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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7월 1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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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질없는 상상을 해본 것은 며칠 전 걸려온 윤석순(70) 한국극지연구진흥회장의 전화 때문이다. “정말, 화가 난다. 40년 뒤에는 남극 자원 개발이 본격화될 텐데….”
“왜, 그러느냐”고 묻자 “선진국들은 극지연구사업을 중요하게 여겨 하나같이 독립기구화한 지 오래인데 우리는 거꾸로 극지연구소를 해양연구원과 재통합하려고 한다.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우리나라가 남극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23년 전이다. 남극 관측탐험단은 1985년 11월 6일부터 12월 16일까지 킹조지 섬과 인근 해역을 탐사하고 남극 최고봉인 빈슨매시프 등정에도 성공했다. 그 후 1986년 남극조약 가입과 1988년 세종과학기지 건설로 이어지는 우리나라의 남극 진출에 굵은 획을 그은 주역 중 한 명이 바로 윤 회장이다. 그의 e메일 ID의 앞부분이 ‘antarctic85’인 까닭이다.
극지연구소는 남극과 북극에서 세종기지와 다산기지를 운영하며 지구상 마지막 자원의 보고이자 지구 온난화에 따른 환경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극지 연구를 전담하는 곳이다. 4년 전 정부는 해양연구원 극지연구센터를 부설 극지연구소로 승격한 바 있다.
남극조약은 2048년까지 자원 개발을 금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뒤집으면 그 이후에는 본격적인 남극 개발시대가 열릴 수 있다. 지구촌 경제에 주름을 지게 하는 원자재난과 지구온난화에 따른 환경 변화는 남극 개발을 앞당기면 앞당겼지 늦추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그래서 선진국들은 극지연구사업을 우주과학사업 못지않게 중요한 미래사업으로 여긴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은 첨단 과학기술과 막대한 예산을 들여 남극 인프라를 강화하고 해군 공군까지 동원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극지연구소는 그동안 대규모 고체천연가스 매장지와 결빙방지 물질 발견 등 자원탐사와 연구에서 상당한 성과를 올린 바 있다. 그러나 남극 탐사연구에 필수적인 쇄빙선의 용골을 올 5월에야 겨우 올렸다. 기지 보유 20개국 중 쇄빙선이 없는 나라는 한국과 폴란드 단 두 나라뿐이다.
그러다 보니 남극대륙 제2기지 건설 작업도 원활하지 못하다. 목표대로 2011년까지 제2기지를 완공하려면 남극조약 당사국들의 승인이 필수적이다. 그러려면 국제 여론을 우리에게 우호적으로 돌려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기초 작업조차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올해 초 러시아 쇄빙선을 간신히 빌려 제2기지 후보지 2곳을 답사했다. 그러나 빠듯한 예산 등의 사정으로 최종 후보지 확정에는 결국 실패했다.
촛불시위가 잦아들 만하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강산 피격 사건에 독도 문제까지 겹쳐 어지러운 상황이다. 제2의 외환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판국에 ‘40년 뒤의 남극 개발’에 대비하자는 것은 뜬금없는 소리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가 시작된 2월 25일 0시경 군통수권을 넘겨받는 의식을 가진 데 이어 남극 세종기지에 전화를 걸어 대원들을 격려했다. 극지사업에 대한 대비는 민간기업이 할 수 없다. 임기 중에 결실이 나오기 힘들지만 남극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에 변함이 없기를 기대해 본다.
최영훈 사회부장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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