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졸을 고졸로 속여야 취직되니…

  • 입력 2008년 4월 7일 23시 05분


1980년대에는 대학생들이 학력을 속이고 공장에 들어가 노동자들을 의식화하는 ‘위장취업’이 유행했다. 그 시대의 위장취업은 이념형이었지만 요즘은 대졸자들이 취직이 안돼 고졸 이하로 학력을 속이고 생산직으로 취업하는 생계형이 많아졌다. 입사지원서에 학력을 고졸이라고 적고 입사한 대졸자가 노조활동을 벌이다 최종학력이 밝혀져 해고됐으나 법원이 “학력을 낮춰 취직한 것만으로 해고할 수는 없다”는 판결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3월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은 고졸 생산직 입사자 400명 중 대졸자 5명을 적발해 퇴사시킨 일도 있다. 활황을 타고 신규 생산직 사원을 채용하는 조선소에도 고졸로 위장한 대졸자들이 줄을 서고 있다.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돼 양질의 일자리는 줄고 있지만 대학진학률(2006년 기준 82%)은 세계 최고다. 취업시장과 교육시장 간의 미스매치(불일치) 현상이다.

취업정보 전문기관에 따르면 대졸자들은 평균 27.3회 입사지원서를 내고도 취직 성공률이 40%를 밑돈다. 대졸자들의 구직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기술직은 구인난(求人難)을 겪고 있다. 대책 없이 고학력자를 양산한 교육정책이 이런 불일치를 확대시킨다.

대기업의 80% 이상, 중소기업의 50% 이상이 대졸사원의 업무능력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하니 ‘학교 교육’과 ‘기업에서 필요한 교육’의 불일치도 크다. 국내 대학교육은 고용을 확대하는 데 여러 모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대학교육의 실용성 전문성을 강화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일본 와세다대 후카가와 유키코(深川由起子) 교수는 “일본은 대학에 안 가고도 기술·기능 전문가의 길을 걷는 사람이 많은데 한국의 사회문화는 그렇지 않다. 굳이 대학을 가야 한다면 대학교육을 더욱 취업시장 친화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교육정책과 사회의 인식이 대학 진학만 부추기는 ‘모노레일(단일 경로)’에서 다양한 분야로의 진출을 유도하는 ‘멀티트랙(다중 경로)’으로 바뀌는 게 바람직하다. 후카가와 교수 말대로 세계 어느 나라에도 실력 떨어지는 대졸자에게 맞는 직장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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