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부, 합법적 평화적 주장에 더 귀 기울여야 한다

  • 입력 2009년 2월 13일 02시 59분


정부가 재개발사업 조합원들에게 분양하고 남은 상가를 세입자들에게 우선 분양하는 등의 재개발사업 개선방안을 내놓은 것은 용산 참사가 발생한 지 20일이 지난 뒤였다. 전형적인 뒷북 행정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평소 재개발 관련 문제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다면 철거민들이 극한투쟁까지 벌였을지 의문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평소 합법적 평화적으로 제기되는 각종 요구와 불만에 대해 정부와 여야 정당이 선제적 대응을 못함으로써 갈등을 키우는 일이 적지 않다. 올해부터 본격화할 서울의 뉴타운 사업도 마찬가지다. 26개 지구에 뉴타운을 조성하기 위해 2011년까지 12만 채 이상의 주택이 철거될 예정이지만 건물주와 세입자들 사이의 분쟁을 사전에 조정할 수 있는 방식을 찾지 못하면 제2, 제3의 용산 참사가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7월부터 대량해고가 불 보듯 뻔한 비정규직 문제도 당장 대안이 필요하다. 수도권 규제완화와 지방경제 활성화 방안을 둘러싼 갈등도 거세지고 있다. 오죽하면 10일 경기지역 상공인간담회에서 중소기업인들이 규제조항을 내세워 투자도 공장 증설도 막고 있는 공무원을 향해 ‘1mm 앞도 못 보는 사람들’이라며 절망감을 토로했겠는가.

그런데도 갈등 해소의 법적 제도적 해법을 마련해야 할 국회는 사실상 마비 상태에 있다. 2월 임시국회가 개회 중이지만 열흘이 넘도록 여야 간 ‘합의’ 또는 ‘협의’ 처리하기로 했던 27개 핵심법안 가운데 단 1건도 상임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시너통과 쇠파이프를 든 불법폭력시위대가 또 나타나 목숨을 담보로 ‘망루 농성’을 벌여야 정부도 국회도 움직일 것인가.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해야 대책이 나오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면 누가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겠는가. 갈수록 극렬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려는 유혹에 빠지게 될 것이다.

171석의 거대 여당은 게으르고 무기력하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같은 야당은 사사건건 ‘결사반대’만 외치며 국회를 마비시키고 국정의 발목을 잡는다. 이러니 경제 사회적 갈등의 합법적 평화적 해결의 길을 찾기가 더 어렵다. 민주당은 불법폭력세력에 동조해 갈등을 증폭시키기까지 한다. 언론과 각계 전문가 집단도 사회적 갈등 소지가 큰 사안을 미리 감지하고 해소하려는 노력이 부족했음을 자성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사회나 다수의 선량한 국민을 선동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불순세력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낮은 자세로 국민의 불만과 갈등을 미리 살펴 대책을 찾아내야 한다. 특히 정부와 정치권이 평소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해법을 찾는 성의를 보여야 불법과 폭력을 예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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