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모드공유하기

[이 여자의 경쟁력]<24>아름다운 재단 전현경 사무국장

입력 2009-02-22 08:53업데이트 2009-09-22 21:39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국회에서 열린 사형제폐지국가 기념식에서 조성애수녀(사형수사목전담)가 사형수를 상징하는 비둘기를 날리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아름다운 재단 전현경 사무국장의 '자선도 마케팅'

"나눔은 내 미래를 위해 보험 드는 것과 같아"

"내일 굶주린다 해도, 겨울에 따뜻해지는 일은 꿈꾸는 일보다 중요하다."

아름다운 재단 전현경 사무국장(35)이 보낸 메일 말미에는 장정일의 시 '석유를 사러' 한 구절이 적혀 있었다. 마음을 살짝 흔들고 가는 이 글귀는 "자선을 받는 사람이 원하는 자선을 준다"는 그녀의 생각을 그대로 담고 있다.

전 사무국장은 2003년 8월 아름다운 재단에 입사, 배분사업팀장, 기업 사회공헌 컨설팅팀장을 거쳐 5년 반 만에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에 올랐다. 이주노동자 지원 사업, 지역 주민참여 예산 시범사업, 작은 도서관 지원사업, 저소득 모자가정 창업 지원(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 등 굵직굵직한 기획을 통해 사회복지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에서 처음 선보인 사업들이었지만 널리 대중화되면서 다른 복지재단과 많은 시민들의 동참을 이끌어 냈다.

전 사무국장은 이러한 성과에 대해 자선은 선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이를 실천하는 데는 '마케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기업의 마케팅이 고객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자선사업을 할 때도 자선을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여기에 맞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매일 '나눔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그녀의 나눔 철학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지혜로운 선(善)이야말로 진정한 선(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주희 동아닷컴 기자

● "나눔의 길에는 우연히 입문했죠."

요즘같이 불황이면 자선단체 역시 기부금 모금이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전 사무국장은 오히려 자선기관은 호황일 수 있다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경기 침체로 생활이 어려워지면 주변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서 쉽게 공감하게 돼요. 사람들이 기부하려는 준비 자세가 되어 있기 때문에 좋은 이슈를 만들어 내기만 하면 되죠."

그가 '아름다운 재단'에서 일하게 된 것은 실로 우연에 가까웠다. 어렴풋이 공동체에 기여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친구가 '아름다운 가게'에서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한 것이다. 그녀는 채용공고를 잘못 클릭해서 '아름다운 재단'에 지원하게 되었고 덜컥 합격을 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것이 아니라 복지나 공익사업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어요. 입사하자마자 기획실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날마다 좌충우돌이었죠."

그녀는 학부에서 경제학,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일을 하다보니 사회복지 비전문가라는 점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소년소녀가장을 돕는다고 하면 전국에 있는 6166명의 소년소녀 가장에게 현금 지원을 하면 된다. 그러나 조손가정, 실직가정 등 실제로 어른의 보살핌을 받지 못 하는 아이들로 개념을 확대하면 가족들이 모여 살 수 있는 공간이 가장 절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역공동체의 참여로 주거 빈곤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소년소녀가장 주거지원 시범사업'은 이러한 맥락에서 탄생했죠. 특정 문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잉태된 사회구조적 배경을 먼저 살펴보고 나서 사업 기획을 하는 것입니다."

● 대학생 시절 아르바이트 통해 '기부의 법칙' 터득

'아름다운 재단' 입사 전 그녀의 이력은 일반 대학생의 이력과는 매우 달랐다. 92학번이지만 대학원까지 어렵사리 마치고 나니 11년이 지난 2003년이었다. 학비, 생활비를 직접 마련하느라 항상 아르바이트를 했다. 비록 수입은 적지만 한 직장을 오래 다니는 안정된 삶을 살게 되리라고는 꿈도 못 꾸던, 하루하루가 불안한 시절이었다.

"의류회사 브랜드 런칭 쇼에서 베이비복스, Y2K 팬클럽 줄 세우기도 해 봤고, 인터넷 댓글 달기 알바, 카페 아르바이트 등 안 해 본 일이 없죠. 1998년 어느 날인가 지갑에 돈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집에 있는 화장품 미니어처, 엄마가 반쯤 쓴 립스틱 이런 중고 물건을 모아 갖고 나와 제가 다니던 이화여대 앞에 무작정 좌판을 열었어요. 신기하게도 사 가는 사람이 있어서 생활비를 좀 벌었죠."

이후 그녀가 활동하던 이화여대 학생회 여성위원회는 학생회관 앞에서 정기적으로 벼룩시장을 열어 각종 사업비를 마련했다. 기부금 모금이 엄숙한 행사가 아니라 재미난 게임이 될 수도 있으며, 선의에만 호소하는 것보다 선의를 쉽게 행동으로 옮기도록 동기를 제공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때 터득했다.

