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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22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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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청장 취임 후 6개월 동안 나에게 그런 거액을 줬다는 게 말이 되나.”(전군표 전 국세청장)
뇌물 수수 여부를 둘러싸고 전 전 청장과 정 전 부산청장은 이같이 날선 공방을 벌였다.
사안의 심각성을 감지한 검찰은 전 전 청장에 대한 기소를 앞두고 정 전 부산청장의 진술을 검증했다.
국세청장의 동정과 정 전 부산청장의 서울 출장기록을 퍼즐 게임하듯 맞춰갔다. 현금 다발을 건넨 시기와 장소, 정황까지 일일이 확인했다. 1000만 원은 서류 봉투에, 2000만 원은 파란색 서류 파일에 각각 담아 건넸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부산지법은 2월 결국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전 전 청장에게는 징역 3년 6개월과 추징금 7940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뇌물을 줬다는 정 씨의 진술이 구체적이면서 일관성이 있는 점을 종합할 때 정 씨의 진술이 거짓이라고 볼 만한 정황이 없다”고 밝혔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뇌물을 줬다는 사람의 생생한 진술이 없었으면 이번 수사는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실제 뇌물사건 수사는 어렵기로 정평이 나 있다. ‘뇌물’의 속성상 거래는 은밀하게 이뤄지고, 주로 현금을 주고받으니 계좌 추적도 성과를 거두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수사의 성패는 뇌물을 건넨 당사자가 그 정황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설명하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전현직 검찰 고위층에 삼성의 떡값이 건네졌다는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도 진위를 떠나 그 본질은 뇌물사건이다.
당시 일반인들은 삼성그룹 법무팀장이라는 그의 경력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검사 출신이라는 점에 더 솔깃했다. 특수부에서 대형 뇌물사건을 수사해 본 ‘경험’이라면 허투루 빈 말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로비 대상으로 전현직 검찰 고위층의 실명이 구체적으로 거론되자 법조인들은 “핵심은 김 변호사의 진술이 어느 정도 구체적인가에 달려 있다”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조준웅 특별검사팀은 김 변호사가 끝내 구체적인 정황을 말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결국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해선 ‘증거 없음’ ‘내사 종결’로 결론이 났다.
조 특검은 17일 “김 변호사는 로비 금액을 최대 1000만 원이라고 했다가 나중에 2000만 원으로 올리거나 구속 사안이라고 했다가 발을 빼는 등 진술과 태도가 수시로 변했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특히 자신이 직접 돈을 건넸다고 지목한 김성호 국가정보원장에 대해 “내가 솔직히 언제 (김 원장에게) 갔는지는 모르겠다. 비행기 탑승기록이 없다고 하면 솔직히 할 말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정치적 행태를 보인 적이 없다. 나는 최근 10년간 투표조차 안 했다”며 “(오히려) 특검이 너무 정치적 행태를 보인 건 아닌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뇌물사건의 ‘ABC’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특검 수사 때 보인 그의 행태에 후배 검사들은 씁쓸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정치적 오해의 불씨는 여기서 생겼다.
정연욱 사회부 차장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