 조선족들이 값싼 한국 돈을 활용해 한국으로 몰려오지도 않을 전망이다. 북방의 홍콩으로 불리는 다롄(大漣)에서 일하는 조선족 박명호 씨(24)는 "조선족들이 한국 문화를 즐기고 한국 경제의 부침에 좌우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럼에도 조선족 젊은이들 대부분은 기회가 더 많은 중국 땅에서 살아가겠다는데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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