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허찬국]9월 위기설, 자라인가 솥뚜껑인가

  • 입력 2008년 8월 8일 02시 54분


우량대출은 만기가 됐을 때 기간을 연장하면 계속 돈을 빌려 쓸 수 있다. 하지만 대출자 신용도가 악화되거나 은행 사정으로 만기 연장이 안 될 수 있다. 부동산 가격 잡기가 한창일 때 감독당국이 주택대출 축소 방안을 내놓으면 은행은 만기 대출을 회수할 수밖에 없는 경우다.

외국인투자가는 한국 정부의 국채나 한국은행의 통안채를 상당량 보유하고 있다. 금리 환율 면에서 이로운 투자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13조 원 정도가 하반기 중 만기도래한다. 특히 약 8조 원은 9월이 만기이다. 국내 외국은행 지점이 보유한 물량을 포함하면 규모는 더 커진다.

국채-통안채 8조 원어치 만기

채권시장에서의 외국인 투자비중이 6%에 미치지 못해 주식시장보다는 훨씬 작지만 외국인투자가가 만기 채권을 대거 현금화하고 해외로 회수하면 큰 파장이 생긴다. 금리가 급등하고 외화 환전을 위해 일시에 외환시장에 몰려들면 원화 환율이 불안해지고 급등한다. 최악의 경우 외환보유액이 고갈된다. 이것이 바로 ‘9월 위기설’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처럼 10여 년 전 겪은 일로 심약해진 우리로서는 9월이 은근히 걱정된다.

정부는 만기채권 외국인 보유물량이 모두 회수될 가능성이 낮은 데다 2500억 달러의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므로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한다. 단순히 규모를 비교하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외국인 보유주식 매도가 계속되는 가운데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처럼 위기설이 신출귀몰하는 모습을 보면 뭔가 있는 게 아닌가하는 의구심도 든다.

가능성을 따져보기 위해 대출만기 연장에 빗대어 보자. 먼저 우리 사정과 상관없이 외국인투자가가 자금을 회수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이다. 미국발 국제금융시장 불안이 지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회사는 건전성 강화를 위해 자본을 확충하고 위험도 높은 운용자산을 줄이는 방안을 채택한다. 한국투자공사가 연초 메릴린치에 20억 달러를 투자한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대형 투자은행은 주요 국부펀드의 자본 참여를 추진했다.

한국 국채 투자회수는 운용자산 축소에 해당된다. 그런데 국채는 주식이나 파생상품에 비해 매우 안전한 상품이다. 일반적으로 정부는 세금을 걷고 돈을 찍어낼 수 있는 엄청난 권한을 보유한 우량 채무자이기 때문이다. 위험도를 감안한 운용자산 축소과정에서 국채 매각은 맨 나중 일이다. 투자자 필요에 따라 우리 국채 투자자금을 일시에 회수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렇다면 대출자, 즉 한국 경제의 신용도가 나빠져 만기 연장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올해 들어 정치 사회적 혼란이 극심했고, 원유를 전량 수입하는 우리에게 고유가 충격은 가히 살인적이다. 주택 미분양으로 인한 건설사 및 관련 금융권 부실 가능성도 계속 제기된다.

시장경제 활성화 조치 서둘러야

이런 상황에서 물가 앙등과 내수위축 심화는 경제에 대한 불안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국제유가가 하향 안정되는 모습이라 물가와 내수회복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계속되는 수출호조세도 긍정적이다. 1, 2개월 내에 한국 경제 신용도가 크게 떨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금리와 환율이 급변해 투자 회수에 적극 나서야 하는 상황도 아니다.

결론적으로 ‘9월 위기’는 ‘자라’라기보다는 ‘솥뚜껑’에 더 가깝다. 하지만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 내수위축이 심해지고 국내 금융시장 불안이 본격화되면 국가신인도가 급락할 수 있다. 정부는 출범 초 내세웠던 시장경제 활성화 조치를 가능한 한 조속히 시행해 경제 활력을 복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기설 구미호는 또다시 출몰한다. 내년에 만기가 도래하는 외국인투자가 보유 채권 규모는 올 하반기보다 더 크다.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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