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강하지만 뻣뻣’ 한국 기업 리더십에 변화 필요

  • 입력 2008년 5월 24일 03시 01분


세계적인 경영 석학 이브 도즈 인시아드 교수(오른쪽)와 서울대 송재용 교수가 한국 기업의 바람직한 글로벌화 전략에 대해 대담을 나누고 있다. 강병기  기자
세계적인 경영 석학 이브 도즈 인시아드 교수(오른쪽)와 서울대 송재용 교수가 한국 기업의 바람직한 글로벌화 전략에 대해 대담을 나누고 있다. 강병기 기자
기업혁신-글로벌 전략 분야 대가 이브 도즈 인시아드 교수

《동아일보는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MBA스쿨)과 함께 3월부터 세계 최고의 경영 석학 21명과 릴레이 인터뷰 및 대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기업 혁신과 글로벌 전략 분야의 최고 석학으로 평가받는 이브 도즈 인시아드(INSEAD) 교수와 서울대 글로벌 MBA 주임 교수인 송재용 교수가 대담을 했습니다. 서울대는 글로벌 MBA 과정을 육성하기 위해 경영학 분야별로 최고의 연구 성과를 낸 외국인 교수 21명을 7월 초까지 순차적으로 초청합니다. 동아일보는 인터뷰나 대담을 통해 서울대에서 강의하는 석학들의 첨단 경영기법과 이론, 통찰 등을 소개합니다. 서울대 MBA스쿨 및 동아일보와 함께 천재 경영이론가들이 펼치는 지식의 향연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

▽송재용 교수=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품질이 떨어지고 중국 등 개발도상국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고민하고 있는 한국 기업이 많다. 이런 기업에 조언을 해 준다면….

▼이브 도즈 교수= 최고의 경쟁력은 혁신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기업들은 개별 상품 중심 전략(individual product-oriented strategy)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혁신은 통합적 솔루션(integrated solution)을 제공함으로써 나온다. 한국 기업은 각 부서 내부의 효율화 측면에서는 대단히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하지만 부서 간 장벽을 넘어서는 협업, 회사 바깥에서 중요한 지식을 얻는 조직 문화는 아직 구축하지 못했다. 한국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식을 창출하고 공유할 수 있는 통합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최고경영진이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개방된 자세를 가져야 함은 물론이다. 글로벌 시대에 기업이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기업 자신의 지식 창출에 급급하지 않고 외부에 산재하는 지식을 통합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필요하다. 일본 기업은 자국 내에서보다 해외에서 이런 통합적 솔루션을 구축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한국 기업 가운데는 삼성이 이런 측면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송= 2년 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신성장 플랫폼 창출(Creating New Growth Platforms)’이란 논문을 게재해 큰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다. 신성장 플랫폼의 핵심은 무엇이며 기업은 어떻게 이런 플랫폼을 구축해야 하는가.

▼도즈= 신성장 플랫폼은 기존 비즈니스를 확대재생산해 성장이 가능한 분야를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신성장 플랫폼은 기존 사업을 어떻게 재활용하고, 재가공하고, 재정의할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유럽 비메모리 반도체업체인 ST마이크로의 사례를 보자. ST마이크로는 자사의 반도체 기술을 활용해 몇 방울의 혈액만 있으면 불과 몇 시간 안에 다양한 유전자 질병 검사를 할 수 있는 혈액 판독 제품을 개발했다. 신성장 플랫폼은 한 기업의 역량을 다양한 신규 영역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 밑거름이다. ST마이크로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얼핏 보면 어울리지 않는 것을 결합시키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송= 한국 기업의 주요 화두로 글로벌화를 빼놓을 수 없다. 한국 기업들이 국제적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도즈= 인적자원(HR)관리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HR는 글로벌화, 국제화가 가장 쉬운 분야다. 한국 기업의 매니저가 토종 한국인(purely home-grown Korean) 같은 태도를 지녀서는 곤란하다. 세계주의자(cosmopolitan)이거나 최소한 부분적으로만 한국적이어야 한다. 다양한 문화에 개방적 자세를 갖춘 인재를 보유하는 것은 토종 기업에서 국제적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열쇠다. 상품과 서비스가 전 세계에 동시에 전달되고 국경이 무너지는데도 여전히 가장 가치 있는 지식은 로컬 차원에서만 유통되는 경우가 많다. 문화가 이질적인 타 지역으로부터 지식을 받아들여 조직, 제조, 생산, 유통, 연구개발(R&D) 등 경영 전반에 접목해야 국제적 기업으로 성공할 수 있다.

