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두원]‘낡은 차 모는 노쇠한 운전자’의 경제

  • 입력 2008년 4월 2일 03시 03분


전설 속의 동물인 용은 잘만 길들이면 사람이 올라탈 수 있을 정도로 순한 동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용의 긴 목에 거꾸로 박혀 있는 비늘 하나가 있는데, 만약 이를 건드리면 그 누구라도 용에게 잡아먹힌다고 하였다. 바로 이를 역린(逆鱗)이라고 하는데, 시장경제에서 역린에 해당하는 기능이 바로 가격이라고 생각한다. 즉 가격기능에 대한 정부의 간섭과 통제가 심해지면, 시장경제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며 결국에는 예상치 못한 각종 부작용으로 위정자를 심판하게 되는 것이다.

교과서적인 이야기이지만 최근 이와 같은 조짐이 일부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나타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미 수차례 지적된 것이지만, 정권 초기 통신료 인하 발언과 라면 값 우려 발언, 그리고 최근에 발표된 50여 개 생필품의 가격관리 및 매점매석 단속 등은 우려의 수준을 넘어 실망을 낳고 있다.

이와 같은 우려와 실망은 물가안정정책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현 정부의 성장전략 역시 많은 부분 과거의 방식을 답습하고 있는 듯하다. 우선 수출을 통한 경기회복에 주력하는 모습이 그러하며, 대기업 위주의 규제완화정책들이 그러하다. 물론 수출과 규제완화가 나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그 방법과 정도가 너무 구태의연하다. 특히 수출을 강조하면서 환율 인상을 조장하는 듯한 각종 발언으로 수차례 환율 파동을 일으키고, 환투기세력의 공격을 암묵적으로 방조하는 태도는 실망스러울 뿐 아니라 자못 위험해 보이기까지 한다.

가격의 官주도 발상 걱정스럽다

물론 정부의 의지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성장을 약속하고 집권한 정부로서는 예기치 못한 악재인 물가 불안을 우선 해결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성장과 안정은 시장경제의 역린을 건드리면서까지 무리하게 추구하는 관(官) 주도의 성장과 안정이 아니다. 이 같은 방식의 경제운용은 사실 과거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쓰던 방식으로, 경제의 규모와 구조가 더 고도화되고 그 개방도가 훨씬 진척된 오늘날에는 사용돼서는 안 되는 방식이다. 지난번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이 엉뚱한 방향으로 무섭게 돌진하는 초보 운전자 방식이라면, 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방향은 올바르게 잡았으나 낡은 차를 몰고 가는 노쇠한 운전자와 같다는 느낌이 자꾸 드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성숙한 선진경제는 가격에 대한 간섭을 최소화하면서, 물가안정은 환율과 금리 등 거시변수를 통한 간접적 정책으로 도모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은행의 독립적인 의사결정은 마땅히 존중되고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수출 특히 대기업들의 수출에만 의존한 경기회복에서 탈피하여 건전한 내수기반을 키울 수 있는 정책들이 나와야 할 것이다.

7% 고성장을 약속하고 집권한 이명박 정부는 각종 어려움에 직면한 현 상황이 매우 답답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단기적인 목표에 집착해선 안 된다. 조금이라도 국제감각이 있는 국민이라면, 현재의 어려운 경제여건이 현 정부의 잘못이 아니라 대부분 대외적으로 초래된 해외발(發) 악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무리하게 성장을 추구하기보다 차라리 국민에게 현 상황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어느 정도의 고통분담을 요구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현재의 상황은 전 세계적으로 조성된 자산거품이 제거되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현상이며, 어느 정도의 경기둔화가 있은 후에는 세계경제가 보다 정상적인 성장궤도로 회복할 것이라는 희망을 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민영화, 稅制개편, 脫규제부터

지금 정부가 할 일은 이와 같은 때를 기다리면서, 우리 경제 내부에 주어진 각종 숙제들을 해결하여 제대로 된 성장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비전을 심어주는 일이다. 이러한 숙제들로는 금융기관과 공기업의 민영화 작업, 부동산시장 거래의 정상화를 위한 각종 세제 개편, 수도권 규제와 같이 참여정부가 박아놓은 대못의 제거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모두 올해 안에 해결해야 하는 난제들이다. 이런 난제들을 해결하면서 세계경제가 정상으로 돌아올 때를 준비한다면 이명박 정부가 원하는 성장과 안정을 반드시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두원 객원논설위원·연세대 교수·경제학

leedw104@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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