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정호]극한투쟁, 모두 망한다

  • 입력 2009년 2월 14일 02시 58분


언제부턴가 극단적 투쟁을 동원해서라도 요구만 관철하면 된다는 생각이 깊이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작게는 남의 건물 앞에서 투쟁가를 크게 틀어놓고 농성을 벌이는 일에서부터, 이런저런 명분의 파업, 폭력을 동원한 시위에 이르기까지 폭도 아주 넓다. 최근 동아일보가 보도한 타워크레인 노조의 협박성 취업 시위 사태나 재개발 이익 배분을 둘러싸고 일어난 용산 참사 역시 극단적이었다.

이런 방법의 특징은 일상생활을 마비시키고 곤혹스럽게 만듦으로써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그 수단이 남에게 고통을 주기 때문에 불법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합법의 범주에 속하는 것들도 불법과의 아주 미묘한 경계선에 서 있을 때가 많다.

대부분의 나라가 그런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이유는 사회 전체에 해로운 영향을 끼쳐서이다. 타인을 괴롭혀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사회는 제대로 작동할 수가 없다. 그런 일이 백주에 벌어지는데도 법은 무력하다. 경찰도 속수무책으로 눈을 감는다. 생존권이라는 이름이 붙고 가담자가 많아지기라도 하면 방법이 아무리 불법이더라도 치외법권이 되어 버린다.

극단적 투쟁이 반복되는 이유는 그것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들은 귀찮은 일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요구를 들어주어야만 하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제법 먹고살 만한 사람마저 소리 질러서 이익을 취하는 일이 잦아졌다. 건축 공사장 옆의 아파트마다 극단적 표현의 현수막을 내건 모습이 그렇다. 대화나 소송보다는 망신을 주는 편이 더 나은 방법이 되어 버렸다. 하긴 대한민국 최상류층인 국회의원마저 국회를 마비시켜서 요구를 관철하려는 판에 아파트에 내걸린 현수막 정도는 애교 같아 보인다.

이 같은 우리의 행태는 결국 사회 전체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직장과 업무가 마비되면 생산성은 낮아지고 원가는 올라가기 마련. 일자리의 축소와 물가 상승이 잇따른다. 경제가 어려워졌을 때 더 큰 피해를 보는 것은 덜 가진 자들이다.

그래야 하는 사정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벼랑 끝에 몰렸을 때 앞뒤 안 가리고 살길을 찾으려는 노력을 누군들 마다하겠는가.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동이 합쳐지면 결국 경제는 어려워지고 피해는 서민에게 더 크게 미친다. 게다가 이제 여론도 극단적 투쟁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다. 지하철 파업을 대하는 여론의 냉담한 태도를 보라. 투쟁보다는 대화로, 또 기왕에 투쟁을 할 것이면 수단이 합법적이어야 여론의 지지도 얻어낼 수 있다.

이제 생존권이라는 이름으로 극단적 투쟁이 정당화돼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은 생존권을 내세워 싸워야 할 정도는 넘어섰다. 글자 그대로의 생존권은 이미 기초생활수급 제도로 보장되고 있다. 금액이 충분하지는 않지만 국회의원에게 탄원을 해서 법을 바꾸고 예산을 늘리는 방법으로 대처해야 한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더라도 해결책은 합법의 테두리 내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 민주 시민의 태도다.

억울한 일이 있으면 탄원을 하고 그래도 안 되면 법원으로 가자. 만약 법이 잘못되었다면 국회의원을 설득해야 하며 그래도 안 고쳐지면 헌법재판을 청구하는 것이 순리다. 법보다 주먹과 떼쓰기를 선택하는 자세는 대한민국을 무질서가 판치던 50년 전으로 되돌리려는 일과 다름없다. 내가 만나 본 대부분의 법률가는 사회적 약자의 보호를 가장 큰 과업으로 여기고 있다. 그들을 한번 믿어 보자. 물론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불완전한 인간이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이 선진화되려면 그들을 믿고 법의 지배를 받아들여야 한다.

김정호 자유기업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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