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창혁]“됐어요” 국감

  • 입력 2008년 10월 25일 03시 01분


국회 국정감사장에서는 ‘물’을 흐리는 의원이 꼭 한두 명씩 있다. 논리에 닿지 않는 질의를 하다가 ‘무식’이 탄로 나면 도리어 장·차관을 윽박지르거나 “됐어요!”라는 말로 대답을 자른다. 김영삼 정권 때 모 의원은 전자(前者)로 유명했다. 장관이 어이가 없어 “일리가 있는 말씀”이라며 그냥 넘어가려고 하면 “일리(一理)가 뭐요, 일리가…. 이리(二理)는 있다고 대답해야지”라고 호통을 쳤다. 텔레비전이 생중계라도 할라치면 “됐어요” 국감 행태는 더 심해진다.

▷옛날 정도는 아니지만 “됐어요”는 요즘도 여전하다. 정유회사, 백화점, 자동차업체 사장 11명을 증인으로 부른 국회 정무위원회의 23일 국감.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SK에너지 김준호 사장을 상대로 “2004년 1144원 하던 환율이 2006년 955원으로 떨어졌으면 영업이익이 더 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다그쳤다. 김 사장이 환차손익은 영업손익이 아니라 영업외손익으로 분류된다고 설명하려 하자 조 의원은 “됐어요”라며 말을 끊었다. GS칼텍스 나완배 사장의 항변도 “됐어요”라는 말 한마디에 묻히고 말았다.

▷정무위에서는 해마다 이런 장면이 되풀이된다. 국회에 모두 16개 상임위(특별위원회 제외)가 있지만 기업인들이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불려나오는 곳은 정무위가 거의 유일하다. 공정거래위원회를 담당하는 상임위이기 때문이다. 미리 준비를 하고 나오긴 하지만 평소 국회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기업인들은 아무래도 국감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다. 답변이 서투르거나 장황해질 수 있다. 반면 의원들은 실컷 묻거나 호통을 쳐놓고는 답을 자른다. 시간제한도 한 가지 이유이겠지만 그러려면 뭣하러 불렀나 싶다.

▷올해는 특히 기업들이 너나없이 비상경영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 정무위의 기업인 증인 소환에 대한 여론이 곱지 않다. 하릴없이 몇 시간씩 기다리는 일도 다반사다. 정무위에 대한 원성과 비난이 높아지면서 정작 소비자가 알고 싶어 하는 정유사들의 기름값 담합, 대형 백화점과 자동차 업체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의원들의 지적은 관심권 밖으로 밀리고 있다. 의원들은 억울하겠지만 자업자득이다. “됐어요” 국감의 후과(後果)인 셈이다.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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