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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25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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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개월 미만 소의 뼈 없는 살코기만을 수입하는 것에서 후퇴해 2단계 조치로 결국 특정위험물질(SRM·편도, 소장 끝부분, 30개월 이상 소의 척수 뇌 눈 등뼈 등)을 제외한 모든 부위의 쇠고기를 월령 제한 없이 수입하기로 했다. SRM을 제거하는 경우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는 것이 국제수역사무국(OIE)에 의해 최종 판정됐고, 이런 국제기준을 한미 간 쇠고기 교역의 위생기준으로 받아들인 결과다.
관련 국제법인 세계무역기구(WTO) 위생협정에 따르면 각국이 위생조건을 정할 때 국제기준을 준수해야 할 의무는 없고, 나름대로 더 엄격한 조건을 부과할 권리가 있다. 다만, 국제기준보다 엄격한 조건을 부과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당사국이 과학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이런 입증 없이 더 엄격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합리적 기간의 범위에서 ‘잠정조치’ 형태로만 가능하다.
결국, 그동안 우리나라가 합리적 기간 부과해온 30개월 미만 소의 살코기 수입 조건을 계속 유지하려면, 30개월 미만의 쇠고기 뼈를 비롯해 현재 알려진 SRM 이외의 부위에서도 광우병이 발병할 수 있음을 과학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는 여러 독자적인 위험 평가에도 불구하고 국제기준과 상이한 과학적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이번에 국제기준을 수용한 것은 불가피하다고 볼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기준인 20개월 미만 쇠고기 수입 조건을 부과하는 일본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20개월 기준이 필수불가결함을 입증해야 하는데, 그동안 일본 내의 소에 대한 전수검사까지 실시해 30개월 미만의 소에서도 비정형성 광우병인자를 발견한 적이 있지만, 이것이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지 입증하지 못했다. 또 미국 소에 대한 검사가 아니라 ‘20개월 기준’을 고집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현재 진행 중인 미일 협상에서 결국 OIE 기준이 채택될 가능성이 많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과 쇠고기 수입 문제가 미 의회에서 사실상 연계돼 있는 상황에서, 현재로서 최선의 과학적 기준인 OIE 기준에 따라 양국이 협상을 타결한 것은 타당한 정책 결정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미 측의 쇠고기 사료 안전성 강화조치 약속을 받아낸 것도 성과다.
그런데도 한 가지 중대한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번 합의에 따르면 향후 광우병이 재발할 경우, 역학조사를 거친 뒤 ‘OIE가 미국의 광우병위험통제등급을 낮출 때’ 비로소 우리 측은 수입중단조치를 취할 수 있다.
새로운 종류의 광우병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에, 이럴 경우 WTO 협정상 보장된 잠정조치 권한을 우리 측이 발동해 과학적 근거 없이도 일단 수입중단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마땅하다. 그 뒤 합리적 기간에 OIE 기준이 변경되는지를 주시하다가 국제기준으로 복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양국 합의 내용은 이런 잠정조치 권한을 우리 측이 포기하고, OIE의 국가등급 하향조치가 내려진 이후에만 사후 수입중단조치를 취할 수 있다.
앞으로 미 측의 사료 안전성 강화조치가 제대로 시행되면, 새 광우병 발병을 상당히 예방할 수 있겠지만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국제법적 수단인 잠정조치 권한이 무력화된 점은 아쉽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