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쇠고기 촛불시위는 ‘6월 민주항쟁’이 아니다

  • 입력 2008년 6월 1일 23시 13분


일부 단체와 언론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위한 촛불시위를 1987년의 6월 민주항쟁에 비유하고 있다. ‘반독재 민주화’의 구호가 ‘국민 건강 사수’로 바뀌었을 뿐 범국민적 시위 양상이나 정권의 대응 방식이 그때와 꼭 같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쇠고기 고시 강행’을 5공 정부의 ‘호헌(護憲) 선언’에 비유하기도 한다.

6월 민주항쟁은 군사반란과 광주 유혈진압을 통해 집권한 전두환 정권의 독재 연장 음모를 막기 위해 전 국민이 함께 일어난 궐기였다. 항쟁의 역사적 의의와 젊은 학생들의 희생을 생각한다면 미국산 쇠고기의 위생검역 조건 협상에서 촉발된 촛불시위를 결코 동렬에 놓을 수 없다. 그것은 민주항쟁에 참여한 학생과 시민들을 모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의 쇠고기 협상이 서툴렀던 건 사실이다.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에 관한 국민의 우려도 이해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이를 6월 민주항쟁과 비교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을뿐더러 순수성도 의심스럽다. 심야에 거리를 행진하는 시위대로부터 ‘이명박 대통령 탄핵’ ‘정권 타도’라는 구호가 공연히 나온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인터넷 매체는 ‘이명박 대통령, 국민의 피를 원하십니까’라는 섬뜩한 제목의 기사까지 올려놓고 쇠고기 시위를 6월 민주항쟁의 수준으로 끌고 가자고 부추기고 있다. 시위대의 행동을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의 모습처럼 칭송하는 글까지 등장했다.

경찰의 시위대 해산을 둘러싼 논란도 마찬가지다. 일부 언론과 시위대는 경찰이 물포까지 동원했다며 6월 민주항쟁 당시 전두환 정권이 최루탄으로 무차별 진압한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심야에 경복궁 담을 넘어 청와대로 진입을 시도한 시위대들을 그대로 놓아두어 사회질서 유지를 포기하고 무정부 상태의 혼란으로 치닫도록 방치하란 말인가. 일부 시위대는 그제 청와대 앞 진출을 시도하면서 확성기를 통해 “이승만 정권을 하야시켰던 장면이 떠오른다”고까지 선동했다.

쇠고기 촛불시위를 6월 민주항쟁으로 몰아가고 싶은 세력이 있다면 국민 건강을 위협해 정치적 목적을 이루려는 집단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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