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유엔아동권리위원회 이양희 위원장

  • 입력 2008년 11월 18일 02시 59분


17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캠퍼스에서 만난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이양희(52·여) 위원장은 “이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낼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지난해 5월부터 유엔아동권리위원장으로 스위스 제네바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세형  기자
17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캠퍼스에서 만난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이양희(52·여) 위원장은 “이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낼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지난해 5월부터 유엔아동권리위원장으로 스위스 제네바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세형 기자
“한국, 北 아동인권에 목소리 적극 내야할 때”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이제 목소리를 낼 때가 됐습니다. 물론 전체적인 인권 문제를 거론하는 게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가치와 기준이 적용되는 아동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이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난해 5월부터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위원장으로 스위스 제네바에서 활동 중인 이양희(52·여) 성균관대 법대 교수.

그는 17일 성균관대 호암관의 연구실에서 본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1년 반 동안 인권 관련 국제기구의 대표로 활동하다 보니 인권 문제와 관련해선 한국 정부의 인식이나 관심이 아직 글로벌 스탠더드에 미치지 못한다는 게 많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올해 안식년을 맞아 제네바에서 거주 중인 이 위원장은 대학원생 제자들의 학위 논문을 지도해 주기 위해 잠시 한국을 찾았다. 일시 귀국 전인 10월 중순에는 미국 뉴욕에 있는 유엔본부에서 반기문 사무총장을 만나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무엇보다 북한의 인권 문제와 관련해 한국 정부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나라도 아닌 한국이 북한 인권, 그중에서도 18세 미만 아동들의 인권과 관련해 정부 차원에서 아무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 예로 그는 얼마 전 한국 정부 관계자들과 유엔아동권리위원회 관계자들이 가진 회의에서 벌어진 논쟁을 소개했다.

“위원회 관계자들은 우리 측이 올해 2월 서해에서 표류하다 구조된 북한의 청소년 포함 일가족을 ‘귀순 의사가 없다’며 북한으로 송환한 건 북한 청소년들이 돌아갔을 때 무력 분쟁의 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조치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자 우리 정부 관계자들은 ‘한국 헌법상 북한도 한국 영토이고 북한 주민도 한국 국민이라서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그는 “이런 답변이 나오자 위원회 관계자들은 모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며 “아프리카 출신의 한 위원회 관계자는 ‘그럼 북한에서 여기 있는 이양희 위원장을 보내달라고 하면 보내줘도 괜찮다는 논리냐’라며 반박했다”고 전했다.

이 위원장에 따르면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핵심 이슈는 아동들을 무력 분쟁 도구와 성노예로 이용하는 것.

특히 북한은 유엔아동권리위원회를 포함한 주요 국제기구 사이에서 아동들을 무력 분쟁의 도구로 이용할 가능성이 높은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북한 아동들은 어린 시절부터 학교에서 철저한 군사 교육을 받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북한 아동 인권에 대한 인식은 너무 안이하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회의가 끝난 뒤 위원회 관계자들이 사석에서 ‘유엔 사무총장까지 배출한 나라가 인권 문제에 너무 관심 없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했다”고 덧붙였다.

북한의 아동 인권뿐 아니라 한국의 아동 인권 정책과 국제회의 참가 태도에 대해서도 문제점을 지적했다. 세계 13위 경제대국이며 아시아에서 가장 앞선 수준의 민주화를 이룬 나라가 ‘격’에 어긋나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나라별로 아동 인권에 관해 심의할 때는 절대 다수의 국가가 장관, 최소한 차관급 인사를 대표로 보냅니다. 또 심의 보고서를 작성한 실무팀도 다 참가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보통 차관보급, 어떨 때는 국장급 인사가 대표로 옵니다. 보고서를 작성한 실무 관계자들은 아예 오지 않거나 부서가 바뀌어 다른 사람이 오기도 하죠.”

정부가 아동 문제, 인권 문제에 관심이 없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것이다. 또 보고서 내용과 발표 내용이 다르고 통역 담당자가 어눌해 회의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이 위원장은 “북한은 위원회에서 요구하는 보고서의 마감을 정확히 지키고 심의를 위해 파견하는 관계자들도 모두 영어와 프랑스어에 능통하다”며 “위원회와 업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오히려 한국보다 더 적극적인 면도 있다”고 한국 정부의 안이함을 꼬집었다.

유엔아동권리위원장에 취임한 뒤 얻은 가장 큰 성과로 이 위원장은 심의 대기 중인 각 국가의 아동 인권 관련 보고서를 신속하게 심의할 수 있도록 개선한 것을 꼽았다.

한 회기에 보통 8, 9개 국가의 보고서를 심의하던 것을 13, 14개 나라로 늘릴 수 있도록 유엔본부의 예산 지원을 약속 받은 것.

이 위원장은 “반 총장도 아동 인권 문제에 신속하게 대처하려면 심의 기간이 줄어야 한다는 데 동의해 적극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수시로 자신에게 보고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옛 신민당 대표최고위원을 지낸 원로 정치인 이철승 씨의 장녀다.

그는 “어린 시절 정치적으로 박해받는 부모를 봤고 그런 경험을 간접적으로 해서인지 아동 인권 문제에 일찍부터 관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1991년부터 성균관대 아동학과 교수로 활동하며 아동 인권 문제를 연구해 온 이 위원장은 한국아동권리학회 창설을 주도했다. 이 위원장은 지난해 9월 소속 학과가 법학과로 바뀌었지만, 대학으로 돌아온 뒤에도 계속 아동 인권 관련 연구에 집중할 계획이다.

:이양희 위원장:

△미국 조지타운대 불문과 졸업

△미국 미주리대 대학원 박사

(장애아동 조기특수교육 전공)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 이사

△유엔아동권리위원회 부위원장

△현재 성균관대 법학과 교수

△현재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위원장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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