내가 주창하는 ‘메타내셔널(meta-national·국적에 구애받지 않거나 국적과 관계없는)’ 기업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다국적기업은 세계를 상대로 경영을 하지만 저렴한 자원 활용과 제품 판매를 위한 시장 개척에만 주력한다. 이 때문에 본부, R&D센터, 핵심 부품의 생산 기능은 모두 자국에 남겨둔다. 반면 메타내셔널 기업은 본사의 핵심 기능도 해외 지사에서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인텔 등이 핵심 R&D센터를 아시아에 설립한 게 좋은 예다.

독일 소프트웨어 업체 SAP의 사례는 한국 기업에 많은 귀감이 될 것이다. SAP는 독일식 전통을 고수한 매우 보수적인 기업이었지만 R&D센터를 미국 캘리포니아에 설립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 혁신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거듭났다.

▽송= 한국 기업의 문화, 특히 수직적 위계질서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도즈= 한국 기업, 특히 재벌의 기업 문화는 장단점을 고루 갖추고 있다. 오너 일가나 최고경영진이 강력한 통제권을 쥐고 있어 신속하고 빠른 의사결정과 집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만큼 위로부터의 간섭도 심하고 분권화도 잘 이뤄지지 않는다. ‘강하지만 뻣뻣하다(strong but rigid)’는 표현이 딱 맞다. 그렇기 때문에 리더십의 변화가 필요하다. 리더십을 통합하되 한 개인이나 하나의 비즈니스 단위가 의사결정을 내리는 일을 지양해야 한다. 신속하고 빠른 의사결정이 이뤄지도록 하되 여러 사람의 지혜가 반영돼야 한다.

▽송= 한국 기업은 서양 기업에 비해 해외 인수합병(M&A)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이 해외 M&A를 신성장 플랫폼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권고하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도즈= 일반적으로 인수 기업은 피인수 기업이 자신들의 문화에 맞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한국 기업은 해외 M&A 경험이 많지 않다. 이를 감안할 때 해외 M&A는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해외 기업은 한국식 문화와 경영 방식에 익숙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기업이 변화를 강요한다면 피인수 기업이 반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비단 한국 기업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기업을 사들인 수많은 유럽 기업도 비슷한 실패를 경험했다. 무작정 M&A를 추구하기보다 해외 업체와의 파트너십 구축 등 이질적 문화 통합에 대한 경험을 먼저 쌓는 게 바람직하다.

정리=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이브 도즈 교수는 ▼

1976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를 거쳐 27년간 인시아드 교수로 재직했다. 인시아드를 유럽 최고 경영대학원으로 만든 주역으로도 평가받고 있다. 올해 7월부터 국제경영 분야의 세계 최고학회로 세계 3300명의 학자들이 가입한 AIB(Academy of International Business)의 회장을 맡게 된다. 저서 ‘멀티내셔널 미션(The Multinational Mission)’, ‘세계화에서 메타내셔널로(From Global to Metanational)’ 등은 국제경영 분야의 걸작으로 꼽힌다.

○ 송재용 교수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컬럼비아대 교수를 지냈다. 미국경영학회(AOM), 유럽국제경영학회(EIBA) 최우수 박사논문상을 수상했고 매니지먼트 사이언스(Management Science) 등 세계적 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