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갑영]아이비리그 중퇴가 많은 이유

  • 입력 2008년 10월 6일 02시 56분


해외 유학의 열풍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한때는 일부 계층의 도피성 유학으로 치부해 버렸지만, 지금은 조기 유학은 물론 명문대에 진학하는 영재도 급격히 늘고 있다. 여기에 경영전문대학원(MBA)이나 다른 대학원 과정까지 합하면 유학을 꿈꾸는 젊은이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작년에도 미국 대학에만 10만3000여 명이 등록해 한국은 2년째 가장 많은 유학생을 보유한 국가로 부상했다. 이런 열풍으로 TOEFL 시험장은 연일 장사진이고 대학원 입학시험인 GRE는 국내 시험장이 만원이라서 일본이나 홍콩에까지 원정을 가야 한다고 한다.

창의성보다 암기식 입시준비 탓

유학을 가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입시 때문이리라. 국내 대학에 대한 불신도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입학도 힘들지만, 들어간다 해도 교육 수준이 신통치 않으니 유학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어떻게 해서라도 유학을 보내는 것이 낫다는 게 수많은 기러기 가족의 변명 아닐까.

유학생 증가에 따른 사회적 부작용도 만만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가족의 희생을 무릅쓰며 어렵게 이루어진 유학이 제대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최근 발표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12년간 하버드, 예일, 코넬대 등 14개 미 명문대에 진학한 한인 학생의 44%가 중도에 탈락했다고 한다. 그동안 주변에서도 이런 사례가 적지 않았지만, 이렇게 높은 수치를 나타낸 것은 상당히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실제 미 명문대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힘든가. 입학 당시 세계적 영재로 인정받았던 그들이 왜 성공적으로 학업을 마치지 못하는 것일까. 왜 유독 한인 학생이 인도나 중국인보다도 훨씬 높은 탈락률을 나타낼까.

가장 큰 원인은 역시 학습방법의 차이라고 지적된다. 명문대일수록 자기 주도의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요구하는 교육을 실시한다. 그러나 우리 학생들은 어떠한가. 철저하게 입학 허가를 받기 위한 시험 준비와 성적관리로 일관한다.

이런 교육 자체가 독창적인 접근이나 창의성의 함양과는 거리가 멀다. 설상가상으로 유학 준비는 대부분 학원에 의존한다. 기계적으로 암기하고, 고정된 틀 안에서 제조공정에 따라 입시를 준비한다. 게다가 자신의 적성이나 잠재력은 물론 학교의 특성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명문대의 이름만 좇아 무리하게 지원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준비로 간신히 명문대에 턱걸이한들 어떻게 성공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과목마다 쏟아지는 과제를 혼자서 수행하기 힘들고, 외국인과 문화적 가치를 공유하는 데 있어 큰 벽에 부닥치게 될 것이다. 여기에 청소년기의 불안정한 정서까지 겹쳐서 초기에 한 과목이라도 실패한다면 쉽게 자신감을 상실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의 현실이다.

국내대학 경쟁력-자율성 높여야

천신만고 끝에 들어간 명문대에서 중도에 탈락하면, 당사자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타격이 될지 짐작이 간다. 이런 희생을 줄이려면 창의적인 사고와 글로벌 시대를 헤쳐 나갈 잠재력을 기르는 일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개인의 노력만으로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과제도 아니다. 공교육 수준은 낙후됐고, 기성 사회는 맹목적으로 일류대만 찾는데 어떻게 중도 탈락의 비극이 쉽게 줄어들 수 있겠는가.

이런 과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려면, 역시 국내의 교육시스템을 선진화해야 한다. 대학의 경쟁력과 자율성을 높여서 세계적 명문대와 같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입학의 문을 선진국처럼 열어 준다면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국가가 나서서 모든 희생을 무릅쓰고 유학을 보낼 수밖에 없는 수많은 기러기 가족의 원성을 풀어줘야 한다. 우리 아이들을 바깥으로만 내몰지 말고 한국도 이제는 유학생을 받아들이는 나라로 탈바꿈해야 한다.

정갑영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