● 경영과 자선, 알고 보면 통한다.

그녀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자선 사업을 기획하고 기업의 후원을 얻어내는 것이다. 사실 기업의 목적인 이윤 추구와 자선단체의 목적인 나눔은 평행선을 긋는 가치다. 하지만 기부를 하는 기업의 니즈(needs)와 기부를 받는 사람의 니즈를 잘 이해하면 의외로 쉽게 접점을 찾을 수 있다.

이주 이주노동자 지원사업을 기획했던 2004년도 일이다. 2개월간 현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단체 사회복지사 10여명을 만나 인터뷰를 해 보니 이주노동자들은 기술 교육, 저축 등 고국에 돌아가 자립하기 위한 바탕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때까지는 이주노동자 지원사업이 불합리한 고용 조건 개선이나 위기 구제에만 쏠려 있었다.

전 국장의 아이디어로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한글 교육, 컴퓨터 교육을 시작했다. 최근엔 이주노동자들의 모국어로 된 책을 기부 받아 도서관을 만드는 '책 읽는 아시아' 사업도 하게 되었다.

또한 참여 기업의 이미지에 어떤 도움이 될지를 분석해서 제시한 결과 사업 진척이 상당히 빨랐다. 기업이 어떤 가치를 창출하고 싶어 하는지 미리 파악하고, 그 가치를 공유하는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주노동자 지원 사업은 함께 어울려 사는 다문화 사회, 즉 '샐러드팟' 개념을 도입한 기업 이미지 광고에 사용돼 보수적인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기도 했다. 처음 2000만원으로 시작한 이주노동자 지원 사업은 나중에 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 넘어가 2억 원짜리 사업으로 10배나 성장했다.

● "월급 주고 좋은 일 하라니 얼마나 좋아요?"

기획한 자선 사업이 나눔을 실현해 갈 때, 기부금의 수혜를 받던 학생이 기부금을 들고 찾아 올 때 느끼는 보람은 물론 남다르다. 그러나 자부심만으로 일하기에는 사회단체 활동가들의 상황은 팍팍하다. 그녀 역시, 한 달에 기본급 110만원에 식대 8만원을 받고 일한다.

"제가 결혼을 하지 않아서 별로 불편함을 느끼지 못 해요. 가족이 있으면 계속 일을 할 수 있을까 의문스럽기도 해요. 일생을 공익 활동에 헌신한 분들을 보면 결국 종교인들인데 가족을 돌보며 사회에 헌신하기 힘들다는 반증일 거예요."

그녀는 돈 없이 사는 법에 익숙하다고 했다. 대학 시절 여성운동을 하던 때에는 예산도 없고 인맥도 없고 매뉴얼도 없었다. 그저 옳다고 믿는 가치를 공유하는 친구들과 캠페인을 열고 무작정 세상을 향해 '연대'를 외쳤다.

"평소 사익보다 공익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안정된 생활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사업 예산도 있고, 컴퓨터도 있고, 월급도 주면서 좋은 일을 하라고 하잖아요. 지금까지는 만족스럽게 지냅니다."

● "나눔은 보험 드는 것과 같아"

전 사무국장은 나눔의 의지는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이 많다며 일단 작은 일부터 실행에 옮겨 보라고 권유했다. 아름다운 재단(www.beautifulfund.org)이나 네이버 해피빈에 들어가 3~4군데 단체를 비교한 뒤 어디에 기부할지 결정할 수 있다. 아마도 전화기를 드는 순간이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될 지도 모른다고.

"2004년 3월 크게 아파서 수술을 받은 적이 있어요. 급한 수술이었는데 대기자가 한참 밀려 있었죠.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아름다운 재단'에서 일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스케줄을 쪼개 다음 날 수술을 해 주셨어요. 의사 선생님도 기부에 관심이 많으시다며 건강하게 활동하라고 격려하셨죠. 그 외에도 가족, 친구, 동료들이 힘이 되어 주었고 내가 얼마나 따뜻한 공동체 안에서 살고 있는지 새삼 느꼈어요."

그녀는 나눔이 그러한 사회안전망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믿는다. 가난해도, 장애가 있어도, 공부를 못 했어도 누구나 그런 공동체의 지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기부는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서로가 서로에게 보험을 드는 것과 같다.

"내가 힘들 때 누군가 나를 도와 줄 것이라는 기대를 확인해 가는 과정이죠. 나눔의 과정은 안전하고 따뜻한 공동체를 짓는 일입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많이 본 뉴스
최신기사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