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인터뷰]박근령 “이젠 지만이가 나서서 오해 풀어줬으면”

  • 입력 2009년 1월 23일 11시 11분


육영재단 전임 이사장 박근령 씨. 동아일보자료사진
육영재단 전임 이사장 박근령 씨. 동아일보자료사진
육영재단 전임 이사장 박근령 씨. 동아일보자료사진
육영재단 전임 이사장 박근령 씨. 동아일보자료사진
“동생(박지만 EG그룹 회장)이 주도한 일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동생 주변인물들이 잘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제는 동생이 나서서 오해를 풀어주었으면 합니다.”

자산이 수천억원 대에 이르는 육영재단을 둘러싸고 새해 벽두부터 험한 모습이 연출됐다. 재단을 설립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정신은 어디가 버리고 관계자들이 멱살잡고 기물을 때려 부수며 싸웠다.

육영재단 분쟁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자녀인 박근령, 박지만 남매가 관련돼 있다. 지난 4일 육영재단 폭력 사태가 일어난 뒤 처음으로 박근령 씨가 동아닷컴을 통해 입을 열었다.

서울 광진구 능동 육영재단 어린이회관을 찾은 21일 건물 입구에는 ‘설립자 유지를 계승하여 육영재단 지켜내자’, ‘신성한 교육 현장에 용역깡패 웬 말이냐’ 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건물 내 사무실 문짝에는 쇠 지렛대(일명 ‘빠루’)와 망치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그러나 임시 이사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는 식의 소문과는 달리 출입은 매우 자유로웠다. 직원들도 조용히 근무를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여성 운전자가 모는 검정색 승용차가 들어왔다. 바로 전임 이사장인 박근령 씨였다.

박근령 씨는 예상보다 밝은 모습이었다. 지방에서 온 손님들을 맞으러 왔다고 했다. 그 손님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교사 시절 제자들이라고 했다.

현재 박근령 씨는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상실한 상태다. 서울동부지법은 지난해 11월 13일 육영재단 임시이사 9명을 선임했다. 지난 90년 취임한 근령 씨는 2008년 5월 대법원 최종심에서 이사장직을 상실했다. 성동교육청의 허락을 받지 않고 공익법인이 예식장 등 임대수익 사업을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임시 이사장은 DJ정부 시절 교육부 차관을 지낸 이원우 안양대 석좌교수가 맡았다.

법원이 선임한 임시 이사 9명이 모두 동생 박지만 씨가 추천한 인사와 일치한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재단 직원들이 크게 반발했다고 박근령 씨는 설명했다.

박근령 씨는 임시 이사들에게 큰 방을 내어주고 작은 방에서 ‘불안한 동거’를 하고 있다. 소송 준비, 업무 인수인계 문제로 아예 사무실에 발을 끊을 수도 없다고 한다.

박씨는 우선 법원의 판결에 맞서 싸우겠다고 입을 열었다. 박씨는 현재 법원에 임시 이사 업무 집행 정지 가처분 신청을 해 놓은 상태이다. 또한 대법원 판결에 대해 심리 미진으로 재심 보충 신청을 할 계획이다.

“육영재단은 국고 보조 없이 운영되는 공익법인입니다. 공익법인에는 임시 이사들을 파견할 수 없습니다. 판사들이 공익법인과 비영리단체를 착각해서 임시 이사를 파견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성동교육청은 2001년 같은 이유로 이사장 승인취소를 했고 박씨는 소송을 벌여 2004년 11월 승소했다. 예식장 등이 주말에만 열리는 등 공익사업의 본질에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성동교육청은 패소 후 1달 만인 2004년 12월 다시 같은 이유로 이사 전원에 대해 이사취임 승인을 취소한 것이다.

같은 건으로 재판에서 한번은 이기고 한번은 지다 보니 박씨로선 억울한 측면이 강한 듯 했다. 게다가 주무 관청이 한 곳인 비영리 법인과는 달리 육영재단과 같은 공익법인은 주무 관청이 여러 군데이기 때문에 딱히 성동교육청이 감독기관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는 주장이다.

“공익법인법 소송은 워낙 없는 일이라서 재판부에서 잘못 판단하신 것 같습니다. 거기다가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받은 조항으로 또 제 목을 쳤습니다. 누가 이사장이 된다고 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판례를 뒤집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2만8000개 국내 공익법인들을 위한 싸움입니다.”

박씨는 육영재단의 경영 실태에 대해서도 밝혔다. 박씨에 따르면 육영재단은 지난해 흑자로 돌아섰다. 현재 임대 보증금으로 70-80억 정도의 부채가 있다고 한다. 동생인 박지만 씨가 임시 이사를 추천할 수 있는 것은 3억 4200만원의 채권자 자격으로 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근령 씨는 현재 육영재단의 자산규모는 수천억원대에 이르며, 이 중 몇 억원의 채권자 자격으로 임시이사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는 “우리 자산이 수천억입니다. 19년 전 제가 육영재단 부임할 당시 주간지들이 ‘2000억대 재산 싸움’이라는 선정적 제목을 달았습니다. 그 때도 2000억인데 지금은 얼마나 늘었을 까요?”라고 반문했다. 인근 부동산에서는 육영재단의 부지 4만평(13만2000㎡) 등을 포함한 평가액이 3조원 대라고 추정하기도 했다.

세간에는 박근령 씨와 동생 지만 씨가 육영재단을 놓고 운영권 다툼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년 전 언니인 박근혜 전 대표가 물러남에 따라 육영재단을 이끌게 된 근령 씨가 이번에는 동생 지만 씨에게 밀려난다는 식이다.

이런 가운데 2007년 11월 28일 근령 씨가 괴한 30명과 한센인 40명에게 봉변을 당했다. 당시 사건에 관여했던 친척 박 모 씨와 지만 씨의 비서실장 정 모 씨, 육영재단 운영실장 오 모 씨 등 10 여명은 업무 방해 등의 혐의로 현재 불구속 기소된 상태다.

박근령씨에게 봉변을 가했던 이들 중 일부는 지난해 연말에는 입장을 바꾸어 박지만 씨의 비서실장 정모씨와 함께 육영재단을 강탈하려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들은 또 박지만씨와 성동교육청이 얽혀 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육영재단 관계자들 중 일부는 이처럼 이해관계에 따라 박근령씨와 박지만씨 측을 오가며 입장과 태도를 바꾸며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박근령 씨는 동생과 육영재단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못 박았다. 정 모 실장 등 동생 주변 인사들이 문제라는 것인데 이들이 동생에게 거짓 정보를 흘린 것 같다고 말했다. 1만3200㎡에 달하는 서편 운동장에 주상복합이 들어설 것이라는 소문 등이 그것이다. 재단 홍보실장은 “벌써 서편 운동장 1만3200㎡에 대해 실측이 들어갔다”며 “경비실에서 개발업자들의 방문이 수차례 있었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말했다.

“저는 동생이 이 일을 앞장서 주도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2007년 사태 이후 동생이 재단에 전화를 해 ‘누님이 많이 다치셨느냐, 병원에 가야 하는 게 아니냐. 걱정된다. 누님의 목소리라도 듣고 싶다’고 했습니다. 임시 이사 선임을 한다는 정보가 있어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공익법인에는 임시 이사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했고 동생도 ‘아 그래요?’라며 ‘알겠다’고 했어요.”

한편 박근령씨의 언니인 박근혜 전 대표는 사태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박근령 씨의 결혼식에 지만 씨 내외와 박 전 대표 모두 참석하지 않았다.

박근령씨는 “언니가 원래 사사로운 일에 참견하지 않는 분이시다 보니 공개적으로 말씀을 잘 하시지 않으세요. 다만 억울한 부분이 있는 건 아시죠. 제가 자료를 드리고 설명하면 ‘어머 그러니’라고 하세요. 올케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오늘(21일) 백화점에서 올케가 집으로 구정 선물을 보냈다고 전화가 왔어요. 잘 받았다고 인사하는 김에 올케에게 소송과 관련해 이런 저런 얘기를 할 생각입니다”라고 말했다.

끝으로 박근령 씨는 시중에 판매된 ‘일송정 푸른 솔에 선구자는 없었다’라는 책이 허위 사실로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아버지가 국내에서 교편을 잡던 시절 만주 간도에서 독립군을 잡으러 다녔다니 아버지가 무슨 축지법을 쓰시는 것도 아니고 너무 악의적입니다. 영화 ‘그때 그 사람’ 소송은 동생이 했으니, 이 번엔 제가 하려고요. 옛날 아버지 제자들도 찾고 할 일이 많은 데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편 동아닷컴은 반론을 듣기 위해 박지만 씨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고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여 비서를 통해 메모를 남겼지만 끝내 그를 만날 수는 없었다. 대신 연결된 정모 비서실장은 “재단의 일은 이원우 이사장에게 물어보라. 나는 재단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원우 임시 이사장은 “대화로 잘 풀어 가고 있다”며 “자꾸 언론이 남매 싸움으로 몰고 가는데 이는 온당하지 않다. 재단이 육영수 여사가 바라던 기관으로 거듭 나도록 도와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박지만 씨와의 친분과 관련해 “잘 모른다”고 부정했다. 하지만 정 비서실장에 대해선 “본 적이 있다”며 “개입하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자가 ‘누구에게 개입하지 말라고 했는가’라고 재차 묻자, “내가 말할 사안은 아닌 것 같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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