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일규]친환경 디자인으로 녹색성장을

  • 입력 2008년 9월 20일 02시 59분


몇 해 전 타계한 저명한 이탈리아 디자이너 브루노 무나리(1907∼1998)는 이 세상에서 오렌지만큼 훌륭한 디자인이 없다고 했다. 보관이 용이할 뿐 아니라 손으로 쉽게 까서 먹을 수 있으며 껍질은 흙 속에서 썩으니 재활용을 위한 고민이 필요 없다는 말이다.

천정부지로 치솟던 국제유가가 안정세를 보이지만 여전히 우리 경제엔 부담으로 작용하고, 부존자원 없이 주요 에너지원을 대부분 해외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현실을 감안하면 한 번쯤 곱씹어 볼 만한 얘기다.

대통령이 녹색혁명을 국가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제시할 정도로 친환경 기반의 성장 추구는 우리의 미래와 직결되는 중요한 이슈가 됐다. 정부는 새로운 국가 비전을 실천하기 위한 정책 개발에 몰두하고, 기업 역시 친환경이라는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에 맞게 기업시스템을 바꿔 나가고 있다. 필자는 이런 작업의 핵심을 디자인에서 찾고자 한다.

디자인은 제품이나 도구, 기계뿐만 아니라 도시환경 및 건축물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는 모든 분야와 관련이 있다. 디자인 행위는 생태계 및 환경, 인간 생활, 특히 에너지 소비에 매우 직접적이고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제품 디자인을 예로 들어 보자. 디자이너가 제품을 디자인할 때는 제품의 소재에서부터 제조 과정, 포장, 수송, 폐기 등 제품의 생명주기를 모두 염두에 둔다. 이 과정에서 어떤 재료를 사용해 어떻게 제작하고 완제품을 어떻게 포장할지를 결정한다. 선진국뿐만 아니라 국내 일부 기업에서는 이미 설계 단계부터 자원과 에너지 효율을 제고하고, 유해물질 사용 억제, 생산부터 폐기까지 환경영향을 평가하는 ‘에코디자인(Eco Design)’ 시스템을 도입했다.

도시환경 등 공공디자인 분야도 개발 초기 단계부터 에너지 효율을 고려한 친환경디자인(Green Design)에 나서야 한다.

세계적으로는 이미 건축디자인 분야에서 에너지 절감을 위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했다. 1991년 최초로 건축물에 대한 친환경인증제도(BREEAM)를 도입한 영국이 대표적이다.

영국에서 2002년 완공된 ‘탄소제로’ 친환경 주거단지인 ‘베드제드(BedZED)’에서는 태양광 패널, 자동차용 태양광전지충전소, 자체 열병합발전소가 유기적으로 디자인된 에너지 관리시스템 덕분에 일반 주택가 전기사용량의 56%를 절감한다. 지구 생태계 보존,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추구하는 지속가능한 디자인(Sustainable Design)의 모범 사례다.

디자인이 단순히 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시켜 주는 도구로 사용되는 시대는 지났다.

선진국의 대다수 디자이너와 기업은 고유의 친환경, 고효율 에너지 디자인 프로세스를 수립하여 추진한다. 우리나라는 전체 에너지의 97%를 해외에서 수입하는 대표적인 에너지 수입국임에도 불구하고 ‘탄소경제’ 체제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매우 미흡하다.

환경 및 에너지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환경을 파괴하고 에너지 소비를 부추기는 디자인은 미래를 병들게 할 뿐이다. 이에 필자는 친환경, 저에너지 디자인의 확산을 위해 에너지 소비와 환경 파괴를 줄이는 ‘친환경 디자인 운동’을 디자이너와 기업 경영자에게 제안한다.

고객에게 지속가능한 환경 만들기에 대해 설득하고, 기업에 대해서는 대안적 소재의 개발과 친환경, 저에너지 디자인 및 생산 과정의 확산을 유도하자는 주장이다.

요즘 세계 디자인계의 키워드 중 하나는 ‘지속가능한 디자인’이다. 앞서 말한 에코디자인과 친환경디자인을 포함한 개념이다. 지속가능한 디자인이야말로 건강한 환경을 후대에 물려줘야 할 이 시대 기업경영자와 디자이너가 실천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일규 한국디자인진흥